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16일
보석반지

덥고 칙칙한 여름 그나마 시원한 병동의 복도를 이리저리 쏘다니며 멀리서 온 관광객 마냥 헤메고 있을 때, 한 꼬마 숙녀가 내게 다가와 매점이 어디냐고 물었다. 마침 목도 마르고 시원한 쥬스 생각이 간절했기에 그 꼬마 아이에게 '오빠하고 같이 매점에 갈까' 라고 다정스럽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꼬마 아이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내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그것은 바로 '오빠가 아니라 아저씨 아니예요? 헤헤헤'라는 청천벽력같은 한마디.
'오빠가 아니라 아저씨인데', 귓가엔 끊임없이 '아저씨인데...'가 맴돌았다. 아직 20대 중반인 나에게 아저씨라니, 내게는 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 후 가장 큰 쇼크였다. 예전보다 윤기는 줄었지만 아직도 찰랑거리는 머릿결이며, 보톡스를 맞지 않더라도 풍성한 볼살, 주름기 없는 이마, 내 몸을 이루는 구석구석 모든 것들은 아직 아저씨보다는 오빠라는 표현을 더 원하고 있었다.
아저씨란 표현은 가운을 입은데다 미처 다듬지 못한 수염 탓일꺼라 마음 속으로 수천번 되뇌이면서 그 아이와 매점으로 향했다. 나는 고교 재학시절부터 아침으로 즐겨 마셨던 탄산음료를 골랐고 그 아이는 나이에 맞지않게 옥수수차를 골랐다. 그 아이의 음료 선택이 무척이나 궁금했던 나는 왜 헬로 팬돌이와 같은 어린이 음료가 아니라 노인네 같이 옥수수차를 선택했는지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김태희 언니처럼 V라인 만들어 예뻐지고 싶어서' 였다. '어린이는 동글동글한게 예쁜거란다.'라고 말을 건네자 꼬마 숙녀는 이내 '아빠는 홀짝 마른 여자가 예쁘다던데'라고 답했다. 순간 뒤통수를 한대 얻어 맞은 것처럼 멍한 기분이 들었다.
병동으로 돌아와선 아이를 병실까지 안내해주었다. 아이 부모님은 딸아이가 병원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녀서 찾느라 애먹었는데 선생님이 찾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매점까지 데려가서 음료수 하나 사준거 외엔 특별히 한 일도 없었다 말했지만 그래도 그 아이의 부모는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팬티 바람으로 숙소에서 자고 있는데 여자 동료가 갑자기 들어와선 ER콜 있다며 깨울 때보다도 더 민망했다. 그래도 병원의 녹을 먹고 사는 한 사람으로, 환자나 보호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스테이션에서 환자 사진을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던 찰나 그 아이가 의사 선생님 고맙다며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반짝이는 그것은 90년대를 평정했던 문방구 사탕계의 1인자, 보석반지였다. 아직도 이 사탕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니 그 끈질긴 생명력에 무척이나 놀랐고, 지난 6개월간 근무기간을 통틀어 선물을 직접 받은 것은 처음인지라 설레기까지 했다. 환자에게 처음으로 받아본 선물, 감동 그 자체였다. 가슴 속 깊이 오랜시간 남겨두려 포장도 뜯지 않은채 서랍 속에 고이고이 모셔두었다. 나태해질 때마다 꺼내보며 그 고마운 마음을 떠올릴거라 다짐하면서.
# by | 2009/07/16 23:02 | 일기 | 트랙백(1) | 핑백(2) | 덧글(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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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도 오빠가 사준 음료수 먹고 이쁘게 컸길!
키즈카페 백화점 안에서 파는 괜찮은 것도 있답니다. :)
헌데 백화점에서 파는 보석반지면 보석반지 사탕을 몇개나 살 수 있을까요.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뭔 돈이 있어서 백화점에서 보석반지를 보겠어요 ㅋㅋ
그냥, 인정하세요...얘들은 매우 순수해서 거짓말 잘 안함 ㅠㅠ
덧붙여서 오늘은 매우 쇼킹한 일만 겪으셨군요
그나저나 아이들은 솔직한 것 같아요.후후.. 저랑 완전 반대의 상황이셨군요.왠지 자랑하는 듯 하지만(이 아니라 자랑맞지만) 일땜에 노티나게 일부러 정장 입고 화장했는데도 어떤 애가 "근데 언니는...." "어머,애 나 언니 아니라 선생님이야!^^" "근데 언니같은데 어떻해요..궁시렁"
폴리클림 저랑 동갑아니신가요.호호
초등학교 구강검진 갔을 적에, 5학년 여자아이들에게 남자 동기들은 죄 아저씨 소릴 들은 반면 여학우들은 언니 소릴 들었습니다 ㅎㅎ 요즘 여자애들 뭔가를 알아요......
모처럼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좋은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ICU 는.ㅋ 중환자실입니다.ㅋㅋ
() 로.ㅋㅋ 해석해주셨음. ㅋㅋㅋ 보는 사람들이.ㅋㅋㅋ
그 '보석반지' 오래토록 간직하시려면... 진공포장이나 장식물로 하시면 좋으실듯 ㅋㅋ
앞으로도 유익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Ps. 그런데 그 꼬마가 환자였나요? ("환자에게 처음으로 받아본 선물...")
저도 세살짜리 꼬마가 저보고 언니라고 안하고 이모라고 하기에 깜놀... 머리속에서 잠시 '이모래 이모이모이모' 소리만 맴돌더라고요;; (19살인데;;; 내가 벌써 이모소리를 들어야겠니 ㅠㅠ) ㅋ
오랫만에 옛 생각도 하게되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이네요~ 꼬마숙녀게 아주 센스쟁이인듯 :)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좋은주말 되시고 항상 행복하세요^^
엄마미소 짓게 되는 글인데, 얼마전 몹시 놀랍게 믿고 싶지 않는 '아줌마' 소리를 들었던 터라, 그저 눔물이 왈칵왈칵 거리군요. 흑.
저도 3학년 때 처음 PK 돌던 시절, 제가 맡아 보고 있던 소아과의 7살짜리 귀여운 남자아이가 화이트데이라고 사탕 한 상자 줘서 엄청 감동받았는데~그때 생각이 나네요.
멋지네염.
병원에서 일하시나봐여~~~ 굿잡.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이쁘네요.
김태희 브이라인...-_- 아버님은 마른 여자가 이쁘다..후...ㅠ_ㅜ
뭐 어쨋던 귀여운 꼬마아가씨넹~
잘보고 갑니다~^^
일단 녹기전에 드시고, 남아있는 링을 간직 하시는게 어떨런지..
플라스틱링을 뭔가 케이스에 담아 둔다던가, 군번줄 같은걸로 꿰어서 어딘가 걸어 놓는다던가 하는것이 녹아서 형태를 알아볼수 없게된 사탕보다 더 기억에 남을지두요 :D
[볼때마다 맛도 아련하게 기억 날테구요]
애들 눈에는 교복 안입고 있으면 다 아줌마 아저씨로 보이는 것 같아요..;;
20살 때..아줌마 소리 들은 저는 굉장한 쇼크..
애들이니까...그러려니 했는데..애 엄마가 와서....언니 보고 아줌마 라고 하면 어쩌니..하면서 큰소리로 그러시는데..더 민망했던 기억이 나네요...ㅠㅠ
급 슬퍼지는...ㅠㅠ
보석사탕...참 오랜만이네요..ㅎ
저 어릴때 즐거 먹었는데..
저 사탕이랑...겉은 투명하고 속에 초콜릿이 든..사탕..이름은 생각안나는데..그것 정말 좋아라 했는데..
그 사탕은 요즘 안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ㅎ
사탕 녹지 않게 잘 보관하세요..ㅎㅎ
기분이 지옥과 천당을...오르락 내리락 하신 것 같아요.ㅎㅎ
귀여운 꼬마숙녀네요..ㅎㅎ
그런데..브이라인에서...좀 충격을..제 볼살을 되돌아 보게 되네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아는것 같아요♡
그런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지켜주는 의사 선생님이 되세요ㅎㅎ
폴리클님은정말좋은의사가되실거같애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