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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손님'이지만 '어서옵쇼'는 아닌,

 
 6개월 남짓 근무하면서 수많은 환자들을 상대하다보니 때론 같은 얼굴을 3~4번 이상씩 마주하기도 한다. 잊어버릴 때면 한번씩 찾아와 진통제를 요구하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나 비가 오면 꼭 어지럽다고 병원을 찾는 뇌경색 후유증 할아버지, 비실비실 기운이 없다며 한달에 한번은 꼭 병원 신세를 지는 치매 할머니까지, 이들은 신출내기인 우리보다 본원 시스템에 대해서 훨씬 잘 알고있는 프로(?)들이다. 프로 환자들의 보호자 역시 프로인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오자마자 '전처럼 바로 입원하죠.'라는 원카운트 펀치를 날려 우리들을 '멍' 때리게 만든다. 본원 시스템이나 환자에 대한 정보가 전혀없는 경우 '입원여부'를 놓고 간혹 보호자들과 트러블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대개 과장님의 전화 한통이면 깔끔하게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위와같이 정말로 '아퍼서' 찾아오는 환자들 외에도 단골손님은 있다. 매번 술에 쩔어서 119에 실려 응급실을 방문하는 노숙자 아저씨, 한달에 한번 꼭 누군가와 다투고 난 후 응급실 침대에 드러눕고 보는 한 아주머니, 병원을 고소하겠다며 근무자들에게 나이팅게일 선언이나 히포크라테스 선서 암기를 종용하는 한 40대 남성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들은 소위 블랙 리스트 명단에 자랑스럽게 그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병원을 찾아와 무슨 짓을 하건, 뭐라 떠들건 다들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이와같이 병원을 자주 방문하게 되는 단골손님은 주로 만성질환자거나 병원에 오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만성질환자야 어떻게든 심플 케어하고 원하는 진료를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면 해결되지만 후자의 경우 의학적으로 답을 내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 대개 반나절정도 observation하며 끊임없이 눈빛승부를 걸고, 그 승부에서 어떻게든 이겨서 환자가 무사히 퇴원시켜야만 한다. 물론 근무시간 이내에 결판이 나지 않는다면 이 승부는 다음 턴에게로 넘어간다.
 
 대개 베테랑인 이들은 입원을 요구함과 동시에 의사가 쳐다만보면 아픈 곳이 생기는 'Doctor induced pain' 신공을 보여주기도 하며, 이때 눈빛승부에 미숙한 인턴들은 역공을 당하는 경우가 간간히 있다. 역공의 데미지는 생각 외로 큰데, 대표적으로 '노티 후 박살나기'라던가 '잘못된 처방으로 박살나기' 등이 대표적이다. 나 역시 블랙리스트 멤버들로 인해 그간에 많은 데미지를 입었고 베테랑 차지 선생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으면 아직도 상대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한번은 히포크라테스 선서 지금 외우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해서 외울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근무 6개월째인 지금은 어느정도 블랙리스트 멤버들에 대한 대처능력이 쌓였기에, 당황하지 않고 observation후 discharge 수순이 매끄럽게 잘 이어지지만 아직도 그 해법이 난해한 환자들이 소수 있다. 앞으로의 경험이 이들에 대한 대처능력을 한층 더 키워줄꺼라 확신하는 이 순간에도, neuropsychiatric origin의 pain을 호소하는 단골손님의 증상 하나 하나에 맞추어 약물처방을 하고 노티를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며 또 개박살나겠구나 한탄하며 한숨을 내쉬어본다. 단골손님이라지만 아직까진 전혀 반갑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도 전혀 반가울것 같지 않은 그런 환자들이 내겐 바로 그들이 아닌가 싶다.

by Polycle | 2009/08/27 00:00 | 일기 | 트랙백 | 덧글(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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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ainblue77 at 2009/08/27 00:01
ㅎㅎㅎㅎㅎ
참 다양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는 들었어요..암이나...이렇게 아파서..
오랜시간동안 입원하고 그럴 경우에는..
보호자가 반의사가 된다.

정말 저기 블랙리스트에 올라오신 분들은...
반의사, 반운영자를 뛰어 넘는 분들이실 것 같아요..;;

처음에 굉장히 당황하셨을 것 같아요..ㅎㅎ
그 모습이 그려지네요...ㅎㅎ
웃음도 살짝...ㅎㅎ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8/27 11:52
만성질환자의 경우 호소하는 아픔을 의사로써 달래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블랙리스트 환자들의 경우엔 조금 달라요. 물론 병원을 찾아온 환자를 편견을 갖고 진료한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행동이지만... 여하튼 경험해보면 제 마음을 이해하실 수 있을꺼예요.
Commented by draco21 at 2009/08/27 00:29
히포크라테스... -_-: 그사람 혹시 정신병동을 잘못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확실히 '어서옵셔'가 아니라. '속거천리 헛쉐'군요. ^^: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8/27 11:52
혹시나 schizo-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답니다. 다들.
Commented by 아나로즈 at 2009/08/27 00:32
저도 히포크라테스선서 전혀 못 외웁니다; 참 다양한 malig 환자들이 있군요...ㄷㄷㄷ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8/27 11:53
히포크라테스 선서 본1때 시험보고 다 wash-out 시켜버렸습니다. malig pt.는 정말 대책없다능.
Commented by PT at 2009/08/27 00:33
힘내요 화이팅 ^^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8/27 11:53
aPTT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bluesoup at 2009/08/27 01:29
골때리는 사람들 참 많죠 ㅎㅎ 특히 대낮에 술도 안 먹은 맨정신으로 종합병원 로비에서 병원장 나오라며 포효하는 사람들을 보면 진정 전사의 후예일 거라는 생각마저 들어요. 저도 종종 봅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8/27 11:55
bluesoup님도 저와 상황이 비슷하실거라 생각해요. 전사의 후예들 앞에서 나약한 우리들은 대책없이 당하기만 하는거죠. 역시나 최선의 방어수단은 neglect가 아닐지...
Commented by 퍼그폴리야 at 2009/08/27 07:50
오늘 은 비가 오니 열고한 블렉 리스트 환자 분들 도 오지 않겠네요 유비무환 ㅋㅋㅋ
저는 의사 는 아니지만 히포크라테스 선서 쬐금 기억은 나네용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머지 는 ..
아참 ... 책 한권 권해 드리고 갑니다
지은이 홍순범 인턴일기 라는 책인데요 저가 가지고 있는 책인데요 저는 감히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8/27 11:56
동기가 샀길래 몇줄 읽어봤습니다. 서평은 나중에,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08/27 08:59
흠, 나는 의사님 기분 상하게 했다가는 더 쓴 약이나 더 아픈 주사 처방 나올까 봐 말 잘 듣는데.
그보다는...정말 무섭게 힘들게 공부하는 모습들을 보아왔으므로 믿고 말 잘 듣는 편이랍니다.^^
링크 신고해요, 젊은 의사님.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8/27 11:57
감사합니다. 暗雲姬님 같은 환자분들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지... 흑, 눈물납니다. 혹시나 병원에서 뵙게되면 잘해드릴께요. 비록 힘은 없지만...
Commented by 친절한 누나씨 at 2009/08/27 09:10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걸.. 다시금.. 간접 경험 했네요.. ㅎㅎ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8/27 11:58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지방이 이런데 서울은 어떨런지.
Commented by alice at 2009/08/27 10:06
..............전 입원하면서 간호사언니에게 개기지않아요
개기면 주사가 매우 아프단걸 깨닫거든요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8/27 11:58
주사 바늘 게이지가 올라가는 짜릿함이 있지요.
Commented by 레미사랑 at 2009/08/27 11:15
접수할때도 힘들고 어시스트 할때도 힘들고..

그 이후에는 ...주사실에 때리는 소리만 "퍽퍽" ...
제가 손이 좀 매워요... 허허
블랙리스트의 환자분만 오시면 팔운동과 손가락운동을....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8/27 11:59
단골고객 접대가 영- 이라는 소리 자주 들으시겠어요. ^^
Commented by 교주님 at 2009/08/27 11:42
저도 ER 인턴때 Malig 환자로 꽤나 고생한 기억이...

첫 달에는 많이 고생했지만, (단골로 술먹고 행패부리고. 온 몸이 다! 아프다는~! 환자.)

Resedent 샘, Charge Nurse와 EMT등의 귀띰으로 어느정도 파악하고 나서는 대처법이 생겼다는..

대개는 Observation 후 Self discharge(DAMA)시키지만, 안 그런환자는 고생이죠..ㅠ.ㅠ

끝까지 남아서 불쌍한 인턴만 깨지는..

P.S.
(참고로 저는 개인적으로 DAMA discharge를 가장 선호했다는...)
(Discharge Against Medical Advice)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8/27 12:47
malig.는 정말 치가 떨릴정도로 밉습니다. DAMA, 좋지요. 당직의에게 아마 wanted discharge보다 좋은 것은 없을겁니다.
Commented at 2009/08/27 12:0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8/27 12:48
아마 지금쯤 열심히 acting nurse를 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원대 계시죠? 저희 동기녀석들은 잘하고 있을지...
Commented by 도라에몽 at 2009/08/27 13:38
선생님 전 원대 아닙니다 크헝허엏히히히힛
제 친구들이 있죵~~ 전 군산! 의료원 말고!!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8/28 23:06
앗, 의외로 가까이-
Commented by 먹보 at 2009/08/27 13:01
어휴..다들 정신에 문제가 있는 듯..
제가 병원에 일할 때 이름을 다 외우고 있을 정도 였나니깐요..얼굴만 봄 되는데..;;;;
서울에 여행을 오긴 했는데 여행은 커녕 비오고 혹시 옮을까 사람많은 곳은 못가겠고
혼자서 정말 청승떨고 있네요...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8/28 20:43
그래도 서울이닌까에 한표를 주고 싶습니다. 그나저나 그쪽도 비 많이오나 보네요.
Commented at 2009/08/28 09:1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8/28 20:43
호호. 재밌는 소설이네요. 나중에 시간나면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혹시나 제가 원하는 묘수(?)들이 숨어있을런지도. 전공은 나중에 살짝 말씀드리겠습니다.
Commented by 햇비 at 2009/08/28 13:10
아하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외우라니, 참; 바삐 일하다가 그런 요구 받으시면 당황하시겠어요.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8/28 20:44
음, 어쩌면 의사로써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데, 외우지 못하는 제가 잘못된 것일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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