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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반지

 
내게는 그 어떤 보석보다도 값진 선물이었던 보석반지

 덥고 칙칙한 여름 그나마 시원한 병동의 복도를 이리저리 쏘다니며 멀리서 온 관광객 마냥 헤메고 있을 때, 한 꼬마 숙녀가 내게 다가와 매점이 어디냐고 물었다. 마침 목도 마르고 시원한 쥬스 생각이 간절했기에 그 꼬마 아이에게 '오빠하고 같이 매점에 갈까' 라고 다정스럽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꼬마 아이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내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그것은 바로 '오빠가 아니라 아저씨 아니예요? 헤헤헤'라는 청천벽력같은 한마디.

 '오빠가 아니라 아저씨인데', 귓가엔 끊임없이 '아저씨인데...'가 맴돌았다. 아직 20대 중반인 나에게 아저씨라니, 내게는 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 후 가장 큰 쇼크였다. 예전보다 윤기는 줄었지만 아직도 찰랑거리는 머릿결이며, 보톡스를 맞지 않더라도 풍성한 볼살, 주름기 없는 이마, 내 몸을 이루는 구석구석 모든 것들은 아직 아저씨보다는 오빠라는 표현을 더 원하고 있었다. 

 아저씨란 표현은 가운을 입은데다 미처 다듬지 못한 수염 탓일꺼라 마음 속으로 수천번 되뇌이면서 그 아이와 매점으로 향했다. 나는 고교 재학시절부터 아침으로 즐겨 마셨던 탄산음료를 골랐고 그 아이는 나이에 맞지않게 옥수수차를 골랐다. 그 아이의 음료 선택이 무척이나 궁금했던 나는 왜 헬로 팬돌이와 같은 어린이 음료가 아니라 노인네 같이 옥수수차를 선택했는지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김태희 언니처럼 V라인 만들어 예뻐지고 싶어서' 였다. '어린이는 동글동글한게 예쁜거란다.'라고 말을 건네자 꼬마 숙녀는 이내 '아빠는 홀짝 마른 여자가 예쁘다던데'라고 답했다. 순간 뒤통수를 한대 얻어 맞은 것처럼 멍한 기분이 들었다.

 병동으로 돌아와선 아이를 병실까지 안내해주었다. 아이 부모님은 딸아이가 병원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녀서 찾느라 애먹었는데 선생님이 찾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매점까지 데려가서 음료수 하나 사준거 외엔 특별히 한 일도 없었다 말했지만 그래도 그 아이의 부모는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팬티 바람으로 숙소에서 자고 있는데 여자 동료가 갑자기 들어와선 ER콜 있다며 깨울 때보다도 더 민망했다. 그래도 병원의 녹을 먹고 사는 한 사람으로, 환자나 보호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스테이션에서 환자 사진을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던 찰나 그 아이가 의사 선생님 고맙다며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반짝이는 그것은 90년대를 평정했던 문방구 사탕계의 1인자, 보석반지였다. 아직도 이 사탕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니 그 끈질긴 생명력에 무척이나 놀랐고, 지난 6개월간 근무기간을 통틀어 선물을 직접 받은 것은 처음인지라 설레기까지 했다. 환자에게 처음으로 받아본 선물, 감동 그 자체였다. 가슴 속 깊이 오랜시간 남겨두려 포장도 뜯지 않은채 서랍 속에 고이고이 모셔두었다. 나태해질 때마다 꺼내보며 그 고마운 마음을 떠올릴거라 다짐하면서.

by Polycle | 2009/07/16 23:02 | 일기 | 트랙백(1) | 핑백(2) | 덧글(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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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정철상의 "커리어노트" at 2009/07/17 14:41

제목 : 나쁜 의사와 명의 같은 의사
아이들이 아파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들린 적이 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다른 분들에 비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좋더군요. 어머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의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요즘은 그나마 소아과 의사님들이 가장 친절한 것 같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의사들이 너무 퉁명스럽고 불친절하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몇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 주시더군요. 예전에 어머님이 한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의사에게 지어준 ......more

Linked at EBC (Egloos Broa.. at 2009/07/2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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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수줍은 느낌의 미소 : 나에게.. at 2009/08/19 16:44

... 원' 감동! 일전에 몇차례 소개한 적이 있지만, 의사로서 환자들과의 라뽀를 쌓으면서 다양한 감정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예전에 환아에게 받았던 보석반지나 촌지사건 등이 특히 기억에 남네요. 되도록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에 친절하고 따뜻한 의사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그렇게 하지 못할 ... more

Commented at 2009/07/16 23:0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바다사자 at 2009/07/16 23:29
글을 읽는내내 행복함이 묻어나오네요 ><찡~
그 아이도 오빠가 사준 음료수 먹고 이쁘게 컸길!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7/17 10:28
그 아이는 평생 아저씨가 사준 음료수로 기억하지 않을까요. ㅠㅠ
Commented by 공룡사랑 at 2009/07/16 23:39
후후...뿌듯하시죠? ^^ 그리고 그 보석반지. 예전처럼 문방구에 파는 것 말고도,
키즈카페 백화점 안에서 파는 괜찮은 것도 있답니다. :)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7/17 10:29
뿌듯했지요. ^^
헌데 백화점에서 파는 보석반지면 보석반지 사탕을 몇개나 살 수 있을까요.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Commented by 공룡사랑 at 2009/07/17 11:37
깔깔 써놓고 보니 보석반지 사탕 이야기인데 -_-;;;
제가 뭔 돈이 있어서 백화점에서 보석반지를 보겠어요 ㅋㅋ
Commented at 2009/07/16 23:4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7/17 10:30
개인적으로 찰랑거릴거라는 강한 믿음을... 요새 엘라스틴도 꾸준히 사용하고 있으니...
Commented by 샛별 at 2009/07/17 00:05
저도 아저씨 소리 듣습니다.
그냥, 인정하세요...얘들은 매우 순수해서 거짓말 잘 안함 ㅠㅠ

덧붙여서 오늘은 매우 쇼킹한 일만 겪으셨군요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7/17 10:30
어허 벌써 아저씨라는 소리를... 그나저나 우리 캐릭터는 잘 크고 있나요? 접속해본다는게 통...
Commented by 닭고기 at 2009/07/17 00:14
보석사탕 요즘 본적이 없는데 정말 귀한 선물이군요.
그나저나 아이들은 솔직한 것 같아요.후후.. 저랑 완전 반대의 상황이셨군요.왠지 자랑하는 듯 하지만(이 아니라 자랑맞지만) 일땜에 노티나게 일부러 정장 입고 화장했는데도 어떤 애가 "근데 언니는...." "어머,애 나 언니 아니라 선생님이야!^^" "근데 언니같은데 어떻해요..궁시렁"
폴리클림 저랑 동갑아니신가요.호호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7/17 10:31
그러게요. 노티나게 정장을 입어도 언니라고 불리우는 닭고기님이 부러워요. ;D 그나저나 보석사탕 어디서 구했는지 요새 통 못봤던거 같은데...
Commented by Lucida at 2009/07/17 00:52
앗 이것은 프로포즈~^^ ㅋㅋㅋ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7/17 10:31
루시다 이모께도 제가 프로포즈? ^^
Commented by bluesoup at 2009/07/17 02:50
읽는 저도 마음이 훈훈해지네요ㅎㅎ 그런데 아저씨라..... 병 주고 약 주는 녀석일세 ㅎㅎ
초등학교 구강검진 갔을 적에, 5학년 여자아이들에게 남자 동기들은 죄 아저씨 소릴 들은 반면 여학우들은 언니 소릴 들었습니다 ㅎㅎ 요즘 여자애들 뭔가를 알아요......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7/17 10:32
요즘 여자애들이 세상 흘러가는 분위기를 잘 아나봅니다. ^^ 그나저나 bluesoup님도 구강검진 꽤나 다니시나 봅니다.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친구들도 여럿보았는데 즐기시나봐요. ^^
Commented by Crete at 2009/07/17 04:36
지난 한달간 읽은 글 중에 최고네요.

모처럼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좋은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7/17 10:33
감사합니다. 저도 지난 한달간 보았던 덧글 중 Crete님 덧글이 최고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모처럼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
Commented at 2009/07/17 06:2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7/17 10:33
아직 늦지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저와 함께 관리라는 것을...
Commented at 2009/07/17 08:2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7/17 10:34
앗, 오랜만입니다. 사진은 잘 보고 있습니다. 블로그 분위기가 바뀌어 도통 적응이 어렵더군요. ^^
Commented by 저녁노을 at 2009/07/17 11:59
보람있었겠습니다. 훈훈한 글 잘 보고 갑니다.
Commented by 아이리스 at 2009/07/17 12:09
ㅋㅋ 저거 아직 있군요. 좋으셨겠어요 :)
Commented by 노진희 at 2009/07/17 12:18
ER 은 응급실이구요.ㅎ
ICU 는.ㅋ 중환자실입니다.ㅋㅋ

() 로.ㅋㅋ 해석해주셨음. ㅋㅋㅋ 보는 사람들이.ㅋㅋㅋ
Commented by ICEAGE at 2009/07/17 13:14
내공(?)있는 꼬마아이네요~ (아저씨, V라인, 그리고 선물...)
그 '보석반지' 오래토록 간직하시려면... 진공포장이나 장식물로 하시면 좋으실듯 ㅋㅋ
앞으로도 유익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Ps. 그런데 그 꼬마가 환자였나요? ("환자에게 처음으로 받아본 선물...")
Commented by candice at 2009/07/17 13:21
어머 정말 귀여우면서도 왠지 특이한 꼬마 같네요 ^^ 맘대로 아저씨, V라인에... 센스(?)있는 선물까지 ㅎㅎ

저도 세살짜리 꼬마가 저보고 언니라고 안하고 이모라고 하기에 깜놀... 머리속에서 잠시 '이모래 이모이모이모' 소리만 맴돌더라고요;; (19살인데;;; 내가 벌써 이모소리를 들어야겠니 ㅠㅠ) ㅋ
Commented by 씁쓸하죠 at 2009/07/17 13:32
멋진 의사 선생님 되시겠어요
Commented by 이은정 at 2009/07/17 14:01
저도 어릴적에 너무 좋아했던 보석반지사탕 ㅎㅎ
오랫만에 옛 생각도 하게되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이네요~ 꼬마숙녀게 아주 센스쟁이인듯 :)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좋은주말 되시고 항상 행복하세요^^
Commented by 이콩쥐 at 2009/07/17 14:01
하하, 귀여운 여자애군요!
엄마미소 짓게 되는 글인데, 얼마전 몹시 놀랍게 믿고 싶지 않는 '아줌마' 소리를 들었던 터라, 그저 눔물이 왈칵왈칵 거리군요. 흑.
Commented by 한주연 at 2009/07/17 14:05
참... 아름답습니다.
Commented by 아나로즈 at 2009/07/17 14:11
오 저도 저게 아직 있는 줄 몰랐는데 ^^ 두근두근하시겠어요~
저도 3학년 때 처음 PK 돌던 시절, 제가 맡아 보고 있던 소아과의 7살짜리 귀여운 남자아이가 화이트데이라고 사탕 한 상자 줘서 엄청 감동받았는데~그때 생각이 나네요.
Commented by 따뜻한 카리스마 at 2009/07/17 14:41
좋은 의사, 멋진 의사, 훌륭한 의사가 되실 것입니다^^ㅎ
Commented by 김경희 at 2009/07/17 15:49
우와~^^
멋지네염.
병원에서 일하시나봐여~~~ 굿잡.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이쁘네요.
김태희 브이라인...-_- 아버님은 마른 여자가 이쁘다..후...ㅠ_ㅜ
뭐 어쨋던 귀여운 꼬마아가씨넹~
Commented by 진홍빛양귀비 at 2009/07/17 15:54
참~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사와 귀여운 아이의 이야기네요.
잘보고 갑니다~^^
Commented by 오호라 at 2009/07/17 15:59
마음만 남기고 얼른 드세요. 그냥 두시면 언젠가는 녹아서 끈적이는 설탕엑기스와 거기에 꼬인 개미와 바퀴벌레떼를 만나실수있습니다.
Commented at 2009/07/17 16:1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운향목 at 2009/07/17 18:14
저도 아저씨 소리 듣는걸요...OTL

일단 녹기전에 드시고, 남아있는 링을 간직 하시는게 어떨런지..
플라스틱링을 뭔가 케이스에 담아 둔다던가, 군번줄 같은걸로 꿰어서 어딘가 걸어 놓는다던가 하는것이 녹아서 형태를 알아볼수 없게된 사탕보다 더 기억에 남을지두요 :D
[볼때마다 맛도 아련하게 기억 날테구요]
Commented by rainblue77 at 2009/07/17 21:29
아저씨..ㅎㅎ

애들 눈에는 교복 안입고 있으면 다 아줌마 아저씨로 보이는 것 같아요..;;

20살 때..아줌마 소리 들은 저는 굉장한 쇼크..

애들이니까...그러려니 했는데..애 엄마가 와서....언니 보고 아줌마 라고 하면 어쩌니..하면서 큰소리로 그러시는데..더 민망했던 기억이 나네요...ㅠㅠ

급 슬퍼지는...ㅠㅠ

보석사탕...참 오랜만이네요..ㅎ

저 어릴때 즐거 먹었는데..

저 사탕이랑...겉은 투명하고 속에 초콜릿이 든..사탕..이름은 생각안나는데..그것 정말 좋아라 했는데..

그 사탕은 요즘 안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ㅎ

사탕 녹지 않게 잘 보관하세요..ㅎㅎ

기분이 지옥과 천당을...오르락 내리락 하신 것 같아요.ㅎㅎ

귀여운 꼬마숙녀네요..ㅎㅎ

그런데..브이라인에서...좀 충격을..제 볼살을 되돌아 보게 되네요..;;
Commented by 떼아모 at 2009/07/18 15:04
앙 학점 2.1 떳어영 살려주세요
Commented by 까망 at 2009/07/19 22:21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게 하는 글이네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아는것 같아요♡
그런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지켜주는 의사 선생님이 되세요ㅎㅎ
Commented by 은수저 at 2009/07/20 04:16
아저씨소리들으시다니ㅜㅜ폴리클님되게훈남이실거같은데..사탕너무오래아껴두진마세요..여름이라끈적끈적해진답니닼ㅋㅋㅋㅋㅋㅋ

폴리클님은정말좋은의사가되실거같애요 ㅋㅋ
Commented by -_-; at 2009/07/24 12:24
먹을 거 주는 보호자가 제일 감사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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