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14일
119
119가 밉다. 가장 진료하기 힘든 타입의 환자들만 이송해오는 119가 밉다. 창문밖으로 119의 빠알간 불빛이 반짝이는 시간이 찾아오면 긴장하게 된다. 오늘은 어떤 타입의 환자를 싣고 왔을까, 취객? 거리의 파이터? 독거노인? 정신질환자? 공통점이라면 진료하기 힘든 환자들이라는 사실. 그나마 대화라도 통하는 이들이라면 하늘에 감사할 따름이다. 대부분 정신이 반쯤은 나가있는 환자들이라 대화를 전개해 나가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물론 119이송 환자 모두가 난해한 환자는 아니다. 119환자들도 모두 응급진료가 필요한 상황의 환자들이고, 대부분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119에 실려오는 환자는 대개 상대하기가 어렵다. 교통사고라면 다발외상에 상태 또한 좋지않다. 술에 찌든 행려환자들은 와서 헛소리만 주절대다가 술이 깨면 주사바늘 뽑아버리고 도망가기 일쑤다. 거리의 파이터들은 죽어라 이학적 검사해서 오더를 내놓으면 진료비가 비싸다며 그냥 나가버린다. 그리고 몇일뒤, 또 human trouble로 찾아온다. 그럼 재차 이학적 검사를 해야만 하고, 다시 진료비가 비싸다는 이유로 취소하고 간다. 이런 vicious cycle을 수처례 반복하다보면 익숙한 얼굴도 몇몇 생기게 되는데, 그 기억속의 블랙 리스트는 다음번 진료에 참고자료로 사용된다.
정신과 입원이 불가능한 병원인지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119는 정신과틱 해보이는 환자조차 싣고 온다. 그래 그들도 나름 사정이 있을거라 마음소으로 100번 되뇌이며 이해하려 노력해본다. 하지만 폐쇄병동에 입원 가능하다는 감언이설로 보호자를 꼬시고(?) 배드에 환자를 내동댕이 치고 가버리는 119를 보면 원망스러운 마음이 한가득이다. '그래, 정신과적 응급이라면 이해해'라며 다시금 수없이 되뇌여 보지만 홀로사는 우울증 환자마저 응급실에 깔아놓고 가는 그들을 보면, 여기가 무슨 독거노인 위탁소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나마 환자 성함이나 보호자 연락처등 기본적인 정보나 주고가면 이해나하겠다. 싣고온 사람에 대한 파악도 전혀 하지 않고서 사람만 그냥 두고 가버리면, 우리는 진료하는 의료진이 아닌 형사가 되어서 환자의 개인정보부터 추적해야한다. 미칠 일이다.
그래도 시민의 지팡이 노릇을 하는 119 대원들의 노고에 늘 감사하다. 빠른 이송을 자랑하는119덕에 목숨을 건지는 환자들도 있다. 그들이 있기에 응급 상황을 마주한 시민들이 빠른 시간내에 응급처치를 받고 병원에 이송될 수 있다. 다만 그들이 한가지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은, 병원은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곳이지 위탁소나 용역업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집을 잃어버린 환자나 술을 많이 마신 환자의 급한 혹은 만성적인 치료까지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신발도 없이 혹은 속옷바람으로 싣고온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그들이 진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속옷바람으로 혹은 신발도 없이 가는 상황은 없어야하지 않겠는가. 얼마전 한 환자를 그렇게 싣고와서 놓고는 쌩하니 가버리는 그들을 보면서, 무척이나 화가 났었다.
더불어 환자같아 보인다고 무조건 병원으로 싣고오기보다는 그 사람이 해당병원에 이송되면 적합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가와 더불어 환자의 기본적인 개인정보 및 상황에 대한 파악도 어느정도는 된 상태에서 병원으로 이송해왔으면 좋겠다. 병원에서 아무말 하지않고 누워있는 환자를 보면,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거나, 아픈데 전혀없는데 병원으로 왜 싣고 왔냐고 말하는 환자들 보면 정말 막막해지니 말이다.
# by | 2009/06/14 09:48 | 인턴일기 | 트랙백(1) | 핑백(1) | 덧글(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아. 이 얼마만의 억류기 포스팅인가(..)
119Polycle님 이글루에서 트랙백 합니다.참. 두고두고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또 현장에 계신 분에 의해서 제기된 것 같습니다. 1주일만 구급을 하더라도 이런 문제점은 누구나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어찌보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관련 포스팅도 소방서에 억류되어 있는 동안 간간히 했던 것 같네요.이런거라거나.이런거. 이 쪽은 역시 병원에 근무하시는 Edith님의 포스팅에서 트랙백 한 것이네요. 이 글이 현장에 저도 있......more
... 한 소년과 아버지 [150]2009/06/17 뿌리 뽑아야 할 나이롱 환자 [47] *2009/06/15 D.O.A [20]2009/06/14 119 [7]2009/06/12 최악의 자살수단, 농약음독 [35]2009/06/09 최악의 임산부 [16]2009/06/08 환자보다 아픈 의 ... more
정작 환자는 병원 가서, '의사가 휴가갔어요나', '다른 병원 가세요.'를 듣는 지라...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받아주는 병원 리스트를 가지고 있어야죠. 사실, 병원, 119, 환자 다 불만일 수 밖에 없는 구조일뿐.
아 안타까운 일일 뿐입니다. ㄷㄷ
블랙리스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급대는 관할 구역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심하지요. 제가 군생활 26개월 하면서 그 중에 8개월 좀 넘는 기간동안 구급을 탔습니다. (나머지는 화재 출동 보조랑 어린이 안전교육) 맨 위에 말씀드린 알코올 중독 환자는 다섯번 출동했는데, 그 중에 두번은 경찰 보조까지 받아서 연행하다시피 해서 알콜 중독 치료 전문병원에 실어다 주었고요, 아프지도 않으면서 복통이라고 난동부리는 노숙자는 네번 병원 데려다 주었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심심하니까 몸 조금 안 좋으면 괜히 구급대 불러서 이송하는데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보훈병원 데려다 달라고 떼써서 그 동안 구급 경방이랑 수다떠는 걸 낙으로 아시는 할머니도 있습니다. 유흥가에서 주기적으로 술취해서 난동부리는 싸움 벌이는 사람들이요? 한두명이 아니라 얼굴도 기억 잘 안납니다. 제가 있을 때 24시간 교대제였으니 산술적으로 저 분들은 그 두배 정도 신고를 넣었다는 이야기겠죠.
개인정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겠지만, 119도 이송환자의 기본적인 개인정보와 이송중 파악한 병력, 현재 증상등 받아서 사본은 병원에 인계해주고, 원본은 소방서 내부 통계 작성에 이용합니다. 가끔 경찰에 연행된 것도 아니면서 묵비권(!)을 행사하는 환자나 보호자, 길에서 쓰러져 있는 심신불상자들은 저희도 난감합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 핸드폰 주소록을 뒤져보거나 지갑 내부를 뒤져보는 일도 없지않아 있습니다. 그래도 뭐 도통 파악이 되어야지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이송 안 할수도 없고(이송 거부는 말도 안되는 일이고, 또 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할까요), 또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으니 적당히 작은 병원에 이송하고 끝낼 수도 없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큰 병원 응급실에 이송할수밖에 없습니다.
경험하고 계시는 모든 문제들은, 사실 119에서도 똑같이 경험하는 문제들입니다. 제가 1년도 안되는 기간동안, 군생활 하면서 직접 겪은 문제들이 이 정도인데, 이걸 직업으로 삼고 계시는 분들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일까는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말씀하시는 문제들의 primary cause는 사실 119도, 구조도 아닌 저 환자들에게 있습니다. 아무리 제도가 잘 되어도 저런 환자들은 발생하고, 사실 저런 환자들은 누구에게나 골칫거리라, 떠맡는 입장에서는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19는 그저 저 환자들이 병원까지 오는데 이용하는 수단일 뿐이고요. 구조의 문제쪽으로 넘어가자면, 사실 이런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고자 한다면, 병원과 119간에 조금 더 긴밀한 연락체계가 구축되거나 정보 공유가 되어야할텐데, 이건 사실 소위 말하는 윗대가리들이 게을러서 그런 거라 말이죠. 조직 내부의 말단에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외부의 조금 더 많은 분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수정 압력을 행사해 달라고 말씀드릴 뿐.
마냥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시비만 거는 모양새가 된 것 같아 죄송합니다. 새벽에 갑자기 발생한 환자 이송했을 때, 밤낮없이 돌아가고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을 보면서 그나마 새우잠이라도 잘 수 있는 119는 나은 편이 아닐까 생각도 했고, 또 그렇게 혹사하시는 의사와 간호사 분들께 고마움도 느꼈습니다. 사실 힘든 환자 인계 하면서 그래도 우리는 그냥 떠넘기면 일단 일 끝이니까 하는 생각을 하고, 또 경방 분들과 그런 이야기를 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겪고 계시는 많은 어려움들은 사실 119들도 똑같이 난감해하는 것들이고, 특히 원인이 119 대원 분들께 있지 않은 것인데 그걸 119 대원이 대해서 blame 하시면 안되지 않을까 싶어서 좀 길게 적습니다.
대체복무랍시고 소방서에서 군생활 하면서 어이 없는 꼴도 많이 보았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부조리도 수도 없이 보았고, 때로 어이없는 일처리에 질려서 제대하면서는 "내가 이따위 조직 앞으로 아는 체는 하나 봐라" 라며 홀가분하게 나왔지만, 그래도 2년 넘는 세월동안 보고 들은게 그쪽이다보니 자연스럽게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눈이, 귀가 그쪽으로 쏠리게 되었습니다. 제 짧은 소견이야 당연히 119 구급대 쪽에 편향되어 있겠지만, 그래도 참고하시고 조금이라도 마음을 풀어주셨으면 해서 쓸데없이 길게 적어봅니다.
인력 보충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119, 보건소...등등..
좀 더 많고 인력보충하고 교육도 그렇고...
참 많은데..
이런 쪽으로는 너무 간과하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이 커요..
그저 느는 것은 한숨뿐이라는게 서글퍼 지네요..
힘드시고 피곤하시고 짜증도 많이 나시겠지만..
힘내세요.
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