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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대한민국

 

촛불의 희망은 다시 타오를수 있을까?

 
서울시교육청 앞을 가득 메운 촛불

 나라에서 억지로 시키려는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아이들 집으로 편지를 보냈던 선생 일곱 사람이 학교에서 쫓겨났다. 선생을 잃은 아이들은 ‘어른들은 가르친 대로 살고 아이들은 배운 대로 살고 싶다’고 쓴 손팻말을 들고 거리로 뛰어들었다. 이미 92년 한차례 거리로 뛰어들었던 언론인들이 다시금 MB악법을 저지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다시금 시민들은 엄동설한에 촛불의 희망을 살리기 위해 분주히 노력하고 있다. (한겨레 “31일 보신각서 다시 들자”

 현 정권이 이 나라를 차지한 지 한 해가 되었다. 이 땅은 갈수록 자유는 없어지고 일터를 잃게 되고 부자들은 나날이 더러운 법을 만들어 맑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려 한다. 민주주의 중간 완결은 시스템이다. 물론 시스템 만능주의가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적어도 민주공화국을 표방한다면 그에 걸맞는 시스템이 확립되지 않고서는 영원히 봉건제와 공화제 사이에서 방황하는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헌데 대한민국이 리얼서바이벌 막장 버라이어티쇼의 판이 되어가고 있다. 무슨 더러운 짓을 하건 개개인의 능력껏 생존해야지 공정한 룰에 의한 관리와 심판은 물건너 간지 오래다. 하물며 도박판에서도 룰은 있는 법인데 그 룰 마저도 대한민국에서는 붕괴 되어버렸다.

 교육만 해도 그렇다. 공교육 강화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경쟁을 하더라도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문제라고 저는 보고 있다. 그런데 대학자율화니 영어몰입교육이니 사학법폐지니 하는 이야기는 무한 경쟁을 하자는 것이다. 이미 출발선이 다른데 무슨 경쟁이란 말인가? 이것은 이미 1,2 등이 정해진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나머지도 1,2 등을 향해서 무조건 죽을 힘을 다해 달리라는 것 이외의 의미는 없다. 달리다가 죽거나 말거나 말이다. 그 와중에 배불리는 사람들은 사학재단들일 것이다. 그들에게 이게 얼마나 수지 맞는 장사이겠는가.

 작금의 대한민국은 형식적으로는 민주공화제를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봉건제 또는 군주제에서 한 발자욱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 단적인 예가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와 삼성의 행태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공화제의 힘으로 이것을 제어할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다. 이걸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시스템이 아예 없거나 그나마 있던 시스템마저 망가져가고 있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예를 들어, 몇일전 시사투나잇을 보니,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한 지역에서조차 오리나 계란이 마구 외부로 반출되고 있었다. 말하자면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한 지역에 대해 어떻게 대응한다는 메뉴얼이 없는 것이다. 내 짧은 생각으로도, 일단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1차 방역팀이 가고, 도로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방역팀과 검색팀에 대한 상부 보고 구조가 체계화 되면서 서로 유기적으로 협동하는 시스템이 갖춰졌다면 지금과 같은 확산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게 없어 보인다. 있더라도 아주 미개적인 대응만이 있을 뿐이다.

 최근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허용했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일본 같은 경우는, 이 문제가 불거지면서 자국의 시스템을 먼저 갖추는데 힘을 썼다. 그리고 미국에게도 일본 자국의 시스템에 부합하는 정도의 조건을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했는가? 우리의 시스템은 거의 한 발자욱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에서 광우병 발생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만 수입해버리고 말았다. 이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가 일본과 같은 수준의 사회적 합의를 하는데 몇년이 걸릴까? 최소한 50년은 걸린다고 생각한다. 물론 50년내에 대한민국에 인간광우병이 창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시스템이 대단히 발달한 나라다. 하지만 자국에 적용하는 시스템이 그대로 외국에도 동등하게 적용된다는 생각은 대단히 순진한 생각이다. 예를 들자면, 미국의 선박 검사 시스템은 대단히 정밀하고 훌륭하다. 기름을 실어 나르는 선박과 연결하는 육상 호스에 볼트가 구멍 갯수만큼 박혀 있어야만 작업이 가능하다는게 미국의 시스템이다. 그런데 자국 선박에 대해서는 볼트가 반만 듬성듬성 박혀 있어도 그냥 작업을 한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자국내에서 소비하는 소고기의 검역만큼 그 검역기준이 수출하는 쇠고기에 동등하게 적용될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과연 그렇게 할 것처럼 보이는가? 초식동물인 소에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소의 골수와 내장과 뼈를 갈아서 먹이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검역을 어떻게 믿겠는가. 그것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더더욱 그들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거의 폐기처분 해야할 고기도 겉모양만 미끈하게 썰어서 한국에 수출하면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그것을 검증할 방법도 없으면서 말이다.

 이정도면 재앙이다. 일부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우리는 미국소를 먹고 광우병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실험하는 마루타가 될수도 있다. 시스템이나 공공에 대한 기대? 이미 오래전에 붕괴되었다. 기대의 붕괴 이후 모든 사람들은 알아서 살아남는 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 지금에 대한민국이다. 공기가 더러워져도 목캔디로 해결하자는 주의, 광우병소 들어오면 아파트 투기해서 돈 벌고 그 돈으로 유기농으로 떼워보자는 주의,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고방식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근본은 어떻게 해결되어야 할 것인가. 우리는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넘어서서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이루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보고되는 사건이나 사고 그리고 위험성에 대해서 그때그때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대응 메뉴얼을 만들고 그에 따라서 일들이 처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메뉴얼은 계속해서 업그레이드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전 분야에서 갖춰지지 않으면 아마도 우리는 조만간 경쟁력을 급속히 상실해 갈 것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데 몇년이 걸릴까? 이렇게 하자고 국민적인 합의를 달성하는데 몇년이 걸릴까? 그래서 결국 정치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을 합의라는 테두리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키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니까. 그런데 우리 정치는 지역주의와 계파정치 금권정치에 사로잡혀서 한 발자욱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정부와 권력 엘리트들은 소수 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에 연연하면서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하고, 공동체 전체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데 익숙해 있다. 나 그리고 촛불은 바로 이 점이 암울할 뿐이다. 

 우리 사회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한탄하거나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분노했던 '힘없는' 국민들이라면, 그런 사람들이 모여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마치 깰 수 없는 거대한 벽처럼 여겨졌던 절대권력의 항복을 받았던 87년 6월 항쟁처럼 말이다. 그것은 운동권 사람들의 데모만이 아니라, 힘없는 국민들의 '자발적 집회참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20년 후인 지금 새로운 모양으로 국민들 앞에 나타난 절대권력이 있다. 그때처럼 이 절대권력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힘없는 국민들의 조그마한 힘이나마 보태는 '평화적 촛불시위의 자발적 동참'일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를 타파하는 시작을 알리는 2007년의 '6월 항쟁'이었다. 87년의 6월 항쟁이 우리나라의 민주화의 완성이 아니라 그 시작이었듯이 2007년 한 해, 우리의 촛불집회 참여는 '돈'이란 이해관계로 얽혀버린 어쩌면 더욱더 공고한 우리 사회 부조리 타파의 완성이 아니라 그 시작을 알리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알았다. 그 뜻을 잇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길이란 것을. 그 길에 나서는 사람들 모두 혁명가다. 아직 늦지 않았다.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자.

by Randoll | 2008/12/30 09:35 | 생각 | 트랙백(2) | 덧글(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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