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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열어야 합니다.

 


 치프의 부재로 과의 모든 수술을 집도 혹은 참여하고, 피곤에 쩔어 잠들고, 다시 일어나서 학회 심사 준비하다 응급 환자 오면 수술하는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마음을 다잡아 보려고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가출하려다 서태지의 컴백홈을 듣고 마음을 다잡았다'는 멘토링이 생각나 조용한 새벽 음악을 켜고 볼륨을 높이니 마음을 다잡기는커녕 컴백병원이 아니라 고향집으로 컴백하고 싶은 향수병마저 앓게 만들고야 말았다. 어느 순간 잠이 들어버렸고, 시끄러운 벨소리에 눈을 깨보니 책상머리에는 피곤함을 반증하는 침만 흥건히 흘러있었다. 새벽3시. 간밤에 낙상으로 인해 발생한 경미한 뇌출혈로 보존적 치료를 결정하고, 중환자실에서 지켜보던 초등학교에서 경비 일을 하는 수위 아저씨의 의식이 쳐지고 우측 동공이 벌어졌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간호사의 노티는 비몽사몽하며 반쯤 감긴 나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뇌압상승으로 인한 뇌허탈이 의심되었고, 곧바로 만니톨을 두개 로딩한 후 침대를 끌고 CT 방으로 내려갔다. 역시나. 경미하던 출혈이 두 시간 만에 엄청나게 늘어 있었고, 우측으로 부분적 뇌허탈이 관찰되었다. CT 방에서 곧바로 침대를 끌고 수술방으로 향했다. 일단 수술방 앞에서 스탠바이한 후 보호자들을 만났다. 다른 설명은 필요치 않았다.

 '무조건 당장 열어야 합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

 하지만 보호자들은 답답했다. 당장 형편이 넉넉지 않고, 수술하더라도 정상적인 회복이 어렵다면 환자를 돌볼 여유가 있는 가족이 없다며 수술적 치료를 한사코 거절했다. 화가 났다. 고민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아직 늦지 않았고 지금이라도 두개골을 열고 출혈을 제거해주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일단 살리고 그 후 문제를 고민하자 보호자를 설득했다. 환자가 운명하고 난 뒤 미련이 남을 선택은 하지 말자고 했다. 그렇게 삼십분이 지나갔다. 그 사이 우측 동공은 더욱 커졌지만 다행히 환자의 생체 활력 징후는 아직 안정적이었다.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았던 할머니와 달리 아들과 며느리의 눈물이 고이더니 내 의견에 따르겠다 말했다. 남은 것은 그 환자의 부인이었던 할머니. 이십대 후반의 의사가 칠순이 넘은 할머니에게 부부의 연, 살아온 인생 등 을 운운하며 수술을 결정하도록 설득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였다. 그렇게 또 삼십분이 지나가고, 결국 수술이 결정되었다.

 이제부터는 1분, 1초의 시간 낭비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이미 동공이 벌어진 후 한 시간을 보호자 설명에 허망하게 소비해버렸다.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플랜을 세웠다. 침대에 옮기는데 1분, 혈관을 잡고 마취까지 마취과에서 가져가는 시간이 적어도 30분, 그 사이 머리카락을 밀고 포지션을 잡아야 했고, 다시 드랩하는데 3분, 수술포를 덮는데 5분, 라인 연결하는데 2분, 국소 마취제를 주입하는데 1분, 두피를 열고 근육을 젖히는데 적어도 10분, 그 사이 지혈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합하면 적어도 두개골을 여는데 까지 한 시간이 더 걸렸다. 우측 동공이 벌어진 후 두개골을 열고 감압까지 세 시간. 예후는커녕 뇌가 기어오르지는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는 연습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해보고 또 해본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준비 시간은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예상보다 10분 더 걸려서야 두피에 칼이 들어갈 수 있었다.

 우측으로 두피를 크게 열고, 보비로 안쪽까지 벌린 후 드릴을 이용하여 두개골에 구멍을 서너 개 뚫고, 톱을 이용하여 두개골을 절개를 시작했다. 뇌를 덮고 있는 경막을 여는 순간, 나는 절망하고 말았다. 미친 듯이 기어오르는 뇌. 여태껏 본 것 중 가장 심한 부종이었다. 경막하 출혈을 걷어내고 뇌 안쪽을 살펴보니 동맥으로 추정되는 혈관이 찢겨 있었고 그 주변으로 미친 듯이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사이 뇌는 계속 부풀어 올라 종래에는 두피를 닫을 수조차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급하게 주변부 혈관을 지혈하고 뇌 안쪽의 출혈은 거즈를 둘둘 말아 압박하여 임시 지혈해놓았다. 그 사이 도착한 교수님은 뇌 상태를 보시더니 어렵겠다며 뇌가 더 기어오르기 전에 그냥 닫고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수술방에서 어레스트가 나서 환자가 사망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역시나 부풀어 오른 뇌 때문에 봉합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급박한 상황 탓에 일부 뇌를 절제하고 곧바로 두피까지 한 층으로 봉합하였다. 그렇게나 많은 피가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혈압이 유지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보호자들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원망스러웠다.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지만 결국 뇌사가 진행될 것이며 얼마 버티지 못하고 환자는 사망하게 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빨랐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뇌 컨디션이 괜찮았다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과 미련이 하루 종일 내 주변을 맴돌았다.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며 인사를 하는 보호자들을 뒤로한 채 돌아서면서 눈물이 찔끔 났다. 늦게라도 수술을 결정한 그들은 나름의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설사 환자가 운명하더라도 미련이 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미련은 수술로서 환자를 살리지 못한 나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었다. 어차피 확률 게임이라며, 미련이 남지 않도록, 1%라도 살 수 있다면 가능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그들을 설득했던 스스로가 아니었는가. 또한 살려주지 못한 그 환자에게 한없이 죄스러운 마음만 남는다. 당직만 아니라면 정신 나가 취할 때까지 술이라도 마시겠지만, 그마저도 할 수 없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절망하고 후회하는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 보일 뿐이다. 아 정말 찌질하다, 오늘의 나.

by Polycle | 2012/06/30 20:28 | 레지던트일기3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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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2/06/30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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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홍쎄 at 2012/06/30 21:05
힘내세요...
Commented at 2012/06/30 21:1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2/06/30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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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2/06/30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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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880760072 at 2012/06/30 22:16
감사합니다.
Commented at 2012/06/30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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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2/07/0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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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보호자 at 2012/07/01 01:24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조금이나마 공감할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Commented by 잉? at 2012/07/01 21:05
토닥토닥. .힘내세요
Commented at 2012/07/02 00:2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2/07/02 11:4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반짝반짝 at 2012/07/05 17:06
오늘의 찌질함이 분명 내일의 더 나은 폴리클님을 있게 해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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