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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그라목손

 

최악의 자살수단, 농약음독

 
 평온하다. 창밖은 아직도 짙은 어둠이 깔려있지만, 30여분 뒤면 곧 저 멀리서부터 조금씩 해가 차오를 것이다. 오늘은 11시경 밀려들었던 multiple trauma 환자만 제외한다면 지극히 고요한 응급실이 아니었나 싶다. 아직 오프를 향해 달려가는 근무 종료까지는 4시간이나 남았지만, 그 시간 동안만은 환자가 없을거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오프의 즐거움을 조금 땡겨다(?) 느끼고 있는 중이다. 뭐, 그 즐거움이라고 해봐야 대충 원없이 잠을 잔다거나 맛있는거 먹으러 빕스에 간다거나 하는 등의 소소한 것들이지만.

 사실 출근 당시만해도 일진이 나쁠거라 생각했다. 입구에 들어선 순간 마주친 그라목손 음독 환자의 위세척을 해내느라 진땀을 뺐다. 음독량이 많았기에 환자 상태 역시 나뻤고 그 상태만큼이나 보호자들 액팅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야기에 앞서 그라목손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하자면, 그라목손은 1882년 영국에서 염료로 개발됐으나 제초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1958년부터 제초제로 사용되고 있는 약물로, 국내에서도 지난 70년대부터 농약상을 통해 농가에 유통되고 있다. 식물의 잎에 한방울이라도 튀면 금방 구멍이 날 정도로 독성이 강해 ‘불약’이라고도 불리우는데, 농민들이 주로 자살을 시도할 때 음독하는 농약 중 꽤나 높은 비율로 선택되는 약이기도 하다.

 이와같이 독성이 강한 그라목손을 사람이 먹게되면 그라목손이 닿은 곳(구강점막, 혀, 인후부, 식도 등)이 모두 세포의 괴사가 일어나 표면이 헐어버리는데, 이는 그라목손이 내는 발생기산소(활성산소)의 영향으로 알려져 있다.그라목손은 위장관에 심한 자극을 주고, 신장기능을 억제, SOD(superoxide dismutase)를 억제하여 호흡기를 파괴하고, 폐섬유화를 진행시켜 마침내는 호흡부전 상태를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끔 한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그라목손은 피부로도 흡수되기에 닿기만 해도 인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실제 피부접촉을 통해 사망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항간에는 의사가 그라목손을 음독한 환자를 진찰하다가 환자가 기침하면서 튀어나온 침이 눈에 들어갔고 그걸로 죽었다는 병원전설이 있다고도 하는데, 그 진위여부는 알 수가 없다.)

 할아버지의 슬픈 사연을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오늘 꽤나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그때문에 그라목손을 100ml 이상 음독했다고 했다. 음독후 곧바로 부인이 119에 연락하여 응급실로 실려온 것이었다. 처음 할아버지를 마주하는 순간 (다른 농약제제와 다르게 그라목손의 경우 해독제가 없는데다 한모금만 마셔도 사망률 99.9%를 자랑하는 독약과도 같은 것이기에) 그다지 목숨을 오래 연명하지 못할거라 생각했다. 1시간여 뒤, 자식들이 응급실로 몰려왔고 니탓 내탓하며 언성을 높이고 한참을 싸우더니 '가망이 거의없다.'는 과장님의 말 한마디에 조금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내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겠냐고 애원했지만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없이 환자를 진료하고있던 찰나 보호자 중 그나마 차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사위되는 사람이 내게와 편히 보내드릴 방법은 없겠냐며 수면제라도 달라했지만, 위세척과 마약성 진통제 외에는 산소 한방울조차 할아버지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할아버지는 새파랗게 눈을 뜬채 4~5시간을 고통과 자녀들의 울부짖음 속에서 보내며 서서히 저승사자가 오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고, 의사인 나는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병원에 올 때만해도 멀쩡했던 사람이 내원 6시간여만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장례식장으로 실려나갔다.

 이처럼 그라목손은 맹독성이 강해서 농약관리법은 안전사용 교육을 받은 사람에한해 구입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주관 기관인 농촌진흥청이교육이수증을 발급하지 않아 교육받은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고, 실제로 농약 판매상도 이를 문제삼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관리가 허술한 상태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수퍼마켓에서 음료수 사는 것보다 쉽게 구할 수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와같이 위험성이 큰 그라목손이 왜 아직까지 생산중단 혹은 판매금지 처분 당하지 않는 것일까. 항간에는 다국적 기업의 이권 등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있다고들 하지만 정확한 사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정치 혹은 경제적인 문제가 어떻게 되었건간에 한 사람의 의사로써 이와같은 독극물 수준의 그라목손이 유통되는 것은 반드시 금지시켜야하며, 동시에 농촌에 계신 아버님, 어머님들이 여러문제로(우울증, 자식문제 등) 자살을 선택하고 나아가 그 수단으로 그라목손 등의 농약을 선택하는 일은 없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하고 비참하고 처참하게 고통받으며 서서히 죽어가는 길이 바로 그것일테니 말이다. (농촌에 부모님을 두신 분들, 당장 1.고향집에서 그라목손 치우기, 2.부모님 화나거나 우울하시지 않도록 자주 찾아뵙고 인사드리기, 두가지 꼭 지킵시다!)

by Polycle | 2009/06/12 09:40 | 일기 | 트랙백(1) | 덧글(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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