2008년 12월 24일
내시경

소화기 내과 마지막 실습인 어제 오후 1시경. 평소에도 나의 꺼져가는 학구열을 언제나 활활 불태워 주시는 우리 최교수님. 교수님이 질문 하나 던져서 학생들이 모르면 배를 가볍게(?) 가격하시며 촌철살인에 한마디를 날려주시곤 하는데 이게 또 내 공부 승부욕을 미친듯이 자극한다. 질문을 받는순간 내 두 주먹 불끈쥐며 가슴을 불태운다. 가끔 공부 안될 땐 교수님이 옆에 계시면서 혼내줬으면 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새디스트거나 마죠는 아니다.;)
오늘도 역시 나온 배 한껏 내미시며 온 몸 비틀어 가며 열정적으로 대장내시경을 하시는데,
'아 이거 왜이리 안들어가.'
'오늘 내시경 왜이리 많아. 나 내시경만 다하고 오후엔 도망갈꺼야.'
'내가 병원을 얼른 나가든가 해야지.'
'여태까지 내가 내시경한거 10000case는 되는데 이거 개원해서 하면 얼마냐.'
숱한 명언들을 뿌리시며 질문 한가지.
'야. 환자가 체중감소로 왔는데 얼마나 감소해야 비정상적인 체중감소냐?'
역시나 정곡을 찌르는 최교수님. 보통 질환에 대한 정의, 원인, 진단, 치료, 예후 라면 질문 정도야 자신감 있게 대답할 수 있겠지만 이런 타입에 질문은 평소에 공부하면서도 쉽게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이기에 순간 당황했다. 의학의 기본이 되는 개념의 정의를 묻는 질문. 의학뿐만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며 공부라는 것을 하는 많은 학생들이 놓치는 부분이 바로 '기본개념'에 관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대장암이 의심되면 환자는 필연적으로 체중감소, 혈변, 묵직함, 대변 습관에 변화, 잔변감 등을 동반 할 수 있다는 사실 정도야 삼척 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해당 증상에 대한 정확한 수치나 범주등에 대해선 그다지 아직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입장도 아니고 중요시 하지도 않았기에 특별히 머릿속에 담아 두고 있지 않았다.
急당황해서 대충 '1년에 5%? 정도요.' 라고 대답해 버렸다. 물론 얼추 정답은 맞혔다.
(보통 6~12개월에 5%이상 체중이 감소하면 비정상적인 체중감소라 한다.)
교수님 또 내가 찍어서 대답한건 어찌 아셨는지,
'니네는 실습돌면서 해리슨(영문 내과 교과서)도 안가지고 다니냐?'
순간 2층 도서관으로 빛에 속도로 뛰어가 해리슨을 가져왔더니 교수님 역시나 무지 귀찮아 하시면서 왈,
'그래도 개념은 있구나. 저기서 소견서나 적어'
'Advanced cecum, on the rectosigmoid area 0.5cm sessile polyp -polypectomy - bx1~~~'
소견서는 처음 적어 보는지라 당황했지만 어떻게 무사히 적었다. 잠깐 틈이 보여 평소 농담 좋아하시는 교수님이시기에 또 내가 한마디 던졌다. 잠깐 교수님과 나의 관계를 회고해 보자면, 나와 같이 폴리클 도는 한 누님은 '너와 최교수님은 친구 같아.' 라고 평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교수님 회진 도실때 교수님 옆에서 나란히 걷는가 하면 교수님이 질문하시면 좀 깝치면서 대답하기도 한다. 그냥 교수님도 좋아하시고 나도 그 편이 좋았을뿐이고.
'이거 하면 시급 얼마주실 껀가요? 전 고급인력이라.'
교수님 왈, '대신 대장내시경 한번 해줄께.'
이것이 나의 불행의 전조가 될지는 몰랐다. 내시경은 수 없이 봐왔고 때론 환자들의 괴로워 하는 모습도 보면서. 저거 다 엄살이겠지 뭐가 아프겠어... 했는데. 순간 '이건 X됐다.'란 느낌이 나를 덥쳤다. 결국 교수님과 '대장내시경은 필사적으로 반대한다.' 하는 기조를 내걸고 투쟁한지 10분째, 위내시경 이라는 협상안을 이끌어냈다.
옆방 위내시경실의 침대에 새우처럼 누웠다. 일단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위해 HR 모니터링 했으며 가스톨이라는 거품제거제를 한 주사기 들이키고 (진짜 맛없다. 웩) 리토케인을 구강 안으로 분사 했다. (정말 가스톨 + 리도케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맛 없는 음식이 아닐까 싶다. 한약보다 더 맛없다.)
교수님이 오셨다. 그리고 무언가가 천천히 들어가는 느낌. 뭐랄까 나무 막대를 먹는 느낌이랄까. 토하는줄 알았다. 역겨웠으며 메스꺼움이 절로 올라 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아펐으며 괴로웠다. 이거 언제 끝나나 그 생각뿐이었다. 그 때 들리는 교수님의 한마디.
'좀만 참아. 잘한다. 그래그래. 이제 다 끝났다 .잘한다.'
교수님의 그 한마디가 어찌나 힘이 되던지. 나에게 있어 그리도 길었던 그 공포의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교수님께서 환자분들 오시면 대충 한마디씩 내 뱉는 이야기인줄 알았던 그 한마디, 하지만 나에겐 정말 큰 힘이 된 그 한마디. 새삼 의사의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꼈다. 그 한마디는 실재하는 환자의 아픔이나 질병을 줄여 주지는 못할 지언정 환자가 느끼기엔 얼마나 큰 힘이되고 위로가 되는지 느낄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환자를 대하는 의사가 되어야 하는 나로썬 내시경 경험을 통해 책에선 배우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냥 아프다는 환자의 말은 엄살이겠지 하던 1시간 전의 내 모습, 내시경 참관이 너무나 괴로워 그냥 대충 하고 끝내지 했던 내 마음. 정말 부끄러웠다.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 환자를 위하는 마음... 그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 따뜻한 말 한마디 정겨운 손길 한번이 환자에겐 치료보다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정말 따뜻한 의사가 되어야 겠다고 다시한번 다짐해본다.
# by | 2008/12/24 20:27 | 그냥 | 트랙백(1) | 덧글(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