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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신발재벌

 
 요통 및 족통에 시달리다보니 되도록 발이 편해질 수 있는 신발을 찾아서 이리저리 헤메이게 되었고, 그 중에 마음에 드는 것들은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통장 잔고에도 불구하고 하나둘씩 suction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덕에 대한민국 남성이 평균적으로 갖고 있는 양을 훨씬 웃도는 신발들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깐깐한 엣지남답게 고이고이 아껴신는 한두켤레를 제외하고는 거의 당직실 침대 밑에서 잠든채 먼지만 수북히 쌓여가고 있다.

 나란 인간은 태초부터 패션에는 무뇌(無腦)한이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옷을 사입어도 신발을 사신어도 대중적인 것만을 선호했으며 딱히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점원만 친절하다면 문턱이 닳도록 그 가게만 드나들었다. 이런 잡식성 패션취향 탓인지 학창시절 6년내내  딱히 내게 돌아오는 이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브랜드의 옷만 줄기차게 구입했었다. 심지어 한번은 옆가게에 정말 마음에 드는 옷이 있었지만 그 옹고집 패션취향 탓에 눈길 한번 주지않고 단골 가게로 가서 썩 마음에 들지도 않은 옷을 구입하기도 했었다. 아마 그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만큼은 선죽교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 정몽주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3월 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근무하며 신을 요량으로 그 브랜드 신발만 4켤레를 샀다. 응급실을 돌면서 밤마다 밀려오는 족부통증을 참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지난 6년간의 한결같은 믿음을 안고 계속해서 신었다. 하지만 한달을 넘기고 결국 6년간 지켜왔던 그 브랜드에 대한 충정을 뒤로한채 '내 발이 건강해야 병원이 튼튼하고 나라가 안정되고 세계 평화가 유지된다'는 거창한 구호 아래 다른 브랜드로 눈길을 서서히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때부터 패션감각 제로의 사나이였던 나는 그 오묘한 세계에 조금씩 눈 뜨기 시작했다.          

 마시이 워킹 슈즈를 사고 각 정장 브랜드의 편해보이는 신발은 죄다 구매했다. 어느덧 침대 아래엔 구두가 수북히 쌓여갔다. 처음엔 늘어나는 구두의 숫자를 바라보면서 행복한 상상에 빠지곤 했다. 매일마다 잠자리 밑에서 즐겁게 노래부르는 나의 사랑스런 발들을 생각하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몇일 신어보니 기존의 구두와는 확실히 달랐다. 매일마다 바이겔 크림을 바를 필요도, 따뜻한 물에 족욕을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와이셔츠보다 구두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점차 나는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 월급에서 너무나 많은 부분이 신발 구매에 투자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그 순간, 한번도 간택받지 못한채 침대 밑에서 잠들어 있던 수많은 신발들이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평균적인 대한민국 남성의 신발 보유량을 훨씬 웃도는 수준의 신발을 보유하고 있었다. 어느샌가 나는 신발 재벌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 후로 4개월여 시간을 자숙하며 보냈다. 인터넷 쇼핑을 끊고 그동안 신지 않았던 신발들에게도 한번씩 병원 복도 행진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물론 지금은 당시에 편안했던 신발을 이용하더라도 요통과 족부통증은 여전하다. 편안했던 신발에도 내성이 생겨버린 탓인지 더 편안 신발을 찾게된다. 그래도 침대 밑의 신발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만은 풍족해진다. 그렇게 오늘도 신발만큼은 부자라는 마음의 위안으로 피곤한 발을 부여잡고 달래본다. 엉엉.

by Polycle | 2009/10/09 00:47 | 인턴일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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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샛별 at 2009/10/08 15:54
이거시 바로 지름신의 강림과 파산신의 소환후 모습.

막 지르시면 파산신을 자주 영접하게 되지 말입니다. ㅠㅠ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12 11:45
이미 파산신은 학창시절부터 자주 영접하고 있었답니다. ;;
Commented by 푸리 at 2009/10/08 16:12
앗... 드디어 순위권^^
패션에 신경쓰는 의사쌤 멋져요 ㅎㅎ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12 11:45
순위권이라해도 자랑거리조차 되지 않는 무명 블로그입니다. ^^
Commented by 이콩쥐 at 2009/10/08 16:17
하하하 슈어홀릭이시군요. ㅋㅋ
발이 편한 슬리퍼는 버*스탁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왠지 추천하고 싶군요! ㅎㅎ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12 11:45
앗 브랜드 풀네임을 알려주세요!
Commented by 이콩쥐 at 2009/10/12 12:58
브랜드의 풀네임은 버켄스탁입니다. :)
슬리퍼 주제에 꽤 비싼편이었어요. 몇 년 전에 샀을 때 가격이 6만원 선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금 저렴하게 구입하시려면 대형마트에서 버켄스탁형 슬리퍼를 구입하셔도 괜찮아요! 전 이번에 아주 성공적으로 구입했답니다! 흣흣.)
Commented by AyakO at 2009/10/08 16:29
신발이 문제가 아닙니다.
..병원 나가면 만병이 다 낫습니다. -_-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12 11:46
역시 그런건가요. 그나저나 요새 주변 동기들이 wii, ps3 등 게임기를 하나씩 장만하기 시작했습니다. 말턴의 냄새가 스물스물
Commented by 키치너 at 2009/10/08 17:47
아이쿠; 확실히 요통, 족부통은 이 업계 사람들이라면 달고 사는 직업병인 거 같습니다. 요통이야 본1때부터-요즘 일부학교는 예과생들에게도 요통을 강요한다죠?- 족부통증은 PK때부터 그 모습을 스멀스멀 드러내니 말입니다.

요즘들어 저도 발에 무언가를 끼우고 다니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인생이란 무엇인가!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라는 고래로 부터 내려오는 명언에 강력하게 지지받아 안분지족을 추구하고자 하니 말이죠.

- 그런고로 경험자의 추천 한 수 좀... (굽신굽신)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12 11:47
음, 학생 때는 최대한 버로우 모드로... 인턴 때도 최대한 버로우 모드로... 방법은 역시 버로우 개발?
Commented by theadadv at 2009/10/08 17:58
평평한 바닥에서 SAS가 진리죠. 다만 건물밖으로 신고 나가면 마모도가 심하고 가격이 국내에선 산으로 가버리는 것이 문제긴 합니다만, SAS는 진리입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12 11:47
SAS는 또 무엇인가요? 어서 검색해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theadadv at 2009/10/12 21:23
SAS는 간호사, 의사, 교사등의 평평한 바닥에서 서있는 사람들을 주로 타겟으로 하는 구두입니다.
편한 구두중에는 압권인 녀석이지요.
Commented by freed at 2009/10/08 19:14
병원계의 이멜다 시군요! ㅋㅋ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12 11:47
이멜다는 또 뭔가요? 모르는 용어들이 난무합니다. ㅠㅠ
Commented by rainblue77 at 2009/10/08 21:09
ㅎㅎㅎㅎㅎ

패션이나 이런 것에서 자기만의 고집은 다 있는 것 같아요..ㅎㅎ

저도 한가지 브랜드가 좋으면 줄기차게 그걸 사고 그러는 습성?이 있는 것 같아요..

신발은...참 미묘한 것 같아요..

유명 메이커에서 구두를 비싼 값을 주고 해도...5센티 정도의 힐인데고..굉장히 불편한게 있고..

그냥..싼 8센티짜리...힐이 더 편한 경우도 있고..

자기 발에 맞는...신발이 있는 것 같아요..

운동화도 그렇고..

발이 편하다는....다른 브랜드 쪽으로 눈길을 돌려 보세요..ㅎㅎ

구두는 아무리 편하다고 해도....

구두인 것 같아요..저는..;;;

특히 힐 종류는...;;;

힐 신으실 일이 없으시니..ㅋㅋ

신발이 많으시다고 하시니 개인적으로는 부러워요~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실 것 같아요.ㅎㅎ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12 11:48
배는 부른데 발은 여전히 아퍼요 엉엉. 브랜드는 이상하리만큼 하나만 고집하는 집착이 있어서 아직도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흑흑.
Commented by 닭고기 at 2009/10/08 22:21
신발재벌이라면 거의 여자들의 로망!ㅠㅠ 마사이 워킹슈즈 디자인적으론 어떠신가요? 몸에 좋다고 어머니께서 노리고 계시긴 한데.ㅎㅎㅎ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12 11:48
제 인생의 유일한 단비가 바로 마사이 워킹슈즈입니다.
Commented by Roong at 2009/10/08 22:41
많이 걷고 뛰고하는 직업은 뭘 신어도 발이 아픕니다, 허리도 물로이거니와요.
그건 제가 장담하는 바입니다(경험담입니다ㅋ).
그나마 운동화를 신으면 좀 나을텐데, 마사이 신발도 못 신게하시니 운동화는 언감생심.
(근데 왜 마사이 신발을 못 신게 하는걸까요 ;ㅁ; )
더욱이 발까지 다치셔서 힘드시겠어요.

괜시리 엄살부리시다가는 정강이 한 대 차일까요? :)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12 11:48
정강이가 부러져있을듯,
Commented by Lucida at 2009/10/08 23:52
이건 주로 서서 많이 작업하는 사람들의 팁인데... 하루에도 높낮이가 다른 신발을 번갈아 신는 게 좋답니다. 남자들 신발은 잘 차이가 안 날 지 모르지만, 높낮이 다른 신발을 2개 사무실에 두고 갈아신고 다녀봐요~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12 11:49
아 그렇군요. 하루에 3개씩 번갈아 신어봐야겠어요. 선생님들 없는 새벽엔 마사이로...
Commented at 2009/10/10 01:5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12 11:49
비공개님도 액팅이라 발 좀 아플 것 같은데 ;;;
Commented at 2009/10/11 16: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12 11:49
쵸이님 블로그 글도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 늘 따뜻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전 임상병리사.. at 2009/10/21 21:13
재밌다...전 모양만 이뿐 메이드인 차이나 신발만 컬렉션하고 있삽니다..발은 디땅 아퍼요.
Commented at 2010/01/03 16:4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0/01/03 16:45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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