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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wn,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전엔 말이지 나도 정말 완벽한 의사가 되어야 겠다고 감히 꿈꾼적이 있었다. 어제 하룻밤을 새고 준비한 시험을 끝내고 집에 와서 말라 비틀어진 김밥과 음료수로 점심을 대신하며 내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 본다.

 며칠째 앓고 있는 감기와 함께 이 지독한 3주간에 시험기간을 보내려 하니 지옥도 이같은 불지옥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밤새 콧물 훌쩍거리고 김침해대가며 공부해서 하나를 보고 다시 잠들고 이틀을 준비하고 또 밤새서 하나를 보고...... 이런 생활 4년째인지라 이젠 무덤덤해졌다. 나도 모르게 어느샌가 내성이 생겼나 보다.

 소아과는 말 그대로 일반 내과의 요약판이다. 파트별로 성인 파트 못지 않은 수록 데이터를 자랑하며 늘상 문제는 ~개월 혹은 ~살짜리 애가 보채며 우는 것으로 부터 시작한다. 예를 들어 '학동기 연령의 소아가 열과 함께 심한 기침,객담 을 호소 하며 왔다. X-ray상 우하엽에 폐문을 따라 음영이 증가되어 있는 소견을 보인다.' 이건 닥치고 Mycoplasma pneumonia(마이코플라스마 폐렴)다. 사실 뒷문장은 필요도 없다. 그냥 학동기 연령에서 폐렴 같은 증상 뜨면 바로 답을 집어낸다. 꽤 많은 아이들이 열감이 있고 기침을 호소하는 호흡기 증상을 호소하며 그러한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은 수백가지도 더 넘을터인데 단지 시험지 속에서는 그 아이는 마이코플라스마 폐렴 환자일 뿐이다. 다른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소아과 문제는 이런식이다. 몇가지 예를 더 들어보면 무통성의 혈변 -> 멕켈게실, 자지러지듯이 울며 젤리같은 변 -> 장중첩증, 비담즙성 구토와 도토리 모양의 종괴 촉지 -> 유문협착증, 제왕절개 신생아 호흡곤란 -> 신생아 일과성 호흡 곤란증, 생후 10일경 황달 -> 모유 수유 황달 등등 그래서 일반내과 문제와 달리 진단을 맞추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진단 이외의 것들을 물어보면 또 그때부터는 꼬이기 시작한다. 수백가지 질환의 호발연령, 원인, 구체적 증상, 치료제, 합병증, 예후... 이런 것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머리가 터지기 시작한다. 오히려 일반내과보다 더 어렵다. 여기에 소아 발달 및 신경계 질환 문제 몇개만 섞어 나오면 그날 시험은 GG 치는 것이다. 오늘 시험이 약간 그랬다.

 그건 그렇고 우연찮게 작년엔가 동기들과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은 적이 있다. '결혼해서 아이가 있으면 소아과 시험에 강하다.' 굉장히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결론은 의외로 '소아과 시험에 강한사람은 아이가 있다.'로 나버렸다. 물론 아이가 있다 하더라도 소아과 시험을 못 보는 사람이 있었기에 명제가 바뀌긴 했지만 개인적인 경험상으로도 확실히 소아과 시험의 진정한 강자는 대개 유부남 형들이었다. 유부녀는 그럼 어떤가? 라는 질문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물론 의대생 중 유부녀가 적어 데이터가 적은 탓도 있겠지만 한국사회에선 여자가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더 많으니 남녀를 불문하고 아이를 키워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소아과에 강한 경향이 있다라고 결론 내릴 수 있을것 같다.

 예를 들어 소아의 발달과정에 대해 공부를 한다치면 나같은 미혼남들은 어린놈의 자식이 3개월에는 뭘하고 6개월에는 뭘하고 한살에는 뭘 하는지 미친듯이 외워야 한다. 의학공부가 아무리 맞고 품는 공부라지만 정말 이 파트 외울때 만큼은 토가나올 지경이다. 길가다 애보면 머리라도 한대 쥐어 박아죽 싶은 심정이랄까. 그런데 유부남 형아들은 강하다 자기 아들, 딸들이 그 시절에 그 나이에 무엇을 했는지 소중한 추억과 함께 두뇌 저편에 데이터 베이스화 되어 있다. 시작부터가 다른데 끝이 같을리가 없다. 이 어린놈의 잣그가 도대체 장난감을 왜 한살때 쥐어서 남에게 줘야 하는지를 내가 알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부터 닥치고 그리면 되지 십자가는 두살 동그라미는 세살 삼각형은 네살 사각형은 다섯살 마름모는 여섯살 이딴 sa;ldjk;sldka;같은 것들을 왜 내가 머릿속에 담아두지 않으면 안되는지 모르겠다.

 사실 철부지 였을 시절 의대 진학해서 무슨과 하고 싶냐고 누군가 물었을때 나는 늘 '소아과'라고 대답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 눈꼽 만큼도 사라져 버렸다. 사실 그때는 아이들의 순수함 그리고 어렸을적 경험했던 소아과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들이 나를 그 길로 인도하려고 했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단연코 싫다. 징징대는 애들도 모자라서 저녁에 응급실 와서 채혈 한번 하려면 젊은 보호자들 무서워 벌벌 떨어야 하고 벌벌 떨다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쌍욕 날아오는 상황, 아직 의사 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이 경험했기에 소아과는 이미 내 인생에서 R/O 시켜 버렸다. (선생님들 말이 R/O 시킨 과 꼭 나중에 한다고 하긴 하더라.)

 밤새고 시험보고 와서 주접떠는 것 같아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여하튼 오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1.소아과 시험 문제는 쉬운데 답 맞추기는 어렵다.
   2.나도 애가 있었으면 소아과 성적 A+ 맞았을 거다.
   3.이왕지사 소아과 득도 못봤는데 결혼 늦게 할련다.

 PS. 그나저나 오늘 시험문제 보기중에 초경에 관한 것이 나와 있었는데 '초경하면 실혈량이 100ml정도 된다.' 이거 맞는 말인가요 틀린 말인가요? 누구 아시는 분 답변 좀, 밤새서 시험보니 교과서 찾아보기가 영 귀찮네. 학교에 있는 탓도 있지만...

by 폴리클 | 2008/05/10 12:33 | 조울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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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다인 at 2008/05/10 12:40
의학 전공하시는 분들 참 존경스럽습니다.
힘내세요:) !
Commented by 샛별 at 2008/05/12 03:53
초경이 워낙 주위환경의 여건과 당사자의 몸 컨디션에 따라서 급격하게 변하는것이니 100ml정도라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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