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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아동학대

 

한 소년과 아버지

 
 한 아이가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들어왔다. 남동생과 경찰로 추정되는 40대 남성과 함께 병원을 찾은 그 아이는 화장지로 머리와 손가락 부위를 대충 둘러싸맨 상태였으며 몸 이곳저곳에 굳어버린 피가 닥지닥지 붙어있었다. 40대 남성이 접수하러간 사이 나는 머리와 손가락를 빙빙 싸매고 있던 화장지를 힘겹게 제거하고 상처를 확인했다. 머리덮개에 7센치, 그리고 손가락에 2센치 정도의 열상이 관찰되었다. 누가 보더라도 그 상처는  무언가 날카로운 물체에 베인 것이 틀림없었지만 우울한 기색이 역력한 그 아이의 표정탓에 상처에 대해 선뜻 묻기가 어려웠다. 다행스럽게도 때마침 그 아이의 동생이 '칼에 베였어요'라고 말해주는 덕분에 '칼에 베인 열상'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상처를 이리저리 소독하면서 좀 더 자세한 사연이 궁금했던 나는 그 아이에게 어떻게 칼에 베이게 되었는지를 조심스레 물었다. 우울한 표정과 달리 그 아이는 '어머니와 이혼하고 열받은 아버지가 그랬어요'라며 빠르고도 정확한 답변을 주었다. 진료에는 더이상 많은 이야기가 필요치 않았지만 자세한 내막이 궁금했던 나는 그 아이에게 좀 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냐 물었고, 그 아이는 이내 하나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다섯 달전 힘겹게 하루를 벌어 먹고사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 그 생활을 못견뎌했던 그 아이의 어머니는 결국 이웃집 남자와 야밤을 틈타 집을 나갔고, 그 이후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두 형제가 함께 살아왔다고 했다. 그 후, 아버지는 술만 마시는 날이면 두 형제에게 폭력을 가했고 급기야 오늘은 칼까지 들고 난동을 부리다 자식의 몸에 상처를 낸 것이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그런 아버지가 밉지 않니?' 라고 물었다. 아버지를 증오하고 있을거라 예상했던 내 생각과 달리 그 아이는 '잘해줄 땐 잘해주셔요.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인데 어찌 미워하겠어요. 어머니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하셔서 그럴거예요.'라고 말했다. 그 아이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당연히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을거라 생각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고, 한편으론 그 아이가 참으로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동생은 형이 자기를 보호하다 다친거라며 울먹였고, 이내 접수를 마치고 돌아온 경찰에게서 좀 더 자세한 현장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있노라니 그 난동 속에서도 동생을 보호하려했던 형의 기지와 사랑이 어린 시절 틈만나면 동생과 다투기만했던 내 자신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곧바로 CT와 X-ray 사진을 몇장 찍었고 다행히 저명한 출혈이나 골절은 관찰되지 않았으며 상처를 봉합하는 수준의 처치면 충분했다. 아이를 처치실로 데려가 머리 7바늘, 손가락 5바늘 봉합을 시행했다. 대개 아이들은 봉합을 하면 아프다고 심하게 울거나 보채서 곤란한 경우가 많은데, 겨우 열살 남짓한 그아이는 상처를 봉합하는 동안 단한번도 아프다거나 힘들다는 이야기없이 오랜시간을 잘 견디어냈다. 응급처치를 마친 후, 그 아이는 함께왔던 경찰과 함께 자세한 조사를 위해 경찰서로 향했다. 응급실을 나서면서도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나는 그 아에에게 잘가라는 인사와 더불어 곧고 올바르게 잘 자라야한다라는 말 외에는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스테이션에 앉아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린시절 나도 술취한 아버지로부터 아무 이유없이 맞았던 적이 있었다. 그 아이처럼 심한 외상을 입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언젠가 검도칼로 맞았을 때는 수일을 아퍼하며 울었던 기억도 있다.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그 아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동학대였을 것이다. 당시엔 나는 커서 절대로 술에 입도 안댈거라 다짐했고, 아무 이유없이 나를 때렸던 아버지에게 자라서 언젠간 복수를 꿈꾸며 울면서 잠든 적도 많았었다. (하지만 지금에 나는 술도 꽤나 즐기며,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로써 자라났으니 어린시절 그 맹세와 다짐들은 분노했던 한 소년의 스쳐가는 복수심이 아니었을까.) 어린시절의 나보단 상처가 훨씬 크지만, 마음만은 나와달리 너무나 따뜻했던 그 아이가 역경을 딛고 올바르게 자랄 수 있기를 마음 속으로 간절히 바래본다. 

참고) 아동학대 긴급전화 1391, 아동학대라 함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에 의하여 아동의 건강,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 또는 가혹행위 및 아동의 보호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유기와 방임을 말한다.(아동복지법 제 2조 제 4호) 아동학대의 징후가 있는 아동을 발견하였을 때에는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전문기관에 알려서 사회복지사, 의사, 교사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그 가정에 적합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덧) 후속조치에 관해서 의문을 던지시는 분들이 계셔서 추가로 남깁니다. 일단 보건의료인은 아동학대 신고권자가 맞습니다. 해당 아동은 내원 당시 경찰서에 아동학대로 이미 신고 접수된 상태였으며(경찰과 동행), 당일 새벽 급하게 응급실을 방문했던 이유는 뇌출혈 및 골절 등의 의학적 응급 상황에 대한 evaluation 및 치료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보호자인 외삼촌이 동행하여 경찰서에서 사건 경위에 대한 자세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해당 아동에 대한 정신과적 상담 등의 향후 조치는 담당 사회복지사를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허니 너무 큰 걱정 마시고 아이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by Polycle | 2009/06/19 07:40 | 일기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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