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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대박

 

씨부랄놈

 
 의식저하 및 구토를 주소로 내원한 할머니가 있었다. 요양원에 계시던 분이었는데 금일 아침부터 평소와는 다르게 무기력하고 말이 어눌해지는 느낌이 있었다고 간병인은 전했다. 몇가지 이학적 검사를 통해 신경학적인 문제를 감별해야했기에 할머니의 발가락 사이에 볼펜을 끼우고 조였더니 무기력했던 할머니가 '이 씨부랄놈아 아퍼 하지마'라며 벌떡 일어났다. 그덕에 간밤에 응급실 신세를 졌던 사람들은 모두 킥킥대며 웃었다. 보호자들은 의사 선생님이 어머님 진료하시려고 한건데 왜 그러시냐며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그분들의 입가에도 살며시 웃음꽃이 피어있었다. 

 이후 Brain CT사진을 체크했고 신경과에선 큰 문제는 없으니 요양원에서 통원치료 하시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어차피 날이 밝아야 요양원으로 가실 수 있기 때문에 그 할머니는 긴밤을 응급실에 보내야했고, 그 할머니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씨부랄놈'이 머릿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한번씩 할머니를 찾아가 '할머니 아까 왜 저한테 씨부랄놈이라고 하셨어요?'라며 애교(?)섞인 장난을 걸기도 했는데, 할머니는 연신 '기억나지 않는다'며 완강히 부인했다. 그렇게 밤새 할머니와 보호자 그리고 나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하루저녁을 즐겁게 보냈다.   

 병원에서 일을 하게되면 본의 아니게 욕을 먹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치매를 갖고 있는 환자들의 경우엔 조금이라도 잘못 보이면 욕 뭉탱이가 타이거JK와 맞먹는 수준의 RPM으로 흘러나온다. 그분들에겐 병원장이 친구요, 시장이 동생이요, 대통령이 오빠인 경우가 많으며 아무런 잘못없는 나를 그 사람들에게 말해서 혼내주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이럴땐 깊게 생각할 필요없이 '메롱'하고 혀를 내밀며 가볍게 대응해주는 것도 병원생활의 묘미다. (단, 실제로 고위직과 친분이 있는 경우도 있으니 부작용을 주의해야 한다.)

 니킥을 맞아본적도 있다. 간질 환자로 기억되는데 의식 여부를 체크하려 살짝 꼬집었다가 순간 날아온 니킥에 안면부를 강타당한적이 있다. 대개 이정도 파워로 니킥까지 날릴 정도의 상태라면 큰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기에 환자를 생각하자면 참 다행인 일이었지만 그 니킥을 직접 맞았던 나는 한참을 통증에 시달려야했기에 무척이나 불행했었다. 그 이후로는 어떠한 검사가 되었건 환자의 정면에서 얼굴을 마주보며 시행하지 않는다. 또한 환자를 꼬집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반드시 한손으로 무릎을 눌러 니킥에 대한 사전방어 태세를 갖춘다. 이런 각고의 노력으로 그 후엔 단한번도 니킥을 맞아본 적이 없다.  

 글을 쓰는데 자꾸 내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져 오늘은 그냥 여기서 접을련다.

by Polycle | 2009/11/04 12:41 | 일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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