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 드레스를 입은 채 실려온 여자 레지던트일기1



 주말 오프 나가기 일보 직전 응급왔숑 문자 덕분에 발목이 잡혔다. 고혈압성 뇌출혈이 의심되었던 그 환자는 머리에 프레임을 씌우고 도관삽입술을 시행할 예정이었고, 그 덕에 내 소중한 오프는 그 환자가 수술방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잠시 홀딩되었다. 웃음기 사라진 얼굴로 프레임을 열심히 박고 있던 찰나, 의식불명을 주소로 한 젊은 여성을 업고 있는 정장차림의 한 남자가 응급실 문을 거칠게 열어 제끼고 들어왔다. 불안한 마음에 옆에 서있던 간호사의 펜라이트를 빼앗아 동공을 확인해보니 anisocoric 2F/4F(비대칭 동공), light reflex(대광반사) 없는 semicoma(반혼수) 상태였다. 응급으로 삽관을 시행하고 CT 촬영을 준비시켰다. 하지만 굳이 CT를 촬영하지 않더라도 뇌쪽의 문제를 강력하게 의심할 수 있는 그리고 100%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나의 소중한 오프를 위해서, 그리고 그 젊은 여자를 위해서라도 뇌출혈은 아닐꺼라 애써 부정했지만 철철치 못한 내입은 이미 그녀 주변으로 모여든 가족들에게는 '뇌 문제일 가능성이 90% 이상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CT 촬영실에서 즉석복권을 긁는 심정으로 한컷 한컷 촬영된 이미지를 넘겼다. 일단 crotical hemorrhage(피질부출혈)는 없음을 확인한 후, Basal ganglia(기저핵)만 무사히 넘기면 해피엔딩이 될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 32번 이미지를 지나 33번 이미지로 가는 순간 가슴 저 깊은 곳으로부터 긴 한숨이 밀려나왔다. 100cc 가량의 뇌출혈, 거기에 뇌허탈도 일부 진행된 상태였다. 당연히 감압술 등의 응급수술이 필요했고, 자연스레 내 오프는 홀드될 수 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어차피 홀드된 오프, 환자나 제대로 보자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찰나 나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입고 있었던 옷은 웨딩드레스였고, 그날은 바로 그녀의 결혼식이 치뤄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채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있는 그녀의 옆에서 턱시도를 차려 입은채 흐느껴 우는 사람은 바로 그녀의 배우자가 될 사람이었다. 사연인 즉슨 병원 건너편에 있는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던 찰나 주례사를 듣는 도중 그녀가 갑작스레 실신하며 쓰러졌고, 그런 그녀를 등에 업은채 곧바로 병원 응급실로 찾아온 것이었다. 이후 결혼식에 참석했던 친지들 역시 응급실로 찾아왔고, 그렇게 구름떼처럼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의 상태 및 치료계획에 대해서 하나둘씩 설명했다.

 수술 후에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사망 가능성도 10% 이상이라는 말에 장차 가족들은 흐느껴 울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아버지 역시 수년전 뇌출혈로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사망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 당시의 고통과 아픔을 다시 겪고 싶지 않고, 설사 목숨은 부지하더라도 식물인간 상태의 그녀를 평생 누가 돌볼 수 있겠냐며 수술하지 말고 그저 편히 보내주자는 말을 가족들 앞에 꺼냈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그 누구도 어머니의 생각에 반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그녀 곁을 지키고 있었던 예비 신랑은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며 본인이 평생을 책임질테니 설사 죽는다 하더라도 그녀가 억울하지 않도록 노력이라도 해야되는 것이 아니냐며 수술을 꼭 해보자고 어머니와 가족들을 설득했다.

 10분, 20분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가족들 간에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결국 어머니는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녀가 입고 있던 하얀 웨딩드레스가 벗겨지고, 대신 같은 색깔의 환의가 그녀에게 입혀졌다. 곱게한 신부화장과 공들인 흔적이 역력했던 손톱과 발톱의 메니큐어는 알코올 솜에 의해 무참히 지워졌다. 그녀는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과 예비신랑을 뒤로한채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수술방 저편을 향해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또다시 날밤을 지새야 하는 장시간의 수술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고, 그와 동시에 소중한 내 오프도 자연스레 소멸되었다.

 수술방 밖으로 나와서 가족들에게 경과를 설명하고,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도 있음을 다시한번 주지시켰다. 엘레비이터를 타고 병동으로 올라가려던 찰나 그녀의 예비 신랑이 내 손목을 붙잡더니 담배 한대 같이 태울 수 있겠냐 물어왔다. 평소 담배를 태우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이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의무감 때문에 함께 밖으로 향했다. 한 개피, 두 개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그는 그녀를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지난 8년간의 연애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이대로 그녀를 떠나보낼 수는 없다고 했다. 1년에 두세차례 두통과 구토가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병원에 데려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자신을 원망했다.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고, 애써 감추려 노력했건만 두 뺨으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현재 그녀는 장장 8시간에 이르는 긴 수술을 마친 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고 있다. 의식은 반혼수에서 혼미상태로 약간 좋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외부 자극에 유의한 반응을 보이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리고 행복해야 할 날에 머리카락 한 올 남지 않은채,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여 목숨을 연명해가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마음이 아펐다. 비록 오프가 박살이 났다 할지라도 무사히 회복되기만 하면야 전혀 아깝지 않을거라 생각했건만 그런 그녀는 이런 담당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묵묵부답인 채로 누워있다. 중환자실을 나서며 예비 신랑에게 그녀의 상태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재차 눈물을 보이며 제발 살려만 달라는 그를 뒤로한채 돌아섰다. 만약 나라면 그렇게 아픈 그녀를 여전히 신부로 맞이할 수 있었을까란 철없는 생각과 함께 그 두 남녀의 대단한 사랑 앞에 한없는 경의를 표하며 그렇게 안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숙소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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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운향목 2011/02/21 02:23 # 답글

    아..
    얼마전에 생긴 제 애인님도 자주 구토를 호소하는데, 종합건강검진을 받아봐야 할까요...
    부디 무사히 회복되길 진정으로 바라게 됩니다 ㅠ
  • 2011/02/21 02:2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02/21 02:4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동사서독 2011/02/21 08:46 # 답글

    슬픈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T T
  • Anna 2011/02/21 10:25 # 답글

    가슴아프네요...
  • 지니 2011/02/21 10:34 # 삭제 답글

    정말 영화같은 이야기네요.. 부디 기적같은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theta 2011/02/21 11:17 # 삭제 답글

    참.. 가슴아픈 이야기네요..
  • 먹보 2011/02/21 11:20 # 답글

    제 주위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늦게 결혼하신 분이었는데 몸이 않 좋은 걸 알면서도 결혼을 하셨답니다..상대편 남자 분이 대단하신 거죠...얼마나 사랑하면 그럴 수 있을까?..뇌 수술도 받았지만 결국은 생을 마감하셨다는..몸은 정말 건강할 때 돌봐야 하고 젊은 나이에 죽는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지요...폴리클 님 몸 챙기세요.
  • MK-10 2011/02/21 11:30 # 답글

    아.. 그저 소리없이 눈물지을수 밖에 없는 이야기네요..
  • 흑염패아르 2011/02/21 11:54 # 답글

    아.. 무사히 깨어나셨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예비 신랑분 마음이 대단하시네요. 부디 그 마음 끝까지 잃지 마시고... 꼭 깨어나셔서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 2011/02/21 12:4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02/21 13: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vivid 2011/02/21 13:28 # 삭제 답글

    8년의 연애..
    가장 기다렸을 결혼식날에..
    정말 삶이 드라마보다 영화보다 더 하다는 말이 맞는거 같아요.

    오늘 아침에 중국에서 식물인간이 된 아내 곁에서
    몇년 동안 남편이 계속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그 아내가 의식을 회복했고,지금은 아이낳고 잘 살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그런 기적이
    새신부와 신랑에게도 일어나길
    바래봅니다.
  • PJ 2011/02/21 19:27 # 삭제 답글

    vivid 님 말처럼 그런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네요.
  • 서찬휘 2011/02/21 20:21 # 답글

    눈물 날 듯합니다. 기적을…….
  • bluesoup 2011/02/21 21:38 # 답글

    아. 가장 행복해야 할 날에.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사연이네요.
    결말은 그보다 더 극적인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리군 2011/02/21 21:58 # 답글

    후아... 정말 삶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네요 부디 해피엔딩이길 바랍니다.
  • 시쉐도우 2011/02/21 21:59 # 답글

    그 신랑분의 애정을 생각하면

    신부가 어느 봄 햇살이 내려쬐는 침대에서 눈을 뜨는 기적이 일어나길

    기원드립니다...

    병원 속의 살아숨쉬는 감동이야기를 전해주셔서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 Libra♡ 2011/02/21 22:33 # 답글

    그 남자는 신부를 어떤 마음으로 사랑했길래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요??
    저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대단한 사람일 듯..

    저 남자의 큰 사랑이 결실을 맺어서 여자분이 건강하게 깨어나셨으면 좋겠어요>ㅁ<
  • Saint 2011/02/21 23:41 # 삭제 답글

    어우.. 긴글이라 그냥 슥슥하려다가 어느순간부터 끝까지 다 읽어나가는 저를 발견했네요.
    병원만 일찍 가봤었어도.. ㅜ_ㅜ
    꼭 깨어나셨으면 좋겠습니다.
  • 2011/02/22 00:0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박아름 2011/02/22 01:13 # 답글

    꼭 그여자분이 깨어나셨으면 좋겠네요 ㅠㅠㅠ 한밤중 폭풍감동... 트랙백해갑니다ㅠㅠㅠ
  • 돼지퍼그 2011/02/22 01:16 # 삭제 답글

    신부님 하루빨리 병상에서 툴툴 털고 일어 나셔서
    깨소금 맛 나는 신혼생활 즐기시길 기도드릴거에요
    ㅠ ㅠ 이세상은 참.. 불공평한거 같아요
  • ALICE 2011/02/22 01:29 # 답글

    아유..글만 봐도 눈물나네요..ㅜㅜ
    영화보다 더 극적인 상황인 만큼, 그 정도의 반전이 일어나길 바랍니다...ㅜㅜ
  • 휴리 2011/02/22 12:15 # 삭제 답글

    꼭 일어나셨으면 좋겠어요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 로사 2011/02/22 15:21 # 답글

    정말 안타깝네요. 무사히 회복되셔서 아름다운 사랑 이어 가셨음 좋겠습니다.
  • 지나가던의대생 2011/02/22 20:45 # 삭제 답글

    안타까운 일이네요... 저희 병원 NS돌때도.. 25살짜리 여대생이 딱 저 위치... basal ganglia에 출혈생겨서 누워있었거든요 ICU에... 기분 이상하더라고요...
  • 2011/02/22 23: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INA 2011/02/23 13:13 # 삭제 답글

    매일 눈팅만 하다가 처음 글을 남깁니다.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네요 ㅠ_ㅜ
    그 이야기를 담백하게 쓰시며 마음을 동하게 만드신 폴리클님의
    글솜씨도 훌륭하시구요.

    꼭 회복하시길..
  • 2011/02/24 01:26 # 삭제 답글

    하루 빨리 완쾌되셨으면 좋겠어요....
    얼른 깨어나셔서 행복하게 잘 사셔야 하실텐데....
  • 2011/02/25 11:4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02/25 19:0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의학소녀 2011/02/25 20:33 # 삭제 답글

    완전안탑가우면서도 슬프면서도 . 완전 감동적인 이야기 같아요,,

    와~~ 그래두 이 환자분께서 얼릉 깨어 나셧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푸리 2011/03/09 18:37 # 답글

    제 남친은 저 죽으면 딴 여자랑 결혼하겠다는데 ㅡ.ㅡ;;
    부럽네요 ㅋㅋ

    (화내니까 그런 꼴 보기 싫으면 죽지 말라는 변명을 ㅋㅋ)
  • 으하하 2011/04/25 21:29 # 삭제 답글

    힘내세요ㅠㅠㅠ
  • ㅁㅁㅁ 2011/06/02 15:13 # 삭제 답글

    이런 충격적인 상황에서도 오프가 아쉬운 모습을 보니.. 모든 일에는 내성이 생기나보네요.씁쓸
  • ㅠㅠ 2012/01/28 17:18 # 삭제 답글

    늦게 읽었는데, 지금 신부분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쾌차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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