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18일
포털에서 마주한 인간과 돼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


여러 포털 싸이트에 등장한 돼지들의 아우성은, 심지어 우리 사회가 폭력적인 과거로 부터의 반동으로, 너무 과도하고 불합리한 방향에서 비폭력적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 아니냐는 생각마저 떠오르게 만든다. 육체적 제재의 가능성이 전제된 사회에서 이 정도의 경망한 망발이 장기간 전개되기는 어렵다. 이런 식의 방임적인 언어의 횡포는 물리적인 폭력과 다를 것이 없으며, 그 폭력적 부당성의 문제에 있어서 양자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부분이다.
표면상 거의 기계적인 평등론을 주창하였던 그 어떤 좌파 사회에서도 작금의 우리 사회같은 물리적 평등 상태에 도달한 예가 없었다. 대화란 본래 어느 범주에서 대등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의견을 교류하거나, 아니면 지적 격차가 있더라도 관계에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올바른 관계설정과 예를 전제로 가능한 일이다. 다만 지금 여러 포털 정치관련 게시판에서 전개되는 인간과 돼지들 간의 대화는 그런 기준에서 대화라고 보기가 힘든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지금 돼지를 앞에 두고 설교를 하고 꾸짖는 자신의 모습을 머리에 떠올려야 할 필요가 있다. 저들은 언어적 능력을 통해 짐승의 폭력적 본능을 분출시키는 것이지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다. 제법 세련되고 그럴듯한 언어적 표현을 갖추었어도 그 본질은 더러운 돼지가 꽥꽥거리는 것에 불과하다. 그걸 간파해야 한다.
아씨시의 성인 프란체스코는 자연과의 교호와 대화를 통하여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과학적으로 파악하게 된 자연에는 그처럼 아름답고 배움으로 충만한것이 아닌 아주 잔학하고 어두운 측면도 있다. 그리고 그 같은 자연의 야만스러움과 수성은 자주 인간계에 침투하여 이 같은 양상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돼지를 꾸짖고 가르쳐 깨달음의 길로 접어들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건 정말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 프란체스코 조차 돼지를 그렇게 거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 세상에 경멸받아 마땅한 것은 경멸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고 존경해야 할 것은 경시하고, 경멸해야 할 것은 존중하는 사회는 병들어 미쳐가는 곳이다. 우리는 혹시나 부지불식간 경멸하고 무시해야할 것을 과도하게 상대해주고 존중하는 결과가 아니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저들은 돼지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말하는 휴머니스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에 대한 내 대답은 다음과 같다. 짐승인 돼지는 악해봤자 그 한계가 뻔하다. 그러나 인간이 수성에 지배 당할때 이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은 그 무엇보다도 극악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들은 비록 하찮은 것이지만 아주 구체적인 악들의 모습일 것이라고.
# by | 2008/10/18 19:36 | 생각 | 트랙백(1)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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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wenjun의 생각
인간과 돼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을 읽어보니...돼지만도 못한 생명체가 한글을 사용하는 군요. 역시 한글은 위대합니다....more
중국에서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화이팅!
감히 518을 광주폭동으로 비하하고 ㅡㅡ;;
힘내세요.
진짜 5분 버티면 용자(...)
polycle님 살짝 걱정됩니다. ^^;
주말에 이게 뭔 개소리냐?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지꼴리는대로 삭제하는 씹새끼 주제에~ 지금 누구를 비난하니?
너는 너 오오츠카아이의 똥구멍에 든 똥덩어리보다 못한 새끼란다.
정신차려 이 절라깽깽이 씨발놈아 ㅋㅋㅋㅋㅋㅋ
이제 별 거지 깽꺵이새끼가 주접을 싸고 지랄이로구만 ㅉㅉㅉ
전이쁜 돼지는 귀여운데 못난 돼지는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