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25일
말라붙은 짜장면의 행복
주말 입원 환자도 많았고, 오프를 다녀오는 사이 할 일도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하루 웬 종일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열심히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오전 7시 50분부터 시작된 회진을 시작으로 9시 반부터는 퇴원차트 정리, 오더와 컨설트를 내고나니 금새 11시 반이 되었다. 마침 아침도 거른터라 출출하던 찰나, 인턴 동료 형님과 함께 짜장면을 시켜먹기로 결의를 했다.
늘상 중국집에 배달요리를 주문할 때마다 짜장면보다는 볶음밥을 선호했던 나였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유난히 귓가에 맴도는 짜장신의 유혹때문에 과감히 짜장면을 먹기로 결단을 내렸다. 평소 짜장만 시켜먹던 동료 형은 예상과는 다르게 볶음밥을 주문했다. 이 선택이 잠시 뒤, 우리 두사람의 희비를 어떻게 엇갈리게 만들지 알지 못한채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배고파송'을 부르며 간절히 두손모아 음식을 기다렸다.
주문 2분뒤, 과장님께 급한 연락이 왔다. 오전에 취소되었던 tapping를 죽어도 지금해야겠으니 지금 당장 병동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주말 오프동안 간만에 만난 동기들과 무리한 술자리를 가졌고 일요일 새벽 ER 콜을 네번이나 받았기에 월요일 오전에는 회진 끝나면 무슨 일이 생기든 반드시 휴식을 가질거라 마음 속으로 그렇게 다짐했건만, 나의 당찬 그 바램은 과장님의 tapping 선언으로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오전중에 tapping이 예정되어 있던 그 환자 부모를 조금 꼬드겨서 일부로 저녁에 하게끔 꼼수도 썼지만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tapping을 마치고 병동에서 차트 내려야 하니 퇴원 정리 좀 빨리해달라는 부탁에 그 일마저 처리하고 나니 시간은 이미 오후 1시를 넘어섰고 쓸쓸히 계단을 통해 숙소로 향하던 찰나 삽십만년전에 시켰던 짜장면 생각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그 즉시 신발에 터보엔진을 장착하고 숙소로 칼루이스보다 빠른 속도로 뛰어갔다. 하지만 이미 짜장면은. 이미 내 짜장면은. 이미 사랑스러운 그 녀석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짜장면에게 CPR이라도 하고 싶었다. 이미 불어터져 눌러붙어버린 면발과 차갑게 식어버린 짜장. 하필이면 동료 인턴 형이 간짜장을 시킨 탓에 짜장과 면은 분리되어 왔고, 그렇게 그 둘은 영원히 함께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정말 이 형님은 눈치 꽝이다. 하필이면 평소 안시키던 간짜장을 시키다니,) 젓가락으로 면을 콕 찝어보니 꽤나 깊숙히 박혔고, 맛이나 보자는 생각으로 면을 들어올린 순간 거대한 밀가루 덩이가 그릇 위로 떠올랐다. 이것은 TV 의학 드라마에서나 보던 말라붙은 짜장면, 그 자체였다. 순간, 감동과 번뇌가 교차했다. 하지만 의사로써 말라붙은 짜장면을 경험해보았다는 짜릿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점심은 어떻게 하지, 젠장'의 짜증이 밀려왔다.
그래도 이대로 점심마저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동료와 10분 토론 끝에 그 말라붙은 면과 식어버린 짜장을 입에 넣어보기로 했다. 면을 한입 베어먹고 짜장을 한 입 마시고 다시 면를 베어먹고 짜장을 먹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렇게 10여차례 엽기적인 섭식을 끝내고서야 한 그릇의 짜장면을 모두 비울 수 있었다. 입에는 덕지덕지 짜장 범벅이 되고 말라붙은 면과 짜장 탓에 구강부터 식도까지 모조리 말라붙어 옆에 있던 유통기한과 성분을 알 수 없던 물과 비슷한 액체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도 맛은 좋았다. 배가 고팠던 탓이었던걸까.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었고 회식자리에서 먹는 고급 일식요리나 양식 요리만큼 맛있는 한끼 식사였다. 너무 급하게 먹은 탓인지 체끼가 이직까지 남아있지만.
짜장면을 먹고 나서 다시 중환자실로 향했다. 오늘도 10여차례 시도해도 들어가지 않는 L-tube 탓에 땀을 범벅으로 흘리며 고생하고 있지만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는 짜장면을 먹은 탓인지 포만감을 동반한 행복감에 평소같이 짜증나지도 않는다. 비록 다른 이들에겐 말라붙은 맛없는 짜장면 한 그릇일지 모르겠지만 빠쁘게 일한 뒤 먹었던 나에겐 아마도 생애 최고의 짜장면이 아니었을까.
늘상 중국집에 배달요리를 주문할 때마다 짜장면보다는 볶음밥을 선호했던 나였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유난히 귓가에 맴도는 짜장신의 유혹때문에 과감히 짜장면을 먹기로 결단을 내렸다. 평소 짜장만 시켜먹던 동료 형은 예상과는 다르게 볶음밥을 주문했다. 이 선택이 잠시 뒤, 우리 두사람의 희비를 어떻게 엇갈리게 만들지 알지 못한채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배고파송'을 부르며 간절히 두손모아 음식을 기다렸다.
주문 2분뒤, 과장님께 급한 연락이 왔다. 오전에 취소되었던 tapping를 죽어도 지금해야겠으니 지금 당장 병동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주말 오프동안 간만에 만난 동기들과 무리한 술자리를 가졌고 일요일 새벽 ER 콜을 네번이나 받았기에 월요일 오전에는 회진 끝나면 무슨 일이 생기든 반드시 휴식을 가질거라 마음 속으로 그렇게 다짐했건만, 나의 당찬 그 바램은 과장님의 tapping 선언으로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오전중에 tapping이 예정되어 있던 그 환자 부모를 조금 꼬드겨서 일부로 저녁에 하게끔 꼼수도 썼지만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tapping을 마치고 병동에서 차트 내려야 하니 퇴원 정리 좀 빨리해달라는 부탁에 그 일마저 처리하고 나니 시간은 이미 오후 1시를 넘어섰고 쓸쓸히 계단을 통해 숙소로 향하던 찰나 삽십만년전에 시켰던 짜장면 생각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그 즉시 신발에 터보엔진을 장착하고 숙소로 칼루이스보다 빠른 속도로 뛰어갔다. 하지만 이미 짜장면은. 이미 내 짜장면은. 이미 사랑스러운 그 녀석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짜장면에게 CPR이라도 하고 싶었다. 이미 불어터져 눌러붙어버린 면발과 차갑게 식어버린 짜장. 하필이면 동료 인턴 형이 간짜장을 시킨 탓에 짜장과 면은 분리되어 왔고, 그렇게 그 둘은 영원히 함께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정말 이 형님은 눈치 꽝이다. 하필이면 평소 안시키던 간짜장을 시키다니,) 젓가락으로 면을 콕 찝어보니 꽤나 깊숙히 박혔고, 맛이나 보자는 생각으로 면을 들어올린 순간 거대한 밀가루 덩이가 그릇 위로 떠올랐다. 이것은 TV 의학 드라마에서나 보던 말라붙은 짜장면, 그 자체였다. 순간, 감동과 번뇌가 교차했다. 하지만 의사로써 말라붙은 짜장면을 경험해보았다는 짜릿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점심은 어떻게 하지, 젠장'의 짜증이 밀려왔다.
그래도 이대로 점심마저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동료와 10분 토론 끝에 그 말라붙은 면과 식어버린 짜장을 입에 넣어보기로 했다. 면을 한입 베어먹고 짜장을 한 입 마시고 다시 면를 베어먹고 짜장을 먹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렇게 10여차례 엽기적인 섭식을 끝내고서야 한 그릇의 짜장면을 모두 비울 수 있었다. 입에는 덕지덕지 짜장 범벅이 되고 말라붙은 면과 짜장 탓에 구강부터 식도까지 모조리 말라붙어 옆에 있던 유통기한과 성분을 알 수 없던 물과 비슷한 액체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도 맛은 좋았다. 배가 고팠던 탓이었던걸까.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었고 회식자리에서 먹는 고급 일식요리나 양식 요리만큼 맛있는 한끼 식사였다. 너무 급하게 먹은 탓인지 체끼가 이직까지 남아있지만.
짜장면을 먹고 나서 다시 중환자실로 향했다. 오늘도 10여차례 시도해도 들어가지 않는 L-tube 탓에 땀을 범벅으로 흘리며 고생하고 있지만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는 짜장면을 먹은 탓인지 포만감을 동반한 행복감에 평소같이 짜증나지도 않는다. 비록 다른 이들에겐 말라붙은 맛없는 짜장면 한 그릇일지 모르겠지만 빠쁘게 일한 뒤 먹었던 나에겐 아마도 생애 최고의 짜장면이 아니었을까.
# by | 2009/05/25 17:20 | 일기 | 트랙백 | 덧글(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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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반 진심 반 훼이크고, 으앜ㅋ저런 짜장면 볼때마다 제 마음이 아파요 ㅠㅠ
앞으로 천국의 10개월이 지난 후 지옥의 4년이 웰컴 투 헬~~~로 시작되시겠군요.
4년차 초까지는 짜장 또는 짬뽕을 시킬때 면보다는 짜장밥 또는 짬뽕밥이 진리라는 걸 깨달아 가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의국 가까이 있는 전자렌지의 위치도...
건강하십시오. 인턴은 체력=실력입니다.
사진으로만보면
아주 먹음직스러워보이는 짜장면인데...
글을읽어보니 한낫밀가루덩이에 불과하지않네요ㅋㅋ
1시가되도록 한끼도 못드시고 뛰어다니시다니
정말 정신력으로 버텨야만살아갈수있는 세계ㅡㅡ
지금은 속 좀괜찮으세요?
안그래도 식어버린 짜장면을 급하게드셨다니ㅜㅜ
생애최고의 짜장면..
은근히 먹어보고싶네요ㅋㅋㅋ
저녁은 어떻게 드셨을지..^^;
배고파송 너무웃겼어요 도대체 어떤노래죠?^^
짜장면에게 CPR...ㅋㅋㅋㅋㅋㅋㅋ
Polycle님의 언제봐도 탁월한 언어구사능력에
박수를보냅니다^^*_
아, 인턴동료분의 굿초이스볶음밥선택에두요^^
자장면에게 CPR은 오늘의 베스트!!!!!
잘 챙겨드셔야 할텐데..
많이 부실하게 느껴지네요.
체기는 좀 어떠신지...
컵라면 물 부어놨다가 콜 받아서 갔다 오면...
정말 슬퍼지죠 ㅠㅠㅠㅠ
뭐 일전의 폴리클님 포스팅들도 그렇지만 지식을 체계화해서 정리하는데 일가견이 있으신 분이니... 지금 고생하시는거 조금만 정리해서 체화하시면 최고의 의사가 되실 수 있을겁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힘내세요~ 생각같아서는 영양제라도 챙겨드리고 싶다능 ㅠㅠ
식사를 천천히 할 수 없으시니 위장이 탈나기 쉬울텐데 걱정 많이 됩니다요 ㅠㅠ
치프가 되시는 그 날까지! 위장도 폴리클 님도 힘내셔야 합니다욧.
"이게 별미지... 맛있지?... 죽은 사람은 못 먹는거야... 감사하게 먹어"
어찌된게 의사가 더 빨리 건강을 잃겠습니다.ㅜㅜ
그래도 시간 짬짬이 날때 이것저것 많이 챙겨드세요 !!
담부터는 밥종류를 시키세요 짜장밥.짬뽕밥 !
시간이 지나 먹어도 누룽지 긁어먹는 재미가 있어요.ㅎㅎ
짜장이 먹고싶은 주말엔(전 왠지 주말에 그리 짜장이 먹고 싶더라구요)그나마 쟁반짜장이 진리!
이미 비벼져 있기 때문에 물을 살살 뿌려 가며 풀면 그나마 풀어진다능...
지금 생각하니 그 시절이 아득하네요
인턴 힘내십시오!!!
힘든 인턴 생활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