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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때문에 놓치는 것들

 
 신종플루 패닉 때문에 환자가 늘어 고생스럽기도 하지만 장점도 몇가지 있다. 신종플루 때문에 밖으로 나도는 사람들이 줄다보니 교통사고나 다툼 등으로 발생한 외상 환자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더불어 10-11월이면 이 지역은 여기저기서 축제가 난무하는 시절인데, 그 많은 행사들이 hold되는 덕에 복통이나 음식 알레르기 환자들도 예년에 비해 많이 줄었다. 환자가 없다는건 응급실 당직의에겐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다.

 대신 고열을 주소로 내원하는 환자가 늘어 다양한 열성 질환 감별에 애를 먹는 중이다. 실제로 한 환자의 경우 고열과 목구멍 통증을 주소로 내원했는데, 다른 환자와 달리 침이나 음식물을 삼키기 힘들다며 연하장애까지 호소했었다. 목구멍을 확인했지만 특이소견은 관찰되지 않았고 웬지모를 꺼림직한 마음에 항생제까지 커버했고 이후 환자 상태를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피검사와 방사선 사진(neck AP/lat)까지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환자와 보호자 모두 신종플루 같다며 플루 확진검사 및 증상치료만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10여분을 실랑이 끝에 결국 검사를 진행하지 못한채 위험성을 고지하고 증상치료만 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해열제를 처방하고 항생제를 커버했지만 눈에 띄는 증상의 호전이 없었고 결국 환자의 요구에 따라 NSAIDs(소염진통제) 근주를 처방할 수 밖에 없었다. 30여분 후, 환자는 증상이 호전되었다며 얼마 더 지켜보자는 의사의 조언을 뒤로한채 타미플루 처방 및 조속한 퇴원을 요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새벽에라도 증상이 생기면 바로 병원에 오실 것을 당부드렸고, 그렇게 환자는 보호자와 함께 응급실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새벽 5시즈음 되었을까 누군가 '여기 사람 좀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며 다급하게 도와줄 누군가를 찾았다. 헐레벌떡 응급실 정문으로 뛰어나가보니 한 아저씨가 온 몸에 땀이 범벅이 된채 호흡곤란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방금전 증상치료 및 타미플루 처방을 받고 퇴원했던 바로 그 환자였다. 환자의 상태가 응급 기도삽관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간호사를 통해 즉각 emergency cart를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 곧바로 체크한 산소포화도는 30이었고 초응급상황인지라 간이 침대에 누운 채로 기관삽관을 시도했다. 이내 후두경으로 아저씨의 목구멍을 보는 순간 급성 후두개염이 왔음을 직감했고 실패 상황을 대비하여 응급의학과 과장님을 호출해줄 것을 요청했다. 부어있는 목구멍 때문에 당연히 인튜베이션은 고난이도였고 어렵게 성공했지만 방심하는 사이에 멘탈이 정상이던 아저씨는 셀프로 튜브를 뽑아버렸다.

 염증이 있던 부위에 셀프로 튜브를 뽑으면서 상처가 발생했고 이내 아저씨의 입안은 피범벅이 되었다. 이후 재차 삽관을 시도했지만 이미 부어버린 아저씨의 목구멍 속으로 튜브를 삽관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고 곧바로 옆에 계시던 응급의학과 과장님이 삽관을 시도했다. 20여분간 사투를 벌였지만 성인용 튜브로는 삽관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기관절개까지 고려해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저씨는 자신의 목에 칼을 대는 일만은 싫었던 것인지, 불행 중 다행으로 소아용 튜브로 삽관에 성공했고 이내 산소포화도는 90선까지 회복되었고 이내 아저씨는 안정을 되찾았다.

 사실 처음 내원 당시만 해도 인후 부위가 약간 부어있는 점을 미루어 인후염 정도로 생각하고 치료를 했었다. 나이도 많았고 애성이나 목의 부종이 심하지 않았으며 오전에 발생했다던 연하장애도 내원 당시엔 없었기에 급성 후두개염을 의심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허나 신종플루와 관련된 검사 및 치료만 요구하는 환자의 고집을 꺽고 좀 더 강력하게 피검사와 방사선 검사를 요구했었다면 무언가 단서를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란 후회스런 마음에 오전내내 마음이 불편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이 되어 응급실로 빠르게 후송된터라 큰 문제없이 환자를 케어할 수 있었지만 만일 보호자가 아저씨의 호흡곤란을 집에서 눈치채지 못했다면 어땠을까란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최근 신종플루 파동 때문에 열성 환자에 대한 케어가 예전에 비해서 조금은 소홀해지긴 했다. 환자나 보호자들 역시 자신의 증상을 지나치게 신종플루로만 몰아가려는 경향이 있는데 배가 아퍼도, 토를 해도, 어지러워도, 머리가 아퍼도 신종플루만 찾아대는 통에 내 자신조차 생각할 여유를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신종플루 패닉에 대한 떡밥 분쇄를 한참동안 떠들고 나면 이후 추정진단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종종 잊어버리는데, 이 경우 환자나 보호자도 플루 외에 별도의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기타 검사는 모두 정상 소견이지만 고열을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질환들에 대한 가능성을 놓치기 일수다. 이는 분명 의사인 내 잘못이기도 하지만 지나친 신종플루 광풍이 나은 기형적 진료 시스템 때문인 탓도 있다. 따라서 의사뿐만 아니라 환자나 보호자들 역시 아프다고 무조건 '신종플루닌까 타미플루줘영'부터 찾지말고 아플 때 자신의 몸에서 나타나는 이상 징후를 의사에게 정확히 말하고 의사의 진단 및 치료를 차분히 기다릴 필요가 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고열뿐만 아니라 최근엔 지나칠 정도로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내가 정해놓은 틀안에 넣어놓고 진료했었다. 의학은 넓고 질환은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이제 갓 의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편의를 위해서 환자의 증상을 몇가지 질환에 끼워맞추려 했던 것이다. 아저씨로부터 얻은 경험을 계기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환자의 증상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음은 물론이고 그 증상을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문을 열어두고 생각할 여유를 가져야겠다.

by Polycle | 2009/11/05 02:26 | 인턴일기 | 트랙백(2) | 핑백(1) | 덧글(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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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일우드 at 2009/11/05 02:37
다행이네요....또 하나의 생명을 살리셔서..
Commented by 소띠 아가씨 at 2009/11/05 04:50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다 네요 ㅋㅋㅋ
..... 신종플루 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고 공포심을 가지지 않는게 건강에 좋을거 같아요
저는요 신종플루 거점 병원에 자주 가요 ㅋㅋ 자전거 타고 그병원 앞 지나가다가
병원 커피자파기 커피 가 느무느무 맛있어서 ㅎㅎ 커피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자주이용하죠 ㅎㅎㅎㅎㅎ ..... 저가 배짱이 두둑하거 인가요? ㅋ
Commented by naivety at 2009/11/07 05:17
님 그건 허세 ㅜㅜㅜ ;;;
Commented by 글벌레 at 2009/11/05 05:19
감별진단에는 아무래도 좀 더 많은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겠죠.....그러나 너무 열심히하시는 의사 샘이시니 , 앞으로 훌륭한 의학자가 되시리란 확신이 서네요 ^ ^* 의료 현장에서 아무래도 보통 사람들보다 많은 감염자들과 접촉하실터인데 , 건강 유의하시고요 ^ ^*
Commented at 2009/11/05 09:5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샛별 at 2009/11/05 10:04
주목해야할점은 사람들이 '신종플루'에 너무 연연해 하다 보니 다른가능성을 배재하고 있다...이말이군요!!(아닌가 -_-)

저도 너무 한곳에 신경을 써서 정작 다른가능성들을 놓치고 있지 않나 항상 매일매일 생각하고반성해야되겠습니다.
Commented by vlfl at 2009/11/05 10:09

이런 진짜 의사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좀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
친구와 함께 각기 다른 증상으로 동내 내과에 함께 갔는데
처방전에 보니 완전 같은 약이 처방 되어있더군요... (감기약들~)
이건 무슨일인지..
신종플루 두려움 때문인지 환자들도 엄청 많던데,,
진료시간 1인당 1분도 안되고...
어이가 없어서 그 약 먹지 않고 넣어두었습니다
감기가 자주 걸리는 터라 가까워서 아플때 마다 가던 병원인데
믿을 곳이 없네요 정말~ 이래서 사람들이 도시에 큰병원 찾는걸까요?

Commented by 지브닉 at 2009/11/05 10:31
그렇지요. 장비문제도 있고,
같은 개인병원이라도 구형장비를 쓰면 정형외과같은경우
실금을 못 찾아내더라구요-_-;
어느병원에서 X선 찍었는데 아무 이상없다고 왔는데 계속 아픈거에요
그래서 동네에서 개업한지 얼마 안된 병원가서 X찍었더니 실금이 쫙쫙가있어서(..)
Commented by mami5 at 2009/11/05 12:04
신종플루때문에 다른병을 못보게 된다는거네요..
이건 더 심각합니다.
모두 신종에만 매달려 환자나 의시나 모두 정신이 없으니..
우리딸도 그냥 감기같아 주사맞고 약을 받아왔는데
처방약이 한보따리더랍니다..
저녁에 먹고 누워자다 계속 어지럽고 속이 메시꺼워 잠을 못잤는데
그 다음날 신종인가 싶어 검사를 하였답니다..
그러고 그 약은 겁이나 먹질 않고 있으니 속이 갈아앉드라네요..
그러고는 약이라면 겁이나 아주 먹질 않네요..

알고보니 장이좋지를 않은데 강한 약이 들어가서 그런 모양입니다.

넘 신종에만 연연하다보니 다른점을 못본거지요..
정말 큰일입니다..
글 잘 보고갑니다..좋은 하루 되세요..^^*
Commented by 천지화랑 at 2009/11/05 13:00
집에서 부모님이 신종플루때문에 하도 극성이시죠. 그 비싼 플루세정제를 사들이질 않나, 일 때문에 외박 좀 할라치면 걱정에 걱저을 하시니.

제발 자제좀 하라고 말리느라 죽을 맛입니다. -_-;;
Commented by Dragon-Lord at 2009/11/05 14:09
신종플루에 너무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다 보니 다른 것들은 잘 안보이는 그런 맹점이 생겨버리는군요...

부디 많은 환자들이 쾌유 하는데 많은 보탬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
Commented by 그냥 at 2009/11/05 14:58
한두시간 님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즐겨찾기에 등록해놔야겠어요. 수고하세요
Commented by 말괄량이 at 2009/11/05 15:33
의사 말 안듣고 저렇게 제멋대로 구는 환자들은 혼좀 나봐야되요
지가 의산가요? 뭘믿고 저렇게 제멋대로 구는지 ...
약도 지맘대로 처방하고 병도 지맘대로진단하고 수술 과정에서 튜브까지 뽑아버렸다니 ...
더 혼나봐야 정신차리겠네요
Commented by shoko at 2009/11/05 16:28
아진짜 의사말 좀 듣지 자기가 의사도 아님서 꼭 저런 환자들 있어요(특히 아저씨들...) 아후~ 큰일하셨네요~!
Commented by 몽이 at 2009/11/05 17:49
그러게요. 우리나라 사람중에 셀프로 처방 내리시는 분들 꽤 있죠. ㅋ
그런데 못미덥게 하는 의사분들도 있더라구요.
진료를 너무 대충 본다는 느낌이 들거나, 아니면 대답해주고 있는 의사쌤 조차 확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시면, 의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저같은 사람은 좀 불안 하더라구요.
물론 폴리클님이야 친절하게 잘 해주실것 같지만..ㅋ
암튼, 사람 구하는 일은 언제나 긴장하며 살아야 할 것 같네요.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겠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번쯤은 크게 웃으시면서 일하셨음 좋겠네요..^^
Commented by 은맘 at 2009/11/05 21:36
최근 저희 아기가 구개열로 수술을 받았어요.
4일째까지 열이 날수 있다고 하신 의사선생님께
아무래도 감기가 걸린것 같다고,
감기약을 달라고 하시던 어머님이 생각나네요...

대학병원 의사선생님이 그렇게 바쁘신지 미처 생각치 못했습니다.
어느병원이든 마찬가지겠지요.
새벽까지 밤새우고 뻗치고 떡진 머리로(몇시간 새우잠 주무셨겠죠?)
병동나오신것 보면 인턴선생님같으시던데
칭얼대다 복도에서 잠든 아이 이마 짚어보시는데
감동했습니다...
어찌나 동에번쩍 서에번쩍하시던지
선생님들께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퇴원했어요.

말씀한마디에 혹은 일상적인 행동하나에도
감동하는 환자와 보호자가 있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힘내세요 ~
Commented by 신채소 at 2009/11/05 21:59
잘 읽었습니다. 저도 제가 하는 일을 몇 가지 틀 속에서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하며 새로운 마음가짐 가지고 갑니다. ^^
Commented by 제드 at 2009/11/05 22:56
이걸 보니 왠지 미드 하우스가 생각나는.. -_-)ㅎ
Commented by rainblue77 at 2009/11/05 23:37
정말 큰일날뻔 했네요...

요즘 온통 신종플루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떠드니..

엄청난 사람이 신종플루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막상 주변에서는 안보이는데..

너무 신종플루로 여기저기서 떠들고 몰아가니..

나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고...공포심을 조장하는 것 같고..그래요.

느긋?하게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요..너도나도..

이럴 때는 좀 서로가 냉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큰 경험하셨네요..
Commented by 운향목 at 2009/11/06 00:48
솔직히 온 국민이 세뇌된 느낌이예요..ㅠ
Commented by ㅇㅇ at 2009/11/06 09:08
그래도 의사앞에서 큰소리치는 사람들은 도통 이해할수가 없어요... -_-
Commented by ­ at 2009/11/06 13:36
-_-;; 반대로 입원 병실에서 열이 나는 환자를 일반적인 후유증입니다 괜찮아지실거예요...라고 그냥 뒀는데 알고 보니 신종 플루였지요.

6인실이었고 3일 뒤에서나 나갔음.

좀 딴 소리인지는 모르나, 이런 상황이면 큰 소리 칠만하죠 (...)
Commented by thinkpink at 2009/11/06 10:41
병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증상을 정확히 말하고 진단은 전문의에게 맡기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대학병원들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불신-- 돈을 벌기위해 불필요한 검사를 남발한다는 -- 때문에 가끔 이런 일도 생기나 봅니다.
Commented at 2009/11/07 21:3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낯선아침 at 2009/11/12 10:27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인데요. 마지막 부분이, 폴리클님의 위의 포스팅 글과 너무 흡사하네요.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1/12/2009111200008.html?Dep0=chosunmain&Dep1=news&Dep2=headline1&Dep3=h1_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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