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 로그인


여수, 전주, 광주, 부산

 
 집 비밀번호키를 누르고 침대에 퍽하니 쓰러졌다. 여수-전주-광주 그리고 부산으로 이어지는 전국 촛불집회 순회에 몸도 더이상의 체력은 남아나질 않는 모양이다. 이틀밤 수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문자를 보내온다. 상황이 급박한가보다. 마음만은 서울로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지만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 있었고 서울은 내가 없더라도 뛰어줄 많은 봉사자들이 있지만 지방은 그렇지 않았기에 참고 또 참았다.

 금요일, 잠시 여수를 들러 화물연대 파업 현장 상황을 둘러보고 전주로 향했다. 그동안 조금 아펐다. 지난 몇주간 몸이 견딜수 없을만큼 무리를 한 탓도 있겠지만 목요일 초대된 모임에서 Overheat되어 금요일 내내 병원신세를 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수차례 구토로 인한 약간의 저칼륨혈증이랜다. 마음은 급했지만 일단 몸이 받쳐줘야 한다 생각했기에 실습도 빠지고 하루종일 수액을 맞았다.

 수액을 맞는 도중 온 반가운 소식, 서울 의료지원팀에 요청한 일부 물목이 도착했다. 각 지방현장에 나눠줄 생각이다. 어차피 큰 부상자야 없더라도 두통이나 소화불량, 찰과상등은 서울이나 지방이나 마찬가지로 발생하는 문제들이기에 구급상자 하나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후에는 서울 스티커 제작소에서 보내준 만여장의 스티커를 받았다. 이래저래 후배들과 물목 정리를 하고 팀을 나눴다.

 여수, 전주, 광주, 부산, 대구, 대전을 한꺼번에 혼자서 순회하기엔 시간과 체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팀을 세갈래로 나누었다. 다행히 대구쪽은 의료지원팀에서 가겠다는 이가 있어 제외하고 부산으로 한팀, 대전으로 한팀, 그리고 여수-전주-광주로 이렇게 세갈래로 나뉘었다. 처음엔 여수 화물연대 파업현장에 집중할 생각이었으나 다행히 목요일 협상안이 타결되고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아 후처리를 위해 적은 인원만 보내도 될 듯 싶었다.

 상처 소독 및 약이 필요한 이들에게 적합한 처치를 해주고 전주로 향했다. 지난 10일 만여명 가까운 시민이 모여든 전주의 열기는 시간이 조금 지난 탓인지 그리 뜨겁진 않았다. 200여명 남짓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약만 몇개 챙겨주고 광주로 향했다. KTX를 타고 도착하니 저녁 10시다.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현장으로 바로 향했다. 

 금남로,충장로 일대에는 300여명 정도 되는 시민이 모여 자유발언을 하고 있었다. 그전에 지인으로부터 정보를 받았던 것처럼 상주하고 있는 천막이 있었다. 일단은 천막안으로 가서 의약품이 있는지 여부를 체크했다. 역시나, 갖추어지진 않았다. 한 사람의 시민이 되어 후배들과 잠시 자리에 앉아 자유발언을 들었다. 마지막에 나간 한 남자는 21일 광주에는 대규모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광주 시민들에 참여를 요청했다. 현지 운영팀을 만나 내일 가두 행진의 루트 및 집회 진행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벌써 새벽 2시가 다 되어 간다. 간단한 분식으로 후배들과 저녁을 해결한 후 숙소로 들어갔다. 내일의 의료지원을 위한 마지막 점검을 해본다. 

 다음날 오후 2시쯤 현장에 나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걱정되는 마음에 블로그에 시민들의 많은 참여를 당부하는 글을 썼다. 행사준비를 위해 슬슬 도로통제를 하고 몇 대의 화물 차량이 도청 쪽으로 진입해 왔다. 큰 화물차량 뒤에는 '명박산성'이라 써진 컨테이너 박스가 실려있다. 광주 시민들 참 재밌다. 그 뒤쪽으로는 이병박의 사진과 청와대, 국회의사당이 나란히 늘어선다. 무언가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거리 여기저기에는 현수막이 붙는다. 현수막에는 '대운하 저지', '물-수도-전기 민영화 반대', '의료민영화 반대' 등이 적혀있다.

 오후 6시부터 노조원들이 광주역부터 도청까지 가두행진을 한다해서 현지에서 급하게 제작한 의료지원 깃발을 펼치고 함께 걸어 왔다. 가는 곳마다 시민들이 반갑게 맞이하며 수고해라, 고맙다라는 말을 연신한다. 7시 즈음 도착하니 시민들이 꽤 모여있다. 익숙한 아고라의 깃발도 보인다. 반가웠다. 거리를 가득 매운 시민들은 다함께 노래부르며 촛불을 들고 축제를 즐긴다. 서울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사실 지방 순회이전에 각장 많이 걱정했던 것은 '과연 의료지원이 필요할까?' 였는데 역시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내 자신이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곳은 그야말로 축제의 현장이었다. 시민들이 다함께 노래부르고 춤추고 자유발언하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7살즈음 되보이는 꼬맹이고 숙련된 안무팀의 안무를 그대로 따라한다. 대견하고 기특했다. 중간중간 후배들과 아름다운 촛불문화제 만들기 스티커를 나눠주고 안전하고 청결한 거리집회를 당부했다. 사실 부탁드리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시민들은 질서정연하고 깨끗한 문화제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서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래저래 두통이나 소화불량 환자는 간혹 있었다. 서울 못지 않게 두 종류 약은 잘(?) 나갔다. 비가 온 탓인지 흠뻑젖어서 감기약을 요청하는 시민도 있었고 빗물에 자전거를 타고 오다 미끄러져 찰과상을 입은 몇몇 시민들도 있었다. 현장에 오래 상주해 있었던 몇몇 봉사자 및 시민들의 방치도고 있던 상처 몇가지를 돌보아 주었다. 

광주에 등장한 명박산성, 그리고 시민들

 9시 즈음 시민들은 후면의 명박산성을 향해 돌진한다. 역시 민주화의 성지 답다. 컨테이너 위에는 군인 코스프레를 한 몇몇 예비역들이 장난감 총을 쏘는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시민들은 컨테이너 위로 그물을 타고 오른다. 그 컨테이너 저 너머에는 청와대, 이명박, 국회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컨테이너 위 이명박을 찬양하는 현수막을 찢고 명박산성을 넘어 시민들은 돌진한다. 퍼포먼스 연출은 괜찮았지만 역시나 의료진의 버릇 탓인지 안전에 대한 염려를 해본다. 이명박의 얼굴에는 날카로운 못이 달려있고 시민들은 그곳을 향해 준비된 수백개의 물풍선을 던진다. 이내 이명박이 무너지고 시민들은 망치며 발이며 그 얼굴을 부셔댄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퍼포먼스 도중 부상자가 속출했다. 가벼운 찰과상 부터 못에 발을 찔린 아이까지 다양했다. 퍼포먼스를 할 때 안전에 주의해 달라 담당자에게 요청했다. 몇몇 부상자를 돌보며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다. 마지막 시민들은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기찻길 놀이를 하며 이병박OUT을 외친다. 12시즈음 모든 상황은 종결 되었다. 현장에 필요한 약품 몇가지를 남기고 당부의 말을 정하고 돌아섰다.

 온 몸은 비에 젖어 있었고 이래저래 힘들게 걸어다니느라 여기저기가 저리고 아펐다. 현장팀은 고맙다는 말을 연신한다.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감사했다. 서울이야 워낙에 뜨거운 참여열기와 많은 지원이 있지만 지방에서 촛불집회를 50여일 이상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서울 시민 만큼이나 뜨거운 열정과 퍼포먼스들을 보여주었다.

 서울에선 몇몇 이들에게 계속해서 문자가 온다. 상황이 심각하댄다. 서울로 바로 향할까 생각했지만 그보단 오늘 저녁 대전을 가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판단이 들어 일단은 익산으로 돌아왔다. 부산 쪽으로 향한 팀 소식은 간간히 후배들이 전해왔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월요일에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재차 포스팅 할 생각이다. 그래도 광주에선 깃발이라도 만들어 움직였지만 아무 것도 없이 구급상자 하나만 들고 움직였을 그 아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 뿐이다.

 광주의 뜨거운 열기와 재치 넘치는 퍼포먼스를 보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현 정권을 향한 시민들의 항쟁은 단기전이 아니다. 이렇게 뜨거운 열정만 있다면 그 지루한 싸움이 무척 길어진다 한들 무엇이 걱정되겠는가 싶다. 아마 원광대팀 속에서나의 의료지원은 당분간은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 삶이 있고, 그 삶속에 곧 지루한 한달여간의 시험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후배들은 계속해서 전국을 누빌 생각이란다. 처음엔 가지 않겠다고 징징대던 그녀석들이 이제는 앞서서 나서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니 참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당분간은 후원계좌 및 블로그 소식창은 열어둘 생각이다. 새벽 서울에서 온 문자로는 의료품 중에 부족한 것이 조금 있다고 한다. 월요일 아침 일찍 몇가지를 사서 올려보내야 겠다. 나야 금주는 지방에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보냈지만 서울 현장에서 바쁘게 뛰고 있을 봉사자들이 조금은 걱정된다. 오늘도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그 모습에 박수를 보내며, 더불어 촛불집회에 열정을 갖고 참석해 주는 모든 시민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by Polycle | 2008/06/22 11:58 | 기분 | 트랙백 | 핑백(1) | 덧글(5)

트랙백 주소 : http://medwon.egloos.com/tb/180691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Linked at 수줍은 느낌의 미소 : 원광의.. at 2009/01/01 03:11

... ... more

Commented by 푸옹이 at 2008/06/22 13:00
수고하셨어요...
Commented by  DS  at 2008/06/22 13:29
'처음엔 가지 않겠다고 징징대던 그 녀석들이 앞서서 나서겠다고 하는' 부분에서 참 가슴이 찡해집니다.
사랑도 봉사도 결국 한 사람 한 사람들에 의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진다는걸 새삼 느끼게 되는군요. 수고하셨습니다. 몸 잘 추스리셔요=)
Commented by eternium at 2008/06/22 16:00
많이는 못 보내드려도,후원계좌에 돈을 얼마정도는 넣어드려야......
Commented by 키보드워리어 at 2008/06/22 18:27
적지만 후원했습니다. 힘내시길, 광주에서 열심히 뛰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화이팅!
Commented by ciel at 2008/06/27 04:08
아기가 있어 촛불집회에 가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부끄럽습니다. 그 곳에 계신 분들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저도 작은 힘을 보탭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