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0일
사망선고
얼마전 인턴일기에서 소개했던 (아저씨의 눈물) 중뇌동맥 뇌경색 환자가 오늘 새벽 5시경 그 한 많던 삶을 정리하고 가족들을 뒤로한채 하늘나라로 떠났다. 연세도 있으신데다 경색의 크기가 워낙에 커서 오래버티지 못할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입원 일주일째 뇌부종에 의한 심정지로 flat한 EKG 리듬을 그리며 그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어제 새벽 할머니의 심장 박동수가 30회까지 떨어지면서 산소포화도 역시 70%이하까지 떨어져 사망 가능성이 높아지자 자녀들에게 빨리 병원으로 와서 어머님의 임종을 함께하시라 연락드렸다. 입원당시 환자의 자녀들은 어머니가 가시더라도 편히 가셨으면 좋겠다며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등의 처치를 하지 않는 DNR(Do Not Resuscitation)에 동의했었기에, 만약 10분 내에 자녀들이 병원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자칫 어머님의 임종을 함께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들에게 수화기를 통해서 상황설명을 했더니,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지킬 수 있도록 도착할 때까지만 생을 연장해달라 간절히 부탁했다. 어쩔 수 없이 약물을 쓰는 동시에 앰부를 짜고 가슴에 살짝 손을 올인 후 심폐소생술 비스무리한 것을 시행했다. 다행히 심장 박동수는 80회 이상까지 회복되었고 산소포화도 역시 100%까지 회복되었다. 허나 5분여 뒤, 혈압이 떨어지면서 다시 심장 박동수가 50회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퇴동맥에서 박동이 전혀 촉지되지 않았고 할머니는 물고기 입마냥 뻐끔거리는 호흡양상(fish mouth like respi)을 보였다.
순간 아들과 딸, 며느리가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먼저 어머님을 뵙게해드린 후, 상황설명을 해드렸다. 할머니의 귀에 대고 '어머니 우리가 왔다며 눈 좀 떠보시라'고 울부짖으며 손과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상태는 이미 심박동수는 20회 이하, 산소포화도는 40% 이하인 사망 직전의 상태였다. 그래도 자식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셨는지 할머니의 눈가에선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몇분 뒤, 과장님께 연락이 왔고 내게 사망선고 및 뒷정리를 부탁하셨다. 그간에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에서 환자의 죽음은 수도없이 경험했지만 '사망선고'는 내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뒤로한채, flat한 EKG 리듬을 확인한 후 보호자 곁으로 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2009년 10월 10일 새벽 05시 21분 *** 환자분 사망하셨습니다.'라고 사망선고를 내렸다. 누군가의 죽음을 내가 선고하다니, 마치 저승사자가 된 기분에 그 순간만큼은 온몸에 전율이 돋고 만감이 교차했다. 할머니의 곁으로 다가가 눈을 감겨드리고 E-tube와 L-tube 및 C-line을 제거했고 20분 뒤 할머니는 중환자실을 떠나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차량에 몸을 실은채 병원을 떠났다.
의사가 되어 처음으로 사망을 선고했던 그 할머니를 아마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때론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도 하지만 때론 죽음도 선고하는 의사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끼면서 조용히 할머니가 좋은 곳으로 가시길 기도드려본다. -
어제 새벽 할머니의 심장 박동수가 30회까지 떨어지면서 산소포화도 역시 70%이하까지 떨어져 사망 가능성이 높아지자 자녀들에게 빨리 병원으로 와서 어머님의 임종을 함께하시라 연락드렸다. 입원당시 환자의 자녀들은 어머니가 가시더라도 편히 가셨으면 좋겠다며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등의 처치를 하지 않는 DNR(Do Not Resuscitation)에 동의했었기에, 만약 10분 내에 자녀들이 병원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자칫 어머님의 임종을 함께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들에게 수화기를 통해서 상황설명을 했더니,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지킬 수 있도록 도착할 때까지만 생을 연장해달라 간절히 부탁했다. 어쩔 수 없이 약물을 쓰는 동시에 앰부를 짜고 가슴에 살짝 손을 올인 후 심폐소생술 비스무리한 것을 시행했다. 다행히 심장 박동수는 80회 이상까지 회복되었고 산소포화도 역시 100%까지 회복되었다. 허나 5분여 뒤, 혈압이 떨어지면서 다시 심장 박동수가 50회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퇴동맥에서 박동이 전혀 촉지되지 않았고 할머니는 물고기 입마냥 뻐끔거리는 호흡양상(fish mouth like respi)을 보였다.
순간 아들과 딸, 며느리가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먼저 어머님을 뵙게해드린 후, 상황설명을 해드렸다. 할머니의 귀에 대고 '어머니 우리가 왔다며 눈 좀 떠보시라'고 울부짖으며 손과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상태는 이미 심박동수는 20회 이하, 산소포화도는 40% 이하인 사망 직전의 상태였다. 그래도 자식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셨는지 할머니의 눈가에선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몇분 뒤, 과장님께 연락이 왔고 내게 사망선고 및 뒷정리를 부탁하셨다. 그간에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에서 환자의 죽음은 수도없이 경험했지만 '사망선고'는 내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뒤로한채, flat한 EKG 리듬을 확인한 후 보호자 곁으로 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2009년 10월 10일 새벽 05시 21분 *** 환자분 사망하셨습니다.'라고 사망선고를 내렸다. 누군가의 죽음을 내가 선고하다니, 마치 저승사자가 된 기분에 그 순간만큼은 온몸에 전율이 돋고 만감이 교차했다. 할머니의 곁으로 다가가 눈을 감겨드리고 E-tube와 L-tube 및 C-line을 제거했고 20분 뒤 할머니는 중환자실을 떠나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차량에 몸을 실은채 병원을 떠났다.
의사가 되어 처음으로 사망을 선고했던 그 할머니를 아마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때론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도 하지만 때론 죽음도 선고하는 의사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끼면서 조용히 할머니가 좋은 곳으로 가시길 기도드려본다. -
# by | 2009/10/10 16:15 | 인턴일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2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20 의사 [34]2009/10/15 요양병원 단상 [24]2009/10/12 가을날의 말턴을 아시나요? [17]2009/10/10 사망선고 [26]2009/10/09 나는야 신발재벌 [29]2009/10/08 E-tube vs L-tube [16]2009/10/07 직업병? ... more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의사분들도 사람인지라 의학적인 사망선고의 순간에 몰려드는 자괴감이나 도의적인 근거없는
책임감이 몰려드시나보더라구요~~
힘든일 맞습니다~! 의사분들이나 그 곁을 지키는 가족들이나~
고인의 명복을 비는 동시에 이미 멀리가신 아버지가 또렷히 떠오르는 밤이네요~
눈물한방울 흐르지 않는 나를 보면서 나도 정말 매정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시간이 지나 위에 글을 읽어보니 새삼 그때의 제 모습이 생각나네요.
그때는 울고 싶어도 슬퍼하시는 어머니께 큰아들인 저까지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드릴수 없어서 슬퍼도 정말 꾹 참았어요.
항상 보고 싶고 보고 싶을때 마다 가슴으로 눈물 짓고 아빠라고 외쳐봅니다.
아빠 사랑해요.ㅜㅜ
부디 그마음 그대로 간직하시고 레지던트 몇년차가 되시고, 교수님이 되셔도 그런맘 간직해 주세요..
지내다 보면.. 힘들고 지치고 익숙해져서 그런맘을 잊는경우가 많더라구요.
지금 같은 맘을 간직하신다면 멋진 의사선생님이 되시리라 믿어요~^^
힘내세요~
내세에 사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준비를 안한 것 같아요.
사후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곳으로 갈 수 있는 파라다이스가 있슴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는 이 세상 하직한다면 웃으면서 떠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의사가 사망선고를 내려야 할 때..
그 기분이 어떤지를 의사가 아닌 사람들은 느낄 수 없겠지요.
생명이 이어지고 끊어지고는 의사만이 알 수 있는 일이고, 알려야 할 자격과 의무를 동시에 지니고 있으므로..
저희 아빠는 간암말기 폐암 전이로 3개월 판정 받으시고
3개월도 채 못 사시고 가셨어요
3개월 판정 받으셨을 때 만해도
살이 좀 빠지시는 것 외에는 건강해 보이셨는데...
돌아가시기 약 한달전부터
몰핀도 안듣고
한 보름전부터는 간성혼후랑 호흡곤란도 심해지시면서
정말 고생 많이 하셨던 기억이 나요
결국 엄마 생일 바로 다음날에 돌아가셨는데
산소포화도가 막 떨어질 때 마다
아빠가 막 불안해 하셨던 기억이 나요
처음에 손에 그 산소포화도 체크하는 기계를 끼웠을 때는(전날)
병원에서 90 이하로 떨어지면 안좋다고 했었어요
그래서 아빠도 95 이하로 떨어지면
필사적으로 숨쉬려고 하시고....
근데 돌아가시던 날 새벽부터 상태가 안좋으시더니
막 80~90을 왔다갔다 하시더라구요
그러다가....
오전에는 막 80대 초반까지 떨어지고
막 70대에서 60대로 왔다갔다 할 때는
손끝 발끝이 막 파랗게 변하시고......
그때까지 만 해도
정신은 있으셨는데....
한 오후 2시쯤에는 60 이하로 떨어지시더니
갑자기 막 안좋아지셨어요
그러다가 한 2시 40분쯤 40 이하로 떨어지시고
그 뒤로는 어떻게 된건지 잘 기억도 안나네요
놀라서 계속 간호사 부르고 울다가
의사가 와서 사망 선고 한 기억밖에 없는데...
그 때는
그냥 그렇게 사망선고하던 의사가 정말 미웠거든요
의사 잘못은 아니었지만...
그냥 믿고싶지가 않았으니깐
근데 이렇게 글 보고 나니깐
괜히 그 의사분한테 미안해지네요..
갑자기 눈물이 나네요.
오늘 하루 종일 우울해서..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나오고 그랬는데..
글을 읽는 순간 감정이 이입되서..
눈물이 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적이 있다면..
감정이 이입이 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러네요..
음...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