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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 끝

 
 어제 NS case 발표를 끝으로 모든 실습일정이 끝났다. 내 마음은 지난 1년간 병원 실습의 아련한 추억들과 함께 끝을 맞이하게된 기쁨, 한편으로는 서운함이 이리저리 뒤섞여 있다. 신장내과를 시작으로 대학병원에 있는 전 과를 한번씩 맛본다는 것, 나름 유쾌한 경험이었다. 얻은 것이 두가지가 있다면, 첫째는 책상 앞에서 배우는 것과 실제 쓰이는 지식에는 조금 차이가 있다는 것. 둘째는 Medicine보다는 Surgery가 적성에 조금 더 근접해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입학하기전에는 소아과가 본2때 배우면서는 내과 쪽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실습을 돌고나니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그토록 살 익는 보비 냄새가 좋았고 흉부외과에서 오픈하트 수술을 위해 가슴을 쩍쩍 가를 때나, 일반외과에서 빤뻬 수술을 위해 배를 가를 때나. 정형외과에서 인공관절 치환을 위해 큰 절개선을 넣을 때마다 가슴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수술방에 들어가 스크럽을 서고 한 땀 한 땀 suture하는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체질인가보다. 이것이 또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본과 2,3학년 시절 8시 반까지 학교에 나가서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 8교시까지 수업을 듣는 일보단, 조금은 일찍 출근(심할땐 새벽 5시 반)하더라도 하루를 자유롭게 운용해 가며 실제로 환자를 만나보고 병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더 즐거웠는지도 모른다. 정말 많은 환자들을 만났고 그들이 앓고 있는 병 이외에도 수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함께 웃기도 울기도 하며 미래 '의사'로서의 나의 자화상을 그려볼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정신과였다. 폐쇄병동에서 수 많은 정신분열증 환자들과 하루 웬종일 함께 갇혀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이전에는 그야말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었다. 정말 많은 걱정과 불안감을 안고 폐쇄 병동에 발을 디딛는 순간,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 이보다 순수하고 이보다 아름다운 공간이 또 어디있을까 생각도 해봤다. (그렇다고 내가 입원해야 할 수준의 상태라는 것은...) 알코올 중독자 아저씨들과 축구를 하고 난 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식걱정, 집안걱정에 지나온 날들을 후회하는 그들의 모습은 내 미래를 설계하는데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아쉬운 점이 한가지 있다면 아직도 정신과 질환들에 대한 큰 틀이 잡혀 있는 것 같지 않아 불안하다. 너무 어렵다. 정신과,

 가장 힘든 순간은 응급의학과였다. 12시간 교대로 한번 실습 때 마다 인계포함 근 2주를 전 학기 - 후 학기 각각 1회씩 소화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말이 12시간이지 이래저래 인계하고 컨퍼런스 참여하고 케이스 발표 준비하면 하루 근무 후에 자는 시간은 5시간을 넘기지 못한다. 주로 하는 일은 EKG 부터 시작해서 sampling, ABGa, 폴리, 드레싱, 최악의 enema 등 수많은 job들과 각 진료과 선생님들 보조 업무, 환자 운반 등의 잡일까지 거진 12시간을 쉬지 못하고 뛰어 다니게 된다. 가운 양쪽 주머니에 EB부터 시작해서 Glove, 가위, 플라스터 심지어는 suture용 실까지 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처음에는 익숙치 못해서 smapling 하는 것부터 ABGa 까지 너무나 두려웠지만 새벽 4시 전체 sample 시간을 두어번 정도 견디고 나니 이젠 익숙해져서 던지면 나오는 경지(?)에 까지 이르렀다. 응급실 근무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역시나 Ence환자의 4시간 간격 enema와 Seizure 환자의 CT 촬영. 이 때만큼은 정말 집에 도망가고 싶어질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많은 술기들을 직접 해보고 배울수 있는 실습이어서 나름 보람찬 실습이었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해 보고 싶은 것도 많았고 알아가고 싶었던 것도 많았지만 현실적 여건의 제약과 날이 갈수록 떨어져 가는 배움에 대한 열정과 의지, 지쳐가는 심신 등으로 인해 해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아쉽기도 하다. 공부했던 질환에 대해 환자 하나하나 맞추어가며 복습해 보고 싶었지만 이도 잘 되지 않았다. 말폴이 되어서는 나태해지기 까지 했다. (물론 촛불 의료봉사 문제도 한 몫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4학년 2학기때라도 그냥 가운입고 모른척 병원가서 환자 파악 해봐야겠다. 언제 또 내가 학생으로서 자유롭게 병원에서 공부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는가.

 이 밖에도 수 많은 과를 실습하며 떠올랐던 생각들, 상념들, 고민들을 그 때마다 블로그에 기재하고 싶었지만 시간 등 여러가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많이 적질 못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데 그 포스팅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며 추억에 빠져본다. 일단은 어제 밤을 샜기 때문에 숙면을 조금 취한 뒤, 이 곳 현장 상황도 여유로워지고 정리가 되면 다시금 써 볼 생각이다. 어쨌든 방학없이 1년 반동안 풀로 달렸던 폴리클 실습이 무사히 끝나서 너무나 좋고 기말고사도 잘 넘겨서 국시를 보는 순간까지 별 탈없이 순행했으면 좋겠다. (내일 저녁 6시 시험인데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컴퓨터 어서 끄고 책이나 봐야겠다.)

by Polycle | 2008/06/28 10:17 | 그냥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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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키치너 at 2008/06/28 10:25
고생하셨어요~, 저도 아직은 서젼은 꿈에도 생각안하고 있는 데, 폴리클을 돈 뒤엔 어떤 마음이 될 지 모르겠네요 ^^::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8/06/28 10:26
"수술방에 들어가 스크럽을 서고 한 땀 한 땀 suture하는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이건 무서운 적성인데요^^. 하기사 저도 실습 시절 첫 번째로 돌았던 게 외과고, 처음 스크럽 서본 수술이 AGC-Total gastrectomy였는데 지금 그거 하고 있으니까요.
Commented by blus at 2008/06/28 10:41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만은 정말 푹 쉬실 수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scully at 2008/06/28 11:46
조급하게 생각하지마세요. 의사라는게 넉넉잡아 10년은 배워야하는 직업인데다가 그담에도 배울건 계속 생겨나니.. ^^ 마지막 실습날 참 여러가지생각이 많이 들죠. 이제 슬슬 연말고사(보시나요? 저희학교저희학년까지는 10월까지 보고 그담에 국시준비했는데..) 준비하시고 또 국시준비하시면 되겠어요. 근데 실습이 일찍 끝나는 편인것 같아요?? 아무튼 그럼 잠시 방학인거죠? 좀 쉬세요. :)

저도 3학년 첫 실습이 소아과였는데 그뒤로 여전히 소아과만 좋아한다는... ㅋ
Commented by 림삼 at 2008/06/28 12:14
이야. 수고하셨어요...^^ 푹쉬시고 내일 저녁 시험 잘 보시길...!
Commented by 샛별 at 2008/06/28 13:09
우왕ㅋ굳ㅋ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1주일간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수업을 째버리고 오늘 오랜만에 푹잤네요
폴리클님, 푹 쉬세요
Commented by 하나씨 at 2008/06/28 17:32
고생하셨습니다.
언젠가 뵐 수 있기를.
Commented by 카루 at 2008/06/28 21:03
수고하셨어요. 이제 국시만 잘 보시면 되는거죠? ㅎㅎ 화이팅입니다.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 되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Commented by 총천연색 at 2008/06/28 23:11
멋진 경험이 일단락 되었군요.
다양한 경험, 부러운 면도 있지만 역시 힘드셨겠습니다.
흐흠, 그럼 이제 폴리클이란 아이디 바꾸시는 건가요? ㅎㅎ;
Commented by 후유소요 at 2008/07/10 01:14
아, 폴리클이란 게.. 세션의 이름이었나 봐요^^ 이번학기 이상심리학을 수강해서 그런지 어쩐지 반가운 마음이 드네요. 저도 친구 중에 정신분열증 경력을 가진 녀석이 있지만, 또 그녀석만큼 친절하고 현명한 녀석도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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