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 로그인


Atypical

 
 주말, 증상은 뇌경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뇌 MRI 촬영 결과 숨골의 경색 소견이 관찰되어 나를 당황케 만드는 환자가 한명 입원했다. 오른쪽 팔 다리에 뇌경색이 온 것 같다며 내원했던 그 아저씨는 겉으로 보기엔 뇌경색은 커녕 병이라곤 한번도 앓은 적이 없어보이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지금 어디가 가장 불편하시냐고 물었더니 그 아저씨는 정확히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그리고 네번째 손가락 절반에 저린감이 있다고 대답했다. 해당부위는 정중신경이 감각과 운동을 지배하는 영역으로 대개 환자들이 위와같은 증상을 호소한다면 손목터널 부근에서 정중신경이 압박되어 발생하는 '손목터널증후군'을 강력하게 의심해 볼 수 있다.

 그 아저씨는 응급실에서 시행한 신경학적 검사상 특별한 이상이 관찰되지 않았지만 단지 환자 본인의 '오른쪽 팔 다리에 뇌경색이 온 것 같다는' 주관적인 느낌과 손목터널증후군의 정밀검사를 위해 몇일간 상태 변화를 지켜보는 조건으로 입원하였다. 헌데  입원후 시행한 뇌 MRI에서 뇌경색이 그것도 숨골부위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으니 놀랄 수 밖에. 혹시나 신비스런 영적인 기운이 그 어저씨를 휘감고 있는건 아닌지 신기했다.

 아저씨에게 증상과 뇌 MRI 촬영결과 및 항혈전제 사용의 필요성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나조차도 납득이 가질 않아서 '도대체 어떻게 병원 오실 생각을 했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정중신경 지배영역의 저린감은 꽤 오래된 것이지만 그 저린감이 점점 위까지 올라오는 느낌이 지속되어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당시 이웃집에 침구사 친구가 한명 있는데, 그 친구에게 자신의 증상을 말하자 뇌에 장침을 맞자고 권유했지만 과감히 뿌리치고 병원으로 달려왔다는 이야기 역시 함께 전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 그 아저씨의 상황 판단력과 결단력에 박수를 보냈다. 숨골 뇌경색이면 증상이나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그 환자의 경우 빠른 발견과 치료로 큰 탈없이 병치레를 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아직도 팔팔하게 병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식사를 하는 어저씨에게 항혈전 치료를 하면 당분간은 움직이시지 않는 것이 좋다고 권유드렸다. 

 이처럼 질병과 그 질병에 해당하는 증상이 매치가 안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전형적인 증상과는 다르게 비전형적인 증상이 우세한 경우도 많고, 쌩뚱맞은 증상을 주소로 병원에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 의학은 이래서 참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학문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는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설사 비전형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귀를 기울여 듣고 신중히 생각해보는 여유가 때론 숨겨진 문제를 찾아내는데 중요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잘 말하는 의사보다는 잘 듣는 의사가 되리라 다시금 다짐해본다.

by Polycle | 2009/10/04 21:53 | 일기 | 트랙백 | 덧글(21)

트랙백 주소 : http://medwon.egloos.com/tb/245036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at 2009/10/04 22:0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06 04:45
아마 황달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친구분은 A형 간염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봅니다. ^^
Commented at 2009/10/04 22:0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06 04:45
저는 인튜베이션 할 때마다 아멘을 수십번은 더 외친다능. 하지만 종교는 없다능.
Commented by rainblue77 at 2009/10/04 22:36
좋은 경험을 하셨네요..^^

잘듣는 의사가 되시겠다는 말씀이...참 듣기 좋네요..^^

명절은 잘 보내셨냐고 물으면...실례가 될까요?

내일 부터 또 일상의 시작이네요..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압박감이 저에게는 느껴져요..''

어쨌든..아자아자`!!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06 04:46
환자 러쉬가 시작되는 일상으론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엉엉.
Commented by organizer™ at 2009/10/04 22:53
침구사 친구에게 '상담'을 한 것은 어떤 연유인지... 게다가 친구가 장침을 맞자고 권유한 것을 뿌리친 것은 또 어떤 연유인지 꽤나 궁금하군요.

대개 몸의 한쪽이 뻣뻣해지는 느낌이 들면 거의 100 % '풍'이 오기 전의 증상이라고 들었는데... 희한하게도 잘 커버하셨군요.. (부럽습니다.)

---

근데,,,

>> 몇일간 상태 변화를 지켜보는 조건으로 입원하였다

이런게 가능한가요?

단지 병원에 입원 한번 해 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을 경험한 터라... [좀 쉬려고..^^]

더군다나,,,

>> 병이라곤 한번도 앓은 적이 없어보이는 건강한 사람

이라는데........... 이 또한 참으로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06 04:48
아마 침구사 친구가 이웃이었나봅니다. 장침 권유를 뿌리친 것은 환자 스스로가 그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대개 경과를 관찰하기 위해서 입원을 시키는 경우는 질환의 종류나 경중에 따라서 다릅니다. 하지만 대개 뇌경색의 경우엔 의증이라 하더라도 일단 입원 하여 추가적인 검사 및 치료를 시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단순 타박상이나 단순 질환 등은 입원시켜달라 떼써도 입원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는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특히 심하죠. 하지만 제기능이나 수익을 위해선 어쩔 수 없습니다.)
Commented by 선주 at 2009/10/04 23:12
숨골 경색이면 pontine infarction 인간요? -0-;;
학생 때 예후가 모 아니면 도라고 들은 기억 말고는.. ㅡㅡ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06 04:49
정말 모 아니면 도인 그 예후를 자주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마 vital을 주관하는 기능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Commented by Lemonvalm at 2009/10/04 23:42
살아있는 건 참 어려워요 어려워 ~_~;;
그걸 연구하는 의학도 그래서 어려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공식처럼 딱딱 답이 나오는 게 아니라..;;


그런 의미에서 의료계통 종사자분들이 참 존경스럽습니다 -_-;;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06 04:49
공식처럼 답이 나올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요즘 적지않게 당황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at 2009/10/05 01:3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06 04:50
일단 의사 입장에서는 이것 저것 말하는 환자가 귀찮은 것도 사실이지만,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면 환자가 호소하는 것을 모두 귀 담아 들을 필요는 있겠지요. 환자 역시 괜찮겠거니하며 빠뜨리지말고 빠짐없이 의사에게 말해야하구요.
Commented by 샛별 at 2009/10/05 09:31
헐...완전 이성적인 사람이였네요

몸이 아플때에는 우선 쉬고싶다는게 사람의 마음인데

바로 병원에 가다니...ㅎㄷㄷ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06 04:50
저도 참 놀랬답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오셨네요. ^^
Commented by 카루 at 2009/10/05 09:51
침구사 친구라.... 침구사는 현재 더이상 배출되지 않은지 꽤 된 직업이라
나이 지긋한 노인 아니면(한 70세 정도?) 다 불법시술인데요;;

잠깐 삼천포로 빠지면 침구사 제도의 부활을 한의사들이 막고 있는 입장이죠... 어쨌든
환자분이 그 친구분 말 안들으셔서 참 다행입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06 04:51
저도 무척이나 다행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아마 그 치료 받았더라면, 상태가 더 악화되어서 병원에 오셨으리라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먹보 at 2009/10/05 11:29
또 한 가지를 배웠군요..누군가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닌..뭐든지 잘 들어보는 게 우선인 듯..
많이 부딪혀 봐야 산지식인거죠~ 티비에서 카루 님이 말한 침구사 제도 본 적은 있는데..그 환자 분 대단함! 조금은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저도 완전 궁금함.
Commented by Polycle at 2009/10/06 04:51
궁금하죠? 가서 다시 물어볼까 생각중입니다. ;;;
Commented by 유포리아 at 2009/10/10 22:31
와~정말 멋져요~
잘 말하는 의사보다 잘 듣는 의사~
정말 그런 의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6년째 편두통으로 고생하면서 의사들한테 맘 많이 상한 1人- ㅋㅋ

추신//다음 메인에 있는 것 보고 들어왔는데 재밌어서 구독 추가 했어요~ㅎ
앞으로 자주 들어와 볼 것 같네요~ㅎ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