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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조의금

 
 간암 말기를 진단 받았던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두 발이 손이 되도록 빌어 휴가를 이틀 삭감하는 조건으로 쓰리오프를 받았다. 고교 재학시절, 그 친구와는 콩 한쪽도 반으로 나누어 먹을만큼 친했다.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우리는 함께 부조리한 세상을 씹어댔고 희망찬 미래를 꿈꿨다. 그 친구는 인문계로 판사를 꿈꿨고, 나는 이공계로 닥터가 되기를 바랬다. 물론 서로 지향하는 바는 달랐지만, 이 사회에 꼭 필요한 밑거름이 되자는 생각만은 똑같았다.

 어쩌면 내겐 친구, 아니 형제와 같은 그의 아버님이 병환으로 앓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소식을 듣자마자 내 일처럼 슬펐다. 그리고 그 친구가 걱정되었다. 가족이라곤 어머니외엔 친척 하나 없었기에 머릿 속에선 그가 장례식장에 서서 홀로 문상객을 맞이하며 힘들어하고 슬퍼하는 모습 외엔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왠지 나라도 가야할 것 같은 사명감(?) 때문에 과감히 휴가를 희생시켜 오프를 신청하고, 고향의 한 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향해 자동차로 장장 300km를 달렸다. 곡성부터는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시속 130이상으로 차를 몰았다. 차체가 이리저리 흔들렸지만 무서움보단 그 친구에 대한 걱정이 앞섰기에 두렵지 않았다. 

 그렇게 3시간을 달린 후에야 빈소가 마련된 고향의 한 장례식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일단 친구에게 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그 녀석, 홀로 문상객을 맞이하느라 피곤해서 숙면을 취하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입구에서 주욱 둘러보니 설치된 빈소는 하나뿐이었고, 나는 그것이 그 친구 아버님의 빈소가 맞을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다가갔다. 빈소 바깥에는 처음 마주하는 20대 여성이 방명록 작성과 조의금 수납을 돕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방명록에 이름 석자를 휘갈기고, 조의금을 그 여성에게 맡긴채 빈소로 들어서자마자 절을 올렸다. 그리곤 상주 자리에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조카뻘즈음 되어보이는 그 소년들에게, '힘내라'며 격려를 했다. 그리곤 친구의 안부가 궁금하여 그 소년들에게 '김**는 어디갔니?' 라고 물었다.

 헌데 돌아오는 대답은, '누구 말씀이신지'. 그 친구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러주곤 재차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모른다'였다. 어디선간 불길한 예감이 나를 엄습해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인의 함자와 친구 아버님의 성씨를(함자는 몰랐다.) 비교해보았다. 둘다 '김'으로 동일했다. 무척이나 당황하던 찰나 뒤에서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이 처참하고도 당혹스런 상황에서 내 이름을 부른 사람은 누굴까, 궁금했다. 그리고 이내 뒤돌아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3년만에 조우지만 얼굴만 보고도 고교시절 우리와 함께 놀았던 조아무개임을 알 수 있었다. 조아무개는 내게 빨리 나오라 손짓하더니 귓속말로 '남의 빈소에서 뭐하고 있어'라며 얼굴이 상기된채로 속삭였다. (아마 뒤에서 절하고, 상주와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모두 지켜봤나보다.)

 순간 머릿 속이 멍해졌다. 당황스러움과 함께 창피함이 몰려왔다. 가장 친했던 친구 아버님의 빈소도 못찾다니. 1층만 주욱 둘러보곤 빈소가 하나밖에 없다 확신했었지만, 그 친구 아버님의 빈소는 1층이 아닌 2층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이윽고 상주였던 친구가 돌아왔고 방금 있었던 일을 조심스레 들려주자 '껄껄'거리며 웃었다. 내 실수탓인지 모르겠지만 슬픔에 잠겨있을 그 친구의 건강한 웃음을 다시금 마주하니 참 다행스러웠다. 

 시간이 흐르고 슬픔이 어느정도 무디어져 갈 때즈음, 서서히 조의금으로 5만원이나 준비했던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 빈소에 찾아가 다시 돌려달라하기도 쑥스럽고, 이미 인사까지 나눈 마당에 조의금을 돌려달라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싶어서 '돌려받고 싶은 마음'을 꼭꼭 억눌렀다. 그래도 잠시나마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빈소 앞에서 진심으로 그의 죽음을 슬퍼했으며, 조금이나마 그 슬픔을 함께하기 위해서 조의금을 전한 것이라 생각하며 잊어버리기로 했다.

 물론 그 이후 친구의 안내를 받아 2층에 마련된 친구네 아버님 빈소을 찾아 인사를 드리고, ATM기에서 갓 뽑아온 따끈따끈한 조의금을 다시금 전했다. 그리곤 새벽 3시까지 빈소에서 일을 도운 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마시며 엉뚱했던 오늘 하루를 돌이켜보니 슬픔보다는 오히려 헛웃음만 나온다. 하루에 두번 문상을 한 것도 처음이었지만 조의금을 엉뚱한 빈소에 드렸던 웃지 못할 기억 때문에 2009년 7월 23일은 평생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다. 

by Polycle | 2009/07/24 03:32 | 기분 | 트랙백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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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7/24 04:4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7/31 02:01
피로때문에 눈까지 흐려진거 같아요. ㅠㅠ
Commented by Crete at 2009/07/24 06:39
친구분 아버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래도 그 친구분은 Polycle님같은 좋은 친구분을 두셨으니 든든하셨을 겁니다.

두분 우정이 영원하길 기원합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7/31 02:01
감사합니다. 친구녀석에게 힘이 되어야하는데 바보같은 행동으로 짐만 된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Commented by 아나로즈 at 2009/07/24 07:27
친구분 아버님의 명복을 빕니다.
바쁜 생활이라도 의리를 지키는 모습이 좋군요. (휴가 삭감이라니...;_ ;)
조의금도 두 번씩이나...그래도 좋은 일 하셨네요. ^^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7/31 02:02
과연 좋은 일인지 아직도 한참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
Commented at 2009/07/24 11:3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7/31 02:02
대단하십니다. ㅠㅠ 전 도저히 그럴 용기가 나질 않더라구요.
Commented by egloos at 2009/07/24 12:26
멋지네요.. 다만 급한상황이라 실수야.. 있을수도 있지요..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7/31 02:03
너무 급했던건 아닌지, 좀 더 상황을 객관적으로 지켜보고 여유있게 행동했어야 하는데. 친구에게 짐만 된 느낌이었죠.
Commented by 2 at 2009/07/24 17:43
가끔 들러서 글 읽고 가는데... 음.. 참 좋은 분이신 것 같아요 ^^ 저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7/31 02:03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유시 at 2009/07/24 22:40
쿨럭.....중간에 조금 ^_^;;
좋은 우정이네요.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7/31 02:03
몇 안되는 친구니 말입니다. ;;
Commented at 2009/07/26 18:5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7/31 02:04
뒤바뀐 조의금을 받았던 가족에게도 피해를 끼친건 아닌지 한참을 걱정했습니다.
Commented by 푸리 at 2009/07/28 14:41
그 분에게 뭔가 전생에 빚이 있어서 갚으신 건가봐요 ㅎㅎ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7/31 02:04
푸리님의 날카로운 해석이시네요. 그럴거라 믿어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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