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를 입고 실려 온 한 신부, 그 후 레지던트일기1



2주 만에 찾아온 주말 오프, 바깥세상을 구경할 요량에 내 가슴은 콩딱콩딱 뛰고 있었다. 헌데 병원 정문을 나서기 일보 직전 ‘응급왔숑‘ 알람과 함께 핸드폰 화면에 5.8.4.0 선명한 네 글자가 찍혔다. 그 순간 내 마음 속에 갈등의 회오리바람이 요동쳤다. 햄릿의 고민보다 더 처절한 ’To go or Not'. 응급환자를 무시하고 오프를 나갈 것인가 아니면 환자를 진료할 것인가 고민에 빠져있는 사이 내 발걸음은 이미 응급실 문턱을 향하고 있었다. 수술 케이스만 아니어라, 아닐 거야, 아니어야 해. 울렁대는 가슴을 붙들어 매고 중증구역을 둘러보며 환자를 찾았다. 60대로 보이는 한 할아버지가 순을 거칠게 몰아쉬며 침대에 누워있었고, 촬영한 뇌 CT에서는 30cc 가량의 고혈압성 뇌출혈이 의심되는 소견이 관찰되었다. 30cc의 출혈에 근력저하 등의 신경학적 이상이 동반되어 있었던 그 환자는 머리에 프레임을 씌우고 출혈 내 도관 삽입 술을 시행키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내 소중한 오프는 그 환자의 수술이 종료될 때까지 미뤄졌다. 웃음기 하나 없는 약간은 찡그린 듯 한 얼굴로 머리에 나사 못 달린 프레임을 열심히 박고 있던 찰나, 의식불명을 주소로 한 젊은 여성을 업고 있는 정장차림의 한 남자가 응급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들어왔다.

다시 한 번 내 가슴은 콩딱콩딱 거렸고, 프레임을 박고 있던 내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프레임 거치가 종결된 후 할아버지를 CT 방으로 보냈고, 그 여자 환자가 자칫 신경외과적인 문제를 가진 환자일 수도 있다는 불안한 마음에 그 곁으로 달려갔다. 초진하던 인턴 선생을 밀치고 옆에 서있던 간호사 선생의 펜 라이트를 빼앗아 동공을 확인해보니 anisocoric 2F/4F(비대칭 동공), light reflex(대광반사) 없는 semicoma(반혼수) 상태였다. 본능적으로 직접 응급 기도 삽관을 시행하고 곧바로 CT 촬영을 준비시켰다. 하지만 굳이 CT를 촬영하지 않더라도 뇌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강력하게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CT 촬영까지 그 환자와 동행했다. 그 환자의 벌어진 동공은 뇌경색이든 뇌출혈이든 뇌이미 뇌부종으로 인한 뇌허탈이 진행되어 거의 99% 가까이 머리뼈를 열어주는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나의 소중한 주말 오프를 위해서, 그리고 그 젊은 여자의 무사 생환을 위해서라도 뇌출혈은 아닐 꺼라 애써 마음속으로 부정하며 뇌경색? 간성혼수? 급성 호흡부전? 등 말도 안 되는 의학적 이유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하지만 솔직했던 내 입은 이미 그녀 주변으로 모여든 가족들에게는 '뇌 문제일 가능성이 90% 이상이다' 이며 응급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 여자의 침대를 직접 밀고 내려가 CT 촬영실에서 즉석복권을 긁는 심정으로 한컷 한컷 촬영된 이미지를 넘겼다. 일단 cortical hemorrhage(피질부출혈)는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그 아래인 Basal ganglia(기저핵)만 무사히 넘기면 나나 그 여자나 이 상황이 나에게는 해피 엔딩으로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짧게나마 가졌다. 하지만 CT 32번 이미지를 지나 33번 이미지로 가는 순간 가슴 저 깊은 곳으로부터 긴 한숨이 밀려나오기 시작했고 가슴이 급격히 답답해졌다. AVM(동정맥기형) 파열로 인한 100cc 가량의 뇌출혈, 또한 뇌허탈도 상당수 진행된 상태였다. 두개골 절개를 통한 감압 수술이 응급으로 필요한, 그래서 자연스레 내 오프는 다음 주를 기약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어차피 중단될 오프, 환자나 제대로 보자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이내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입고 있었던 옷은 하얀 웨딩드레스였고, 오늘은 바로 그녀의 결혼식이 치러지는 날이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채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있는 그녀의 옆에서 말끔하게 턱시도를 차려입고 흐느껴 우는 사람은 바로 그녀의 배우자가 될 사람이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병원 건너편에 있는 웨딩 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던 찰나 주례사를 듣는 도중 그녀가 갑작스레 실신하며 쓰러졌고, 그는 그런 그녀를 등에 업고 곧바로 건너편 우리 병원의 응급실을 찾아온 것이었다. 이후 결혼식에 참석했던 친지들 역시 응급실로 찾아왔고, 나는 마치 주례라도 선 것처럼 구름 떼같이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의 상태와 치료계획에 대해서 하나둘씩 설명했다.

수술 후에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사망 가능성도 30~40% 이상이라는 말에 장차 가족들은 흐느껴 울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아버지 역시 수년전 뇌출혈로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사망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 당시의 고통과 아픔을 다시 겪고 싶지 않고, 설사 목숨은 부지하더라도 식물인간 상태의 그녀를 평생 누가 돌볼 수 있겠냐며 수술하지 말고 그저 편히 보내주자는 말을 그녀의 남편 될 사람과 가족들 앞에 꺼냈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그 누구도 어머니의 생각에 반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그녀 곁을 지키고 있었던 예비 신랑은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며 본인이 평생을 책임질 테니 설사 죽는다 하더라도 그녀가 억울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며 수술을 꼭 해보자고 그녀의 어머니와 가족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10분, 20분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가족들 간에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결국 어머니는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동공이 점점 산대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환자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고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인턴 선생들에게 수술 준비를 지시하고 침대를 밀고 수술 방으로 직행할 것을 종용했다. 침대가 이동하는 사이 나는 그녀가 입고 있던 하얀 웨딩드레스의 한 가운데를 가위로 잘랐다. 하얀 웨딩드레스 옆에 주렁주렁 달린 작은 구슬들이 응급실 침대 옆으로 산산이 굴러 흩어졌다. 수술 방으로 들어선 후 신부에게는 하얀 웨딩드레스 대신 하얀 색깔의 환의가 입혀졌고, 곱게 바른 얼굴의 화장과 공들인 흔적이 역력했던 손톱과 발톱의 매니큐어는 알코올 솜에 의해 무참히 지워졌다. 그녀는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과 예비신랑을 뒤로한 채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수술방 안 깊은 저편을 향해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또다시 날밤을 새야하는 장시간의 수술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수술방 밖으로 나와서 가족들에게 경과를 설명하고,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도 있음을 다시 한 번 주지시켰다. 엘레비이터를 타고 병동으로 올라가려던 찰나 그녀의 예비 신랑이 내 손목을 붙잡더니 담배 한대 같이 태울 수 있겠냐 물어왔다. 평소 담배를 태우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이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의무감 때문에 함께 밖으로 향했다. 한 개비, 두 개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그는 그녀를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지난 8년간의 연애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이대로 그녀를 떠나보낼 수는 없다고 했다. 1년에 두 세 차례 두통과 구토가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병원에 데려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자신을 원망했다.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고, 애써 감추려 노력했건만 두 뺨으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녀는 장장 8시간에 이르는 긴 수술을 마친 후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받았다. 수술 직후  반 혼수에서 혼미상태로 의식상태가 일부 호전을 보여 의식이 깰 수도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해야 할 날에 머리카락 한 올 남지 않은 채,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여 목숨을 연명해가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비록 2주 만의 오프가 잘렸지만 그녀가 무사히 회복되기만 한다면 내 작은 희생이 전혀 아깝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는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부답인 채로 누워만 있었다. 중환자실을 나서며 예비 신랑에게 그녀의 상태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채 마르지도 않았던 눈가에 다시 눈물이 고이며 제발 살려만 달라는 그를 뒤로한 채 매섭게 돌아섰다. 그녀가 치료받았던 20일 동안 그와 나의 대화는 항상 같았다. ‘선생님, 깰 수 있을까요?’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기다려봐야죠’라며 평행선을 긋는 대화만 지속될 뿐이었다.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서 인공호흡기에 기대어 간신히 호흡만 하던 그녀의 손가락에는 언젠가부터 작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매일 그녀의 손을 붙잡고 기도했다. 돌아설 때는 항상 이마에 키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도 마음 속 깊이 사랑의 기적을 기대하며 그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의 사랑과 기도 덕분이었을까. 그녀는 치료 중 반혼수에서 혼미상태로 의식상태가 일부 호전을 보이며 잠시나마 한줄기 희망을 갖게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안정한 뇌 컨디션과 장기간 인공호흡기 사용은 결국 그녀를 폐렴으로 인한 패혈증 악화로 사망에 이르게 했다. 그녀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며 DNR(심폐소생술 거부의사)을 제출하자던 그녀의 어머니와는 다르게 그는 끝가지 최선을 다해달라 부탁했었다. 하지만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녀의 몸은 가슴을 짓누르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돌아오라 외치는 우리의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가 죽음의 9부 능선마저 넘어버렸던 눈 내리는 어느 추운 겨울날 그와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일직선으로 늘어진 심전도 리듬을 가리키며 그녀의 사망을 선언했다. 얼마 뒤 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그를 만났는데 그저 묵묵히 얼굴만 바라보고 목례만 할 뿐 그 어떤 이야기도 주고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두 눈에는 세상 그 어떤 이보다 슬픔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그녀가 사망하기 두 시간 전까지도 설사 그녀가 식물인간이 된다 하더라도 평생 옆에서 그녀를 간호하며 살 것이라 내게 말했다. 만약 나였다면 회복 가능성이 낮았던 그녀를 변함없이 사랑하며 신부로 맞이할 수 있었을까. 죽음마저도 가를 수 없었던 그 위대한 두 남녀의 사랑 앞에서 흐느끼는 그를 뒤로한 채 돌아서는 내 마음과 발걸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 1년차 시절 썼던 일기의 뒷 이야기입니다. 금번 한미수필문학상에 응모 후 당선되어 새롭게 공개합니다. 수줍은 느낌의 미소를 들러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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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2/02/05 12:4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큐베 2012/02/05 12:46 # 답글

    쩝......
  • 피그말리온 2012/02/05 12:59 # 답글

    담배가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네요.....
  • 少雪緣 2012/02/05 13:11 # 답글

    고생하셨습니다....피그말리온 님의 말 처럼, 담배는 이럴때 땡기네요....
  • 사과쨈 2012/02/05 13:17 # 답글

    에구...전에 읽었던 이야기 같길레 해피엔딩이었나...했는데 현실은 슬프군요 ㅠㅠ
  • 2012/02/05 13:2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2/05 14:1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2/05 16:4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2/05 16:5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2/05 17:0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시두리 2012/02/05 17:51 # 답글

    다시 올리셨길래 결과가 좋았나 희망을 가지고 봤는데.. 아니었군요.
  • draco21 2012/02/05 19:34 # 답글

    ..... 한편의 동화군요. 너무나도 슬픈.. (구름과자)
  • 2012/02/05 22:0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김동영 2012/02/06 00:20 # 삭제 답글

    형님감사합니다 이렇게 부탁한걸ㅜㅜ댓글하나하나다보시구나ㅜㅜ
  • 김동영 2012/02/06 00:22 # 삭제 답글

    어쩌면 그신부가 최고의날까지 버틴건 잠재력인가..
  • vegatus 2012/02/06 01:34 # 삭제 답글

    아.. 저도 다시 올리셨길래 영화 처럼 결과가 좋았나 했는데..
    안타깝네요 ;;
  • 키세츠 2012/02/06 09:57 # 답글

    슬프네요...

    P.S : 그래도 수필 당선은 축하드립니다.
  • naregal 2012/02/06 14:02 # 답글

    언제나 환자가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면 보호자들은 두쪽으로 갈라지나 봅니다.

    아니,세상이 그렇게 만들어저 있는걸지도 모르지요.

    수필 당선 축하드립니다.
  • ㅇㅇ 2012/02/07 17:00 # 삭제 답글

    글을 넘 잘쓰세요..
  • 탐랑 2012/02/17 12:11 # 삭제 답글

    항상 그렇다니까요. 그냥 잘 사는 사람들은 이혼 못해 안달이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겨서라도 갈라놓는 것 같아요,,,
    이미 돌아가신 여자분이 너무 부럽네요
  • 2012/03/14 10:4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김서연 2012/07/19 17:32 # 삭제 답글

    우연히 검색하다 글을 읽으면서 소설인 줄 알았는데 수필이어서 정말 놀랐습니다
    저는 이제 국시 준비를 앞두고 어제 막 기말 고사를 끝낸 본과4학년 학생인데 사랑과 일 모두 고민인 시점이에요...두가지 모두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국시 준비하며 자주 들리겠습니다^^
  • 2014/04/25 23:1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소라 2014/07/11 16:42 # 삭제 답글

    자원봉사활동을 하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글을 읽어갈때마다 제발 신부가 기적처럼 깨어나길 바랬는데요...
    결국.....
    마음이 찡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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