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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철과 불친절

 
 어제 오늘은 트라우마 환자들이 응급실이 미어 터질 정도로 많이 왔다. 사진 오더 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랩, 처방까지 환자와 길어야 1분 안팎의 시간만 대화를 나누었다. 미친듯이 드레싱하고 이학적 감사하고 처방내고 노티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고 근무한지 세시간즈음 지났을거라 생각하고 시계를 봤더니 이게 웬걸 아침 7시였다. 이걸 행복하다 말해야 할지 슬프다 해야할지 난감할 뿐이다. 

 Human trouble, 즉 누군가와 다툼으로 응급실에 오는 환자의 초진은 무척이나 힘들다. 칼에 찔리는 등의 심한 부상을 입은 환자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이 sprain이나 contusion 등의 보존적 치료로도 충분히 관리되는 상처, 달리 말하면 시간을 다투는 응급처치가 필요한 환자는 드문 편이다. Human trouble의 경우 상해로 처리되기에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검사는 비급여로 진행되기에 환자 본인의 부담금 비율이 높은 편이며, 이런 이유로 치료과정 중에 도망가는 환자들이 더러 있기에 진료 전 원무과에서 수납을 먼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수납이 제때 이루어 지지 않아서 환자의 진단 및 치료가 지연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흥분한 이들은 더러 '병원은 돈만 쳐먹고 환자는 보지도 않는다' 혹은 '의사들은 역시 돈만 아는구나'라는 욕설이 듬뿍담긴 비난세례 퍼붓기도 한다. 하지만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응급을 요하는 상황이라면 수납이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의료진이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시의적절한 응급처치를 제공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환자나 보호자들의 위와같은 표현은 잘못된 것이며, 괜시리 의사나 간호사의 빈정만 상하게 한다. Human trouble로 응급실을 내원하는 사람들은 평소 성격이 거칠거나 술을 마셨거나 폭력적인 성격의 소유자 등 aggressive하고 irritability한 경우가 많기에 꼭 한번 소란을 일으킨다. 한번만 그러면 다행이겠지만 밤새 소리지르고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피해주는 양아치들도 많기에 나이트 근무가 더 괴롭지 않나 싶다. 환자 본인이나 보하자가 그런 행동을 취할수록 진단이나 치료가 더 늦어지고 의사 역시 불친절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왜 모를까.

 이틀간 응급실에 환자가 홍수처럼 밀려왔다. 대부분 트라우마 환자였으며 오토바이 교통사고가 10여건이 넘게 발생했다. 16살인 중학생은 길가에 있던 사람을 오토바이로 치고 뺑소니치다 경찰에 붙들려 응급실까지 오게되었다. 환자 보호자와 이것저것 이야기하더니 상호합의하에 문제를 종결짓기로 하고 사고는 보험처리를 하기로 합의를 본 보양이었다. 경찰이 나가자마자 사고 보상 문제로 이야기가 오고갔는데, 상황을 보아하니 피해자들이 가해자가에 약간 무리(?)가 있는 요구를 하는 모양새였다. 중학생 남자아이 하나를 둘러싸고 20대 초반의 남성 4명이 고래고래 욕설을 퍼부었다. 이내 중학생 측의 사람들도 응급실로 찾아왔고 몇가지 이야기를 나눈 후, 그 남학생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응급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10여분 뒤, 거짓말처럼 그 남학생이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며 응급실에 실려왔다. 머리에 상처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으며 오른쪽 고관절 이하 부위로 압통을 호소했다. 초진이 끝나고 중학생 측 사람들이 다가와 뭐라 속삭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뒤, 두번째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되어버린 중학생과 가해자로 보이는 40대 남성이 보상문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하룻저녁 사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버린 한 중학생의 마지막 그 미소는 그 후로 한참동안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지하 장례식장에서 중학생쯤 되어보이는 학생 둘이 새벽 3시경 급하게 응급실로 뛰어들어왔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호흡이 정지되었다며 내 손을 붙잡고 장례식장으로 와달라 했다. 일단은 멀지않은 곳에 장례식장에 있었고 마침 신환도 없는터라 아이들을 따라 함께 그곳으로 달려갔다. 도착해서 할아버지 상태를 보니 학생들 말대로 호흡이 멈춰 있었다. 바로 기도를 확보하고 경동맥을 촉지해보았다. 다행히 펄스는 뛰고 있었으며 이내 할아버지의 멘탈이 돌아왔다. 할아버지를 응급실에 모시도록 보호자들께 당부했고, 이후 체크한 BST에서 당이 450으로 체크되었다. 원래 당뇨가 있던 분이었는데 부인의 죽음으로 쇼크를 받은데다 과음까지한 탓에 당이 갑작스레 상승한 것으로 보였다. N/S를 달고 인슐린을 8unit 투여했으며 이후 시행한 ABGa와 Lab상에서 특이소견 없었고 환자 상태도 호전되어 아침 10시경 퇴원시켰다. 할아버지께는 부인과 사별하신 아픔은 그 어떠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않을 정도로 슬프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건강까지 해쳐가면서 슬퍼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할머니도 원치않을꺼라는 말과 함께 남은 이틀간의 장례식 동안 '금주'하실 것을 당부드렸다. 언젠간 나도 결혼을 하고 배우자를 만나서 평생을 행복하게 살다가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면, 꼭 아내보다 먼저 세상을 뜨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고 그 이후 고단한 삶의 무게를 이겨내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 아닐까, 어쩌면 이기적인 욕심일런지 모르겠지만. 퇴원하는 할아버지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며 생각에 잠겨본다.

by Polycle | 2009/03/15 22:30 | 일기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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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ainblue77 at 2009/03/15 23:05
교통사고......요즘은 참 무서운 것 같아요.
몇번 났었는데...깁스도 하고...CT도 찍어보기도 하고...
다행이 그정도로 끝나서 다행인 것 같아요.

병원에 갔을 때....참 기분이 나빴던 적도 있고...고마웠던 적도 있고..
그런데 기분 나빴던 적이 참 오래가는 것 같아요.
병원에 예약을 하고 갔는데 3시간 가까이 기다렸는데 계속 밀려서 진료도 안되고..
점심시간에 걸려서...치료를 못받았어요.
점심시간 끝나고 그러니까 한 4시간 정도 기다렸죠..
그래서 좀 따지니 다른병원에 가라고...하시는데...울컥하고 화도 나고...왜 이병원에 왔을까...하는 후회가 물씬 밀려와서 기분이 나빴던 기억이 나요.
나중에 보니 간호사선생님이 제 순서를 자꾸 밀어 버려서 그렇게 기다려야 했던 거였는데..
아픈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기다림이 참 힘든데..
그래서 뭐 나중에서 먼저 사과했는데..그 의사선생님은 사과 받고만 마시더라구요.
그냥 조금의 덧붙임만 해줘도 이렇게 기분 나쁘지 않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어요.

Polycle님께서는 좋은 의사선생님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말한마디에도 아다르고 어다르다는 말 처럼...힘드시더라도..따스하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다른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라는 말씀만은 정말 안하시는 의사선생님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할아버지를 보니..마음이 찡해요.
홀로남은 사람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루하루가 고단의 연속이시겠어요.
아자아자`!!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3/16 02:51
점점 입가에서 친절함이 멀어져 가는 제 자신이 미워지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한 소아 환아 부모님이 빨리 안봐준다며 난리를 피우길래 한 소리 했지요. 초진 환자들은 밀려있지 전부 headache, dizziness 환자들이라 stroke R/O 때문에 면담 시간 길어지지, 이틀간 새벽 3~6시 까지 환자 러쉬가 끊이질 않지... HS purpura 과거력이 있던 환아였는데 당장 눈에 띄는 급한문제도 없었고 순서도 더 뒤였는데 고래고래 소리지르길래 처음으로 화 한번 냈지요. 화내고 어찌나 후회가 되던지.
Commented by alice at 2009/03/15 23:17
그래도 파이팅인겁니다 'ㅂ'/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3/16 02:52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아나로즈 at 2009/03/16 00:35
저희도 주말에 소아와 트라우마가 몰아닥쳤죠...;;
물론 제가 맡은 신환도 만만치 않았지만; 화이트데이다 주말이다 이런 건 인턴에겐 무용지물인겁니다.ㅋ
폴리클님은 점점 전천후 슈퍼인턴으로 성장하시는 것 같아요~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3/16 02:52
응급실 근무셨죠? ^^ 화이트데이때 사탕 몇개 사서 간호사들에게 돌렸더니 무척이나 사랑 받았답니다. 초턴에게는 그저 굽신굽신뿐. 슈퍼인턴은 요원하지요.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9/03/16 11:05
요즘 TA가 무지 많아요. 그리고 들어오면 다들 중상이고...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3/19 11:48
단체만 아니면 언제든지;;; 단체TA는 끔찍합니다. 특히 별거 없을때 더더욱;;;
Commented at 2009/03/16 19:2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3/19 11:49
그렇죠. 비급여 생각하랴 진단서 생각하랴. 점점 복잡해져버리고... 휴,
Commented at 2009/03/17 00:3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3/19 11:47
비공개님도 잘 지내시죠? 점점 전 다크써클이 진해지고 있답니다. 하하.
Commented by seii at 2009/03/20 01:01
ㅜ_ㅜ 전 하루가 어찌나 빨리 가는지 정신이 없네요. 물론 Polycle님 앞에서 하루가 빠르다고 말할 입장이 아니지만요. ^^ 아이코, 비타민제라도 틈나실때마다 챙겨드셔야겠어요. 요즘 주위에 다들 감기 때문에 골골 거리던데, Polycle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 히히
Commented by gg at 2009/03/18 22:53
제글은 지우셨네요?
리플들이 다들 좋은글들만 있길래 놀랐는데...
이유가 있었군요^^
듣기 싫은말도 귀담아 들어야할때도 있는법이랍니다
특히 병원생활하는 분이라면...더더욱 인턴이라면 ㅋ
Commented by Polycle at 2009/03/19 11:47
죄송합니다만 덧글은 성인광고 스팸을 제외하고는 지우지 않습니다.
Commented by BLUEBIRD at 2009/03/22 05:16
눈팅만 하다가... 이제야 공식적으로 방문합니다 ^^ (블로그는 초보라서) 구독 해도 되는 거지요..?
'접수부터...' 하라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요~!
사실 응급실에 갈때마다 접수부터 하고 오라는 말에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해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돈에 대한 개념이 미미해서...
그러나 (태클은 아니에요) '접수부터...'는 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응급실 측면에서 보면 도망가는 환자때문에 어쩔 수 없는 조치지만... 10명이면 10명다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또 아파서 온건데 죽을 경우가 아니더라도 고통이 있는 상태에서는 '접수부터...'라는 말에 쉽게 화가 나거나 씁쓸해질 수 있더라구요... 의사 입장에서 보면 많은 환자들을 처치해야하므로 적절히 분배해서 하겠지만, 환자입장에서는 불만이 쌓이죠.
뭐가 정답은 없습니다만... 앞으로는 이러한 이유로 병원이든 환자든 서로에게 실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폴리클님 힘드실테지만 화이팅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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