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3일
음악에 있어서 우열은 존재할까?

예술 작품들 사이의, 따라서 예술가들 사이의, 따라서 대중예술가들과 순수예술가들 사이의 서열은 그 서열나누기의 객관적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사회적으로 확립된 사실이다. 나는 기존의 서열나누기에 객관적 근거가 있는지를 의심할 수 있고 나만의 서열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예술을 즐기는데 '서열'이라는 낱말은 아무 소용가치도 없어라고 믿을 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주어져 있는 그 서열이 교과과정과 국가의 문화정책과 사람들의 통념과 계층의 문화적 구분에 미치는 영향을 막아낼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나는 가능하면 그 서열에 맞추어 나와 나의 자녀들의 예술교양을 형성하는 것이 나와 나의 자녀들의 사회적 위신을 높여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그런 사회적 위신에 관심없어'라면 그것은 대체로 내가 그런 위신을 갖추는 것이 요구될 만한 계층이 아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을 자신만의 판단기준으로 줄세우기를 하려는 무모한 시도'는 실정에 맞지 않는 말이다. 그 판단기준을 누군가가 얼마나 반성적으로 자기화했느냐에 관계없이 그 판단기준은 사회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분명 형식적으로 예술을 권위있게 논할 자격을 인정받은 이들 사이에서의 결코 자의적이지많은 절차, 특히 오랜 세월 동안 이론비평및 실제비평을 거쳐 수립된 기준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비틀즈의 음악이 바흐 음악만큼 예술적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음악 전문가들 - 일반 대중의 의견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예술작품을 평가하는 문제에서 그 의견은 어차피 계산되지 않으닌까. 시장에서 계산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 은 비틀즈가 대학 강의실에 들어오기 시작한 현재까지도 여전히 극극소수이며 윤도현의 음악이 바흐의 음악만큼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라면 전무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바흐>비틀즈>윤도현이 아니라 예술작품들의 질에 위계를 매기는 것이 가능하고 가능해야 한다는 것, 비평은 위계를 매기는 것이 가능하고 가능해야 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는 것, 비평은 단순한 말싸움이나 쪽수 싸움이 아니라 설득을 위한 논증적 계기를 갖고 있다는 것, 어떤 예술작품들의 남다른 훌륭함이나 탁월함에 대해 아주 많은 수의 비평가들 사이에 상당한 합의가 존재한다는 것, 그렇기에 예술작품의 질의 평가에는 자격이 요구된다. 물론 나의 경우도 분명 느낌은 바흐>비틀즈>윤도현이지만 그 느낌의 올바름을 비평적으로 정당화할 능력이 없다. 아마 바흐의 음악이 비틀즈나 윤도현의 음악보다 더 풍부하고 더 다양하고 더 극적이고 더 경건하게 느껴졌고 더 신이 난다는 주관적 선호 표현 이상의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예술에서 더 유의미한 질적 차이는 장르들 사이나 순수예술과 대중예술 사이보다는 개별 예술작품들 사이에 있다. 더 여러가지 면에서 비틀즈의 노래가 슈만의 가곡보다 훌륭할 수 있고 비틀즈의 노래들보다는 롤링 스톤즈의 노래들이 더 여러가지 면에서 더 훌륭할 수 있다. 아울러 예술작품의 질적 차이를 재는 기준들이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정당화되거나 도전받고 모든 기준들이 동일하게 중요하다는 함축없이 기준들이 다양화되어야 한다. 즉 정전(Canon)은 재구성에 열려있어야 하고 무시되고 주변화된 작품들이 각광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야 한다.
나는 어떤 예술작품의 초문화적 내지 초역사적인 절대불변의 가치라는 개념을 부정한다. 바흐나 베토벤이 우리 근대인들에게는 가장 위대한 음악가들 가운데 속할 수 있다고 해서 그들이 과거나 현재의 전근대적인 삶을 사는 이들에게까지 위대한 음악가로 여겨져야 할 필연성은 없다. 예술은 생활감정을 재료로 하고 있으므로 생활감정이 아예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 한 문화권의 예술적 가치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넌센스다. 우리 근대인이 바흐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며 베토벤의 영웅적이고 극적인 음악도 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근대가 바흐의 근대로부터 그만큼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예술적 가치의 기준은 변화해가는 사회역사적 맥락 속에서만 구성될 수 있으며 그 변화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3.모든 예술 장르에 대해 다 취향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은 누구에게도 해당 사항이 없는 이상일 것이다. 클래시컬 음악을 바하까지만 듣고 그것도 모자라 록이나 재즈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명작 소설은 끼고 살아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왜 훌륭한지를 못느끼거나 피카소가 왜 위대한지 못느끼는 이들도 있다. 음악은 엄청 폭넓고 깊게 들으면서도 미술이나 문학에는 꽝인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한 분야에서만이라도 예술 취향이 넓어지고 깊어지기가 쉽지 않다. 자기가 선택한 것이 아닌 무교양한 생활환경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든 사정 때문, 대중예술에 휩쓸리는 지배적 분위기 때문에 등등 이유는 많다. 전반적인 사정이 이러니 그저 조금 더 좋아하는 장르쪽에서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을가 생각해본다.
# by | 2008/10/23 10:31 | 생각 | 트랙백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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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우열이 존재했다.
뭐, 제 가장 기본적인 생각은 어차피 대중성과 뗄 수 없다는 겁니다. 서양 음악은 동양 음악보다 훌륭한가? 라고 물었을 때, 우린 뭐라고 해야 할까요? '아악'과 '송악'이 클래식보다 못한 건 뭘까요? 전 대중성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문화 전반적으로 많은 부분이 서양화 된 세계를 삽니다. 동양적인 음악에 흥미를 잃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요. 하지만 이를 생각할 때, 결국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그 기준에는 대중성의 영향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막말로 아무도 클래식을 사랑하지 않고 그저 평론가 사이에서만 야기되는 음악이 클래식이라면 그게 과연 뛰어난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단지 지금은 서양 음악이, 클래식이 그 대중성의 지지를 받아 그 자리에 있을 뿐. 저라면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고, 바르게 알고, 그 중에서 택하도록 하는 것을 이상으로 두겠습니다만.
예술을 받아 들이는 사람이 그걸 마음에 들면 높게 쳐주고 그렇지 않으면 내려가는 거니까요.
뭐.. 좀 단적으로 예를 들면 누군가가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의 'Satsugai!'라는 곡은 '가사가 저질이라 최 하위의 노래다-' 라고 하면 저는 '강렬한 데스 메탈의 짜릿함과 폭발력은 가히 최고다!'라고 말하듯 받아 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를거라 생각하네요.
아무것도 모르는 일자무식 애송이지만 그냥 저만의 생각으로 뻘글을 올려 봅니다.
적어도 저는 그저 제 귀에 맞고 흥겨운 음악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사회가 지정해주는 서열은 있습니다.
영적예술(음악)
물질예술(회화,조각)
그리고 최근에 분류되는 시간예술(영상)이 있겠죠
권력을 위해서는 물질예술이 우위를 점령하겠죠.
고정된 것이 이용가치가 높으니까요
그래서 절대왕정부터 근대까지 권력이 중앙으로 몰리던 시기에
회화, 조각이 발달하죠.
그리고 요즘처럼 권력의 분배가 요구되는 시점에서는
영적예술이 더 힘을 가지게 되는거죠
고정되지 않은 것은 사고를 애매하게 만들어주니까요
결국 서열이라는건 존재합니다. 다만 사회라는 조직안에서만 서열이 존재합니다.
그것을 초월한 세계에서는 서열이 없지 않을까요?
뭐 음악의 세계만 놓고 봤을때도 해당된다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인류문명이 높음과 낮음이라는 집단생활에서 도출된 서열이라는 관념을 탄생시킨 이후, 그것이 관념으로써는 현존하지만, 내용적으로 실재하는 것인가는 이론이 있다고 봅니다.
서열이란 관념에 대한 믿음만이 그것을 정당화 하고 있다면 위의 음악이든, 예술이든, 다른 식으로 가치의 재 검토가 필요하겠죠. 토대가 없으니까요.
뭐, 이렇게 정색하지 않아도 서열에 상당히 취미를 가지고 있는 인류라는 종이 서열짓는 행위를 포기하지는 않겠지만요.
필연성은 없습니다.
고로
강요해야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해요.
무슨일이든 서열을 세워야만이 훌륭한것은 아니니까요.
뜨끔.
그냥 자기 취향에 맞게 자기만의 순위 매겨놓고 참견하지 맙시다.
내가 미셸 우엘벡을 사르트르보다 높게 친들 취향이 그러하니 어쩌겠어요.
나한테는 사르트르 소설들이 다 병맛인걸.
전 약간 다른 관점에서 보고 싶은게요.
그래도 각 분야별로, '진짜 이것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최고의 명작중 명작이다.'라는것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걸 잣대로 두면서 사람들이 얘기를 하다보니깐 어떻게 서열이 생긴게 아닐까 싶어요.
저같은 경우는 항상 잣대가 바뀌니깐 딱히 서열은 없구요!
노래는 제가 재밌게 듣고 부를수 있는 노래가 1순위 구요.
영화는 잠 안오는 영화라면 무조건 1순위!
이런 식이에요 ㅎㅎ
사회가 매기는 고것들에서 '문제'란게 발생하겠죠. ㅠ ㅅ ㅠ
그런 방식 좋으십니다! 아자!
최소한 그 우열이 실재하는 사물과 같은 형태로 존재하지는 않으니까요.
어쨌든 글의 요지에는 대부분 동의합니다만, 내용 상 논란의 여지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리플들은 꽤나 극단적이군요.
생각보다 위험한 생각인데, 많이 안타깝습니다.
주관적인 입장을 취하면야 당연하게 양분되겠지만요.단지 인식 차이인 것 같습니다.
근데 그 권위라는게 이미 예술을 떠난 문제인데 그 기준을 가지고 다시 예술의 서열을 따져야 한다는게..
기본적으로 예술의 서열같은건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강요되는 순서가 있다는 점은 왠지 알 것 같군요..
그리고 여기에서 개인이 느끼는 우열 같은건 의미없는 것이구요..
어찌보면 무서운 세상입니다. 인간의 감성까지도 내가 아닌 남이 세운 기준에 맞춰야 하거든요 ㄷㄷ;;;
이 서열화란 녀석,
점점 사라질 것 같아요. 정말!
두근두근두근!
아,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군요, 차차 풀어나갈래요. 히~
킥복싱이 태권도보다 강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킥복싱에도 태권도에도 각기 더 강한자가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음악 장르별 우열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좀 망설여집니다만
음악의 수준 자체에 우열은 분명히 있습니다.
굳이 필설로 증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