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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예수천국불신지옥

 

'예수천국 불신지옥' 대한민국 개신교가 아기예수의 이미지를 갉아먹는다.

 

 "한국 사람들만큼 복을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단 말이에요. 우리 할머니도 복 받기를 원했지만, 우리들도 복을 원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말하는 복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다르단 말이에요. 이기적인 복입니다. 배타적인 복입니다. 우리 집만 복을 받으면 되겠다는, 우리 집만 복을 받으면 좋겠다. 옆집은 망해도 괜찮습니다. 이것은 귀신의 복입니다. 이건 타당성이 없는 것입니다." (가정- 단체 정** 목사 강연 中)

 고등학교시절 친한 친구를 따라서 교회를 가본적이 있었다. (그 녀석 아버지는 교회 목사였고 친한 친구였던 나를 교회로 무척이나 이끌고 싶어했었다.) 여기저기 반짝이는 장식들과 맛있는 음식, 어렸던 나를 혹하기에는 충분히 멋지고 매력적인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환상은 이내 깨지고 말았다. 어린 나를 붙잡아놓고선 요상한 책을 보여주며 제사를 지내는 것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은 표현을 하는 한 아주머니(?) 신도의 모습을 보며 내가 와야 할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발을 끊었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해서 본 한국교회의 천박한 수준의 사회인식과 사회참여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개신교라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도 했다.

 그런 시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친한 친구로부터 한 목사에관한 특별한 이야기를 접하면서였다. 원래 미국인이었던 그 목사는 젊어서 한국인으로 귀화해 천주교도시빈민사목위원회와 함께 평생 저소득층의 주거권 문제를 위해 사회운동을 했다. 그 목사와 함께하는 사람들 역시 큰 교회에서 사목활동을 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기보다 달동네에 작은 교회에서 달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을 더 행복해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교회에서 금기하는 술, 담배 다 하는 분들이 많았다. 저소득층 지역에서 사회운동을 (말이 좋아 사회운동이지 그들에게는 선교의 일환이었다.) 하기 위해서는 지역 분들에게 동네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함께 어울리고 비슷한 수준의 고민을 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예전 달동네에는 그 지역만의 문화가 있었다. 여름에 모두 골목에 나와 밥도 먹고 애들 숙제도 하고, 여기저기 아주머니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아저씨들끼리 술한잔하는 그런 분위기 말이다. 골목 끝 쪽에 사는 분들은 그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어이 장씨 아직 자네집 아주머니가 아직 안들어오신것 같은데 밥 한술 들고가 비빔밥이 잘 비벼졌어'해서 밥 한술 뜨고, 그 다음 집을 지나면서 '막걸리나 한잔 하지' 하는 소리에 막걸리도 한잔 먹고 가는 식이었다.

 '어이 목사 양반도 막걸리나 한잔 하시지'해서 술을 마시게 된다. 술을 마시면 정치이야기를 하게 되고. 전두환이가 광주에서 무슨짓을 했는지, 우리나라에서 재개발을 하면 왜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다 떠나서 더 먼곳으로 이사가게 되고 잘사는 사람들이 이사오는 동네로 바뀔 수 밖에 없는지, 우리 동네는 언제 재개발을 하게 될것인지 아닌지 걱정하고, 지금 동네에 애들이 방과후에 갈데가 없어 골목골목에서 담배나 피고다닌다는 등, 김씨 할머니가 혼자 사시는데 돌아가면서 김치라도 해드려야 한다는 등 거창한 이야기부터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함께했다.

 그렇게 동네 주민이 된 목사들은 재개발이 시작되면 용역깡패들과 함께 각목을 들고 싸우고, 관청에 가서 인대아파트 호 수를 늘리는 문제나 소녀가장이나 독거노인 들의 임대아파트 입주보증금 이나 월세를 깍아줘야 들어가 살수 있는데 그걸 안해주면 그 사람들은 어디가라는 이야기냐는 등의 문제로 주민들과 함께 싸웠다. 분명 그 과정에서 힘들때, 어려울 때 조용히 기도하는 목사들의 모습을 보고 주민들이 기독교라는 종교에 호감을 갖고 본인 뿐만아니라 자식들까지 교회에 보내게 되었다.

 단지 그러한 노력만의 결실은 아니겠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최저주거기준이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일정 수준의 주거기준에 못미치는 곳에서 살면 주거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모든 사람은 일정수준 이상의 주거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즉 주거권이라는 측면의 인권을 법으로 보장받게 되었다. 이거 법제화 된 나라가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다.

 각설하고, 기독교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듣고, 함께 술 마시고 이야기하면서 기독교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선교라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을 교회에 나오도록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작은 이익만 보장해도 된다. 예를 들어 방과후에 교회에서 아이를 맡아주고 숙제를 도와주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그 사람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단지 일요일에 교회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교회로 오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과시하고, 교회를 과시하는 곳에 간 보통 사람들이 마음이 움직일 수 있을까? 하나님을 믿는 삶이라는 것이 저렇게 좋은 것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누구 누구는 험금을 얼마를 했다더라. (저소득층에게는 일년 수입이 넘는 헌금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마치 헌금액수의 많고 적음이 신앙의 크기,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은총의 크기인 것처럼 떠들어대는 교회들이 있다.) 목사에게 벤츠를 사줬다. 우리 교회에는 사업하는 사장님들이 백명이 넘고, 전문직 선생님들이 매우 많다는 은근히 자랑섞인 이야기. 이것이 그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될까? 아니면 저 목사는 재벌 아들이라는데 왜 저러고 사냐(아는 사람중에 하나 있다.) 하다가도 조용히 기도하고, 항상 주변 사람들을 따듯하게 대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보통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일까.

 그 후로, 기독교를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기독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좋은 종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많은 기독교인들과 목사들에게 염증을 느낀다.
 길거리를 걷다보면 흔히 볼 수있는 '예수천국 불신지옥'

 술, 담배를 금하라는 교회의 가르침(성경의 가르침은 아니다.)을 지키는 것보다 주민들과 동료가 되기 위해서 술담배를 하는 타락한(?) 목사들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고 하면서 뒤로 남의 아내를 탐하고,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고 하면서 작은 금전적 이익에 하나님이 용서안할거라는 둥 폭언을 하는 목사들이 싫다.

 교회는 파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지금 건물이 좁아서 옮겨야 한다면 이 건물을 판 돈이 아니라 새로 돈을 모아서 해야 하고 이 건물은 다른 분이 교회를 할 수 있도록 내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목사들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일하는 교회를 자기 아들에게 세습시키려고 시도하는 뻔뻔한 목사들이 싫다.

 신앙이라는 것은 자신과 주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아끼면서 자연스레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나이든 집사들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나오지 않는 놈들은 다 지옥에 간다'고 큰소리치면서 신앙을 강요하고, 가르치려 들고, 괴롭히는 狂신도들이 싫다.

 정치는 세상의 일이고 세상에는 세상의 질서가 있고,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고민하는 장로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후보가 교회다니는 사람이라더라, 그 사람을 찍어야 교회가 잘된다고 하면서 교회가 이익집단인지 신앙생활을 위한 공간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장로들이 싫다.

 교회는 기도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고, 누구나 와서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하기에 노숙자 분들이 겨울 밤을 피하고 간 후 더럽혀지고 냄새나는 교회의 방석과 바닥을 땀흘리며 청소하는 사찰집사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노숙자가 어디 교회에 들어와서 신도님들 기도하는데 방해하느냐며 문을 걸어잠그는 사찰집사가 싫다.

 목사의 자식들은 누구보다 조심해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항상 주의를 주시는 목사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고귀하신 목사 아들이라고 교인들이 떠 받드는 자기 자식이 대학갈 나이가 되어서 유학을 보내야겠으니 교회에서 장학금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목사들이 싫다.

 교육을 받아야 지금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힘들게 모금을 하고 그 돈으로 학교를 지어 가난한 제3세계 국가 아이들의 점심을 주고 글자를 가르치고 삶을 가르치는 선교사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실적을 위해 젊은 친구들을 모아서 좋은 경험이 될거라며 사지로 보내고도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하는 아둔한 목사들이 싫다.

 기독교가 한국 국민들에게 비난의 대상, 멸시의 대상이 아니라 가까운 이웃이자 친구가 되기 위해 해야할 일이 과연 공격적인 선교인지 아니면 자신의 삶을 통해 신앙의 아름다움을 전파하는 것인지 생각해보야한다. 그 공격적인 선교의 목적이 정말 하나님의 영광인지 목사 자신의 영광인지,혹은 나의 만족이 아닌지 고민해 봐야한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기독교를 비난해 왔다. 비판이 아니라 비난도 많았다. 하지만 그 비난의 원인이 비난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기독교인들의 배타적인 태도가 보통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그렇게 싫어하도록 만든 것인지 고민해 봐야한다. 그리고 그 들이 사용한 표현방식의 강하고 약함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가 기독교 자체에 대한 부정인지 기독교인들 조차도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예의에서 벗어난 전도 방식이나 신앙생활하는 방식에 대한 것인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나는 꼭 가야만한다면 희망이있는 불교지옥으로 가련다.

 물론 사람마다 종교라는 것은 어때야한다라는 나름의 종교에 대한 정의가 있다. 현재의 나는 불교와 같이 존재의 내면을 탐구하는 종교가 아닌 외향적 교세확장과 막무가내식 선교에서 기쁨과 만족을 찾는 종교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도 기독교는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선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버리면 괜찮은 종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님 사후 2000년이나 지났는데 이제는 다시 한번 낡은 교리중 반사회적이고 비합리적인 교리는 종교회의를 거쳐서라도 바꿔야 한다. 역사적으로도 기독교 내부의 갈등(삼위일체에 대한 니케아 공의회, 종교개혁 당시 신구교간의 대립)이나 외부적 자극(과학, 천문학, 지리학적 발견, 합리주의나 계몽주의 같은 자유사상의 발전)을 극복하려는 종교운동이나 종교회의가 있었던 것처럼. 

 사람들이 종교에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음식점 삐끼인지 선교자인지 분간도 안되는 이들이 주는 화장지, 사탕, 요쿠르트, 커피 이딴게 아니닌까 말이다.

by Polycle | 2008/12/25 21:32 | 생각 | 트랙백(9) | 핑백(1) | 덧글(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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