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8월 15일
2천만원짜리 진단서
가끔 내 손에 의해서 작성된 작은 종이 한장이 지닌 대단한 위력에 놀랄 때가 종종 있다. 단순한 서류 한장이라 생각했던 것이 보험이라는 작업을 거치면서 때론 금덩어리로 변하게 되는 상황, 혹은 그 서류에서 단어 하나가 추가되고 빠짐으로써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큰 돈이 오가는 상황, 가끔 내 손은 수천만원을 만들어내는 황금손이 아닐까라는 착각에 빠질 때도 있다.
오늘 간만에 MMSE/CDR이라는 치매 진단검사를 하며 다시한번 이 짜릿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무척이나 바쁜 탓도 있었지만 이전에도 많이 해봤던 검사였기에 환자에게 몇가지 물음을 간단히 던진 후, 빠르게 끝마칠 생각이었다. 5분여만에 검사를 마치고 스테이션에 종이를 던져두고 ICU에 L-tube를 하러가는 찰나, 차치 선생이 '선생님, 이 종이 한장에 천만원인거 아시죠?'라며 우스갯 소리를 건네왔다. 순간 '이건 웬 헛소리?'라며 그 선생에게 그렇게 말한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1분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그 말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MMSE/CDR는 장소, 시간, 계절, 계산, 명칭, 종이접기, 기억장애 등의 30개 문항으로 구성된 치매 진단용 검사지다. 의사가 치매가 의심되는 환자에게 항목별로 질문을 던지고 환자는 그와 관련하여 답변을 하게 되는데, 의사는 그 답변을 듣고 판단하여 각각 0과 1의 점수 중 하나를 선택하여 부여한다. 대개 MMSE 19점 이하, CDR 3점 이상의 경우 치매로 진단받게 되며, 치매 증상과 관련하여 투여되는 약물에 보험이 적용된다. 오늘 검사했던 환자는 섬망으로 입원했는데 MMSE/CDR 결과 16/3.0의 점수로 치매를 진단받고 약물 투여를 시작했다.
차지 선생은 나에게 환자가 치매를 처음으로 진단받게 되면 천만원 가량의 돈을 보험회사로부터 받게 된다고 했다. 더불어 그녀는 내가 하는 그 간단한 잡일이 한 환자에게는 치매 진단을 통해서 천만원 가량의 보험금 수혜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갈림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슴 한켠에서부터 조여오는 알 수 없는 압박감과 함께 그간에 작성했던 MMSE/CDR 검사지와 함께 환자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이후 숙소로 돌아와 몇군데 보험회사의 치매관련 약관을 찾아서 읽어보았다. 다행스럽게도 금번 환자의 경우 CDR 3.0 이상으로 치매 보험 적용을 받아서 보험금 수혜가 가능한 케이스였다. 헌데 약관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치매 환자 중에는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환자도 상당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치매로 입원하는 환자 중에 CDR 3.0 이상을 만족하는 환자는 굉장히 드물고,(그간에 치매환자 MMSE/CDR검사를 30여명 넘게 해봤지만 CDR 2.0이 최고였던 것을 기억한다.) 이와같은 환자는 해당 보험회사의 약관대로라면 보험금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홈쇼핑에서 성황리에 판매되는 상당히 유명한 노후 보험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이와같은 엄격한 약관 규정으로 인해 구입자 중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상당수 될거라 생각한다.
물론 때론 이와같은 어려움 때문에 이곳 저곳에서 검사지를 '가라'로 작성하기를 요구받기도 한다. 내 손끝에서 어떤 점수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환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달라지기에, 어찌보면 이러한 외압(?)의 존재는 당연한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때부터 내 마음은 수많은 고민과 번뇌로 어지럽혀진다. 의사로써 양심과 두려움, 환자를 위한 배려와 동정 등 다양한 감정들이 교차한다. 물론 이러한 고민은 치매 검사뿐만 아니라 외상 환자의 진단서, 입원 환자의 소견서 등 다양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내린 판단 하나로 누군가는 혜택을 받고 기쁨을 얻지만 누군가는 아쉬움과 슬픔에 젖게되는 모습들을 종종 경험할 수 있었고, 때론 협박도 받아봤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경험이 너무나 부족하기에 무엇이 환자와 의사 모두를 위한 최선이고 정답인지 모르겠다. 아마 당분간은 어떤 결정이 모두를 위한 최선일지 매번 그 판단의 기로에 서서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 간만에 MMSE/CDR이라는 치매 진단검사를 하며 다시한번 이 짜릿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무척이나 바쁜 탓도 있었지만 이전에도 많이 해봤던 검사였기에 환자에게 몇가지 물음을 간단히 던진 후, 빠르게 끝마칠 생각이었다. 5분여만에 검사를 마치고 스테이션에 종이를 던져두고 ICU에 L-tube를 하러가는 찰나, 차치 선생이 '선생님, 이 종이 한장에 천만원인거 아시죠?'라며 우스갯 소리를 건네왔다. 순간 '이건 웬 헛소리?'라며 그 선생에게 그렇게 말한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1분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그 말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MMSE/CDR는 장소, 시간, 계절, 계산, 명칭, 종이접기, 기억장애 등의 30개 문항으로 구성된 치매 진단용 검사지다. 의사가 치매가 의심되는 환자에게 항목별로 질문을 던지고 환자는 그와 관련하여 답변을 하게 되는데, 의사는 그 답변을 듣고 판단하여 각각 0과 1의 점수 중 하나를 선택하여 부여한다. 대개 MMSE 19점 이하, CDR 3점 이상의 경우 치매로 진단받게 되며, 치매 증상과 관련하여 투여되는 약물에 보험이 적용된다. 오늘 검사했던 환자는 섬망으로 입원했는데 MMSE/CDR 결과 16/3.0의 점수로 치매를 진단받고 약물 투여를 시작했다.
“치매상태” 정의 및 진단확정은 무엇인가요?
가. “치매상태”란 보험대상자(피보험자)가 계약일 이후에 발생한 재해 또는「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중 부표4[기질성(器質性) 치매 분류표]에서 정한 질병으로 인하여 치매보장개시일 이후에 “기질성(器質性) 치매 (organic demendtia)상태”가 되고 이로 인하여 의식의 장해 없이“ 인지기능의 장애”가 발생한 상태를 말합니다.
나. 제1항의 “인지기능장애”라 함은 다음 중 제1호에서 정한 한국형 간이 인지기능(MMSE-K(Mini-mental state examination, Korean version), 1989년)의 선별검사 결과가 19점 이하(단, 국내 의학계에서 인정되는 검사 방법으로 이와 동등한 정도로 판정되는 경우를 포함합니다.)이고 동시에 다음 중 제2호에서 정한 CDR척도(Clinical dementia rating scale, 1996년)의 검사결과가 3, 4, 5점(단, 국내 의학계에서 인정되는 검사 방법으로 이와 동등한 정도로 판정되는 경우를 포함합니다.)에 해당되는 상태로서 그 상태가 치매보장개시일 이후에 발생하고 발생시점으로부터 90일 이상 계속되어 장래에 더 이상의 호전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차지 선생은 나에게 환자가 치매를 처음으로 진단받게 되면 천만원 가량의 돈을 보험회사로부터 받게 된다고 했다. 더불어 그녀는 내가 하는 그 간단한 잡일이 한 환자에게는 치매 진단을 통해서 천만원 가량의 보험금 수혜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갈림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슴 한켠에서부터 조여오는 알 수 없는 압박감과 함께 그간에 작성했던 MMSE/CDR 검사지와 함께 환자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이후 숙소로 돌아와 몇군데 보험회사의 치매관련 약관을 찾아서 읽어보았다. 다행스럽게도 금번 환자의 경우 CDR 3.0 이상으로 치매 보험 적용을 받아서 보험금 수혜가 가능한 케이스였다. 헌데 약관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치매 환자 중에는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환자도 상당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치매로 입원하는 환자 중에 CDR 3.0 이상을 만족하는 환자는 굉장히 드물고,(그간에 치매환자 MMSE/CDR검사를 30여명 넘게 해봤지만 CDR 2.0이 최고였던 것을 기억한다.) 이와같은 환자는 해당 보험회사의 약관대로라면 보험금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홈쇼핑에서 성황리에 판매되는 상당히 유명한 노후 보험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이와같은 엄격한 약관 규정으로 인해 구입자 중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상당수 될거라 생각한다.
물론 때론 이와같은 어려움 때문에 이곳 저곳에서 검사지를 '가라'로 작성하기를 요구받기도 한다. 내 손끝에서 어떤 점수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환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달라지기에, 어찌보면 이러한 외압(?)의 존재는 당연한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때부터 내 마음은 수많은 고민과 번뇌로 어지럽혀진다. 의사로써 양심과 두려움, 환자를 위한 배려와 동정 등 다양한 감정들이 교차한다. 물론 이러한 고민은 치매 검사뿐만 아니라 외상 환자의 진단서, 입원 환자의 소견서 등 다양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내린 판단 하나로 누군가는 혜택을 받고 기쁨을 얻지만 누군가는 아쉬움과 슬픔에 젖게되는 모습들을 종종 경험할 수 있었고, 때론 협박도 받아봤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경험이 너무나 부족하기에 무엇이 환자와 의사 모두를 위한 최선이고 정답인지 모르겠다. 아마 당분간은 어떤 결정이 모두를 위한 최선일지 매번 그 판단의 기로에 서서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 by | 2009/08/15 02:13 | 인턴일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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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많은 걸 배우게 되는 거 같아요..적당한 선 에서의 타협과 융통성이
필요하더라구요..그렇다고 해서 폴리클 님이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되겠죠..
선배 분들에게 조언도 얻으면서 지혜롭게 잘 헤쳐나가시길 바래요~
제 주변에는 가입한 사람들이 없어서..
이런 부분을 할땐..중간이라는 것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이러기도 저러기도 힘들다가...답인 것 같아요..
참 어렵네요.
음...
뭐라고 말하기 참 어렵네요.
그냥 힘내세요..아자아자~!!
전 보험사 보상과에서 근무하는 직원입니다.
현재 F00~F03 코드를 받을경우엔 CDR을 이용한 검증후에 지급이 이루어지니 정말
마이다스의 손과도 같으시겠네요. 그 뿐만 아니라 동요관절판단 운동각도제한이 장애판단이
이루어지니 직원들도 맘이 편하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월급쟁이는 힘이 없습니다 ;;;;;) 심지어 의사가 오진이 내린것이니 소견서 다시 받아오면 돈줄꺼냐
라고 하면 저도 할말이 없어집니다.... 에구구;;;
폴리클님 언제나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ㅡ^)/~*
힘내세요~
블로그 구독한지 얼마 안되었는 데, 읽는 즐거움이 쏠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