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20일
목사는 결혼 yes, 신부는 결혼 no! 왜그럴까?
16세기 종교개혁은 성직 금혼 폐지를 주장해서 오늘날까지 개신교에서는 목사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이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종교개혁은 새로운 종교를 만들고자 한 운동이 아니라 본래적 기독교로 돌아가자는 자기반성 운동이었는데, 개혁자들은 성직금혼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성직 금혼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반대했다. 개혁자들이 성경에서 발견한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성직자라는 사상이었다. 둘째, 종교개혁은 변화된 시대적 이념의 지표를 반영한 운동이기도 했는데, 그래서 당대 현실에 맞지 않는 교권우월주의를 지탱하는 성직제도와 성직금혼은 폐지되어야 할 것이었다. 중세를 통해 기독교가 세속 권력 위에 군림하게 된 배경에는 성직이라는 특수신분이 있었다. 종교개혁은 만인사제설을 근거로 종교가 세속권력에 대한 우위를 주장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기독교가 발생했던 모습 속에서는 성직제도나 금혼제도가 없었다.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발생했는데, 유대교의 제사장층과 갈등하였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처럼 종교적 헤게모니를 추구하는 그룹과는 달리 탈헤게모니, 반헤게모니를 추구하였다. 이런 사상이 ‘모두가 거룩한 제사장’이란 말로 성경에 표현되었다.
초대교회에서 금혼전통을 찾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성경에도 결혼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한 구절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구절들이 결혼 자체에 대한 부정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 같은 인간적인 일보다는 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말해진 것입니다. 그 보다 중요한 일이 그렇다고 종교적인 헌신은 아니었다. 초대교회는 종말사상에 심취되어 있었다. 즉 세상에 종말이 임박했으니 세상적인 일에 대한 관심을 가져봐야 허사라는 의식을 묘사한 말이다. 그리고 이런 임박한 종말사상과 결부된 결혼제도에 대한 부정적 표현들은 사제/성직자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는 모든 믿는 사람들이 가졌던 의식이다.
평신도와 사제를 불문하고 금혼이 기독교 내에 유입된 것은 비교적 후대의 일이다. 박해받던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변질된 것에 대한 비판의 맥락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막으로 은둔해서 독거하며 금욕을 실천했다. 이들이 금욕생활을 하게 된 배경은 기독교적인 동기와 이교적 동기가 겹쳐져 있었다. 기독교적 동기는 임박한 종말사상에 근거해 개인 경건을 지속하고자 함과, 초대 기독교에서 품었던 순교에 대한 열망을 실현할 수 없게 된 것에 개인의 금욕적 경건으로 대신하고자 하는 동기였다. 이교적 동기란 그리스 사상에 나타나는 육체경시의 영향이다. 그리스 종교와 철학은 육체를 악한 것으로 보았고 금욕을 중시하는 유파들을 내었다. 기독교가 그리스-로마 세계로 전파되며 거기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기존 육체경시사상과 기독교를 습합시켜 실천하였던 것이다.
콘스탄틴의 회심 이후 비로소 기독교 내에 흘러들어온 사제라는 신분과 수도생활을 하는 수도자는 일치하지 않았다. 수도생활은 개인의 경건을 위해서 누구나 원하면 참여할 수 있는 것이었지 ‘성직’의 일종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천주교에서는 수도자와 성직자를 동일하게 보지 않는다. 일례로 수녀는 수도자이지 성직자는 아니다. 초기 수도원운동에서도 수도자와 성직자는 일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개 성직자는 수도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일반 교인들은 차츰 성직자보다는 수도자들을 더 존경하게 되었고, 수도자 출신의 성직자들이 교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수도자출신으로 교황이 된 첫 사례는 거의 7세기에 이르러서야 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 금혼은 성직자의 덕목은 아니었고 중세를 통해 내내 싸움을 하게 된 주제가 된다.
중세를 통해 교황권의 부패, 성직의 부패가 만연해지지 교회는 나름대로 자정의 노력을 하였다. 그 자정의 힘을 제공한 요인 중 하나가 수도원운동이었다. 중세를 통해 만들어진 수도회들과 수도원출신의 성직자들이 교회개혁운동을 진행하며 성직자의 금혼을 주장했다. 대표적으로는 11세기 클루니 수도원으부터 진행된 개혁운동이다. 그리고 12세기에서야 라테란 공의회를 통해 성직금혼을 교회의 공식입장으로 확정하게 된다. 그리고 16세기에 종교개혁자들이 이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성직금혼에 대한 비판은 요즘 천주교 내에서도 일고 있다. 전에 외국의 한 가톨릭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예수회 소속의 연로한 신부님 한 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분도 결혼허용에 적극 찬성이었다. 자기 제자, 그러니까 신부가 되기 위한 과정에 있는 학생이 같은 과 여학생과 연애하다가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남녀가 모두 그 사실을 숨긴다는 것이다. 과 학생들을 비롯해서 교수들까지 다 그 아이가 누구 아이인지 아는데, 정작 본인들은 감추어야 하고, 아버지가 자기 아이에 대해 아버지가 아닌 척해야 하는 현실은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하시며, 교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저는 천주교인이 아니라 큰 관심은 없지만, 서구 천주교교회에서는 금혼 때문에 성직자 수급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고 들었고,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은밀하게 결혼한 신부들이 상당수에 이른다고 보도된 걸 본 적이 있다. 현재 전세계의 천주교 신부의 수는 40만이라고 하는데, 지난 25년간 금혼규정을 이유로 10만명의 성직자가 성직을 포기했다고 한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말을 한다. 일반 종교적 행태와는 다른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반 종교에서는 특수한 종교계층을 필연적으로 갖추고 있다. 가장 원시적인 종교형태인 무속에서도 무당과 일반인은 구분된다. 유대교도 일반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제사장과 평신도를 엄격하게 구별했었는데, 기독교는 이런 구별을 철폐했기 때문에 하나의 종교가 아니라고 한다. 종교로서 기독교를 바라본다면 다른 종교의 구조나 행태에 맞춰 기독교의 본 모습을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오해는 비단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니라, 기독교가 로마제국으로 전파되면서 발생했던 문제였기는 했지만 말이다.
천주교에서는 세속의 것들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자유롭게 오직 신을 향한 헌신에 드리는 것이 지고한 믿음의 발로라고 보았고, 특별히 고린도전서 7장의 바오로(개신교의 바울)이 이야기가 그 근간을 제공하였다. 예수님니아 성 요한 같은 사람도 평생 독신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참 고결한 마음가짐이고 수도사의 모범이다. 11세기 라테란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제들의 결혼금지를 규정짓기도 했다.
개신교에서 마틴루터가 사제였음에도 결혼을 한 것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뿐 이라는 기본 사상과 모든이에게 신의 말씀은 평등하며 모두가 신의 사제 노릇을 해야 한다는 만민제사장론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상구보리 하화중생하지 않고 어찌 도를 얻겠느냐는 의미다. 루터는 아기를 키우고 양육하고 생명을 가꾸는 가정의 삶이 신의 축복일진대 그것을 경험해 보지 않고 구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가 라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신부님과 수녀님들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고 목사들은 결혼을 한다. 그런데 요즘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째 영 폐단이 많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기독교가 발생했던 모습 속에서는 성직제도나 금혼제도가 없었다.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발생했는데, 유대교의 제사장층과 갈등하였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처럼 종교적 헤게모니를 추구하는 그룹과는 달리 탈헤게모니, 반헤게모니를 추구하였다. 이런 사상이 ‘모두가 거룩한 제사장’이란 말로 성경에 표현되었다.
초대교회에서 금혼전통을 찾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성경에도 결혼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한 구절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구절들이 결혼 자체에 대한 부정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 같은 인간적인 일보다는 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말해진 것입니다. 그 보다 중요한 일이 그렇다고 종교적인 헌신은 아니었다. 초대교회는 종말사상에 심취되어 있었다. 즉 세상에 종말이 임박했으니 세상적인 일에 대한 관심을 가져봐야 허사라는 의식을 묘사한 말이다. 그리고 이런 임박한 종말사상과 결부된 결혼제도에 대한 부정적 표현들은 사제/성직자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는 모든 믿는 사람들이 가졌던 의식이다.
평신도와 사제를 불문하고 금혼이 기독교 내에 유입된 것은 비교적 후대의 일이다. 박해받던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변질된 것에 대한 비판의 맥락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막으로 은둔해서 독거하며 금욕을 실천했다. 이들이 금욕생활을 하게 된 배경은 기독교적인 동기와 이교적 동기가 겹쳐져 있었다. 기독교적 동기는 임박한 종말사상에 근거해 개인 경건을 지속하고자 함과, 초대 기독교에서 품었던 순교에 대한 열망을 실현할 수 없게 된 것에 개인의 금욕적 경건으로 대신하고자 하는 동기였다. 이교적 동기란 그리스 사상에 나타나는 육체경시의 영향이다. 그리스 종교와 철학은 육체를 악한 것으로 보았고 금욕을 중시하는 유파들을 내었다. 기독교가 그리스-로마 세계로 전파되며 거기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기존 육체경시사상과 기독교를 습합시켜 실천하였던 것이다.
콘스탄틴의 회심 이후 비로소 기독교 내에 흘러들어온 사제라는 신분과 수도생활을 하는 수도자는 일치하지 않았다. 수도생활은 개인의 경건을 위해서 누구나 원하면 참여할 수 있는 것이었지 ‘성직’의 일종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천주교에서는 수도자와 성직자를 동일하게 보지 않는다. 일례로 수녀는 수도자이지 성직자는 아니다. 초기 수도원운동에서도 수도자와 성직자는 일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개 성직자는 수도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일반 교인들은 차츰 성직자보다는 수도자들을 더 존경하게 되었고, 수도자 출신의 성직자들이 교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수도자출신으로 교황이 된 첫 사례는 거의 7세기에 이르러서야 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 금혼은 성직자의 덕목은 아니었고 중세를 통해 내내 싸움을 하게 된 주제가 된다.
중세를 통해 교황권의 부패, 성직의 부패가 만연해지지 교회는 나름대로 자정의 노력을 하였다. 그 자정의 힘을 제공한 요인 중 하나가 수도원운동이었다. 중세를 통해 만들어진 수도회들과 수도원출신의 성직자들이 교회개혁운동을 진행하며 성직자의 금혼을 주장했다. 대표적으로는 11세기 클루니 수도원으부터 진행된 개혁운동이다. 그리고 12세기에서야 라테란 공의회를 통해 성직금혼을 교회의 공식입장으로 확정하게 된다. 그리고 16세기에 종교개혁자들이 이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성직금혼에 대한 비판은 요즘 천주교 내에서도 일고 있다. 전에 외국의 한 가톨릭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예수회 소속의 연로한 신부님 한 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분도 결혼허용에 적극 찬성이었다. 자기 제자, 그러니까 신부가 되기 위한 과정에 있는 학생이 같은 과 여학생과 연애하다가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남녀가 모두 그 사실을 숨긴다는 것이다. 과 학생들을 비롯해서 교수들까지 다 그 아이가 누구 아이인지 아는데, 정작 본인들은 감추어야 하고, 아버지가 자기 아이에 대해 아버지가 아닌 척해야 하는 현실은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하시며, 교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저는 천주교인이 아니라 큰 관심은 없지만, 서구 천주교교회에서는 금혼 때문에 성직자 수급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고 들었고,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은밀하게 결혼한 신부들이 상당수에 이른다고 보도된 걸 본 적이 있다. 현재 전세계의 천주교 신부의 수는 40만이라고 하는데, 지난 25년간 금혼규정을 이유로 10만명의 성직자가 성직을 포기했다고 한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말을 한다. 일반 종교적 행태와는 다른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반 종교에서는 특수한 종교계층을 필연적으로 갖추고 있다. 가장 원시적인 종교형태인 무속에서도 무당과 일반인은 구분된다. 유대교도 일반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제사장과 평신도를 엄격하게 구별했었는데, 기독교는 이런 구별을 철폐했기 때문에 하나의 종교가 아니라고 한다. 종교로서 기독교를 바라본다면 다른 종교의 구조나 행태에 맞춰 기독교의 본 모습을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오해는 비단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니라, 기독교가 로마제국으로 전파되면서 발생했던 문제였기는 했지만 말이다.
천주교에서는 세속의 것들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자유롭게 오직 신을 향한 헌신에 드리는 것이 지고한 믿음의 발로라고 보았고, 특별히 고린도전서 7장의 바오로(개신교의 바울)이 이야기가 그 근간을 제공하였다. 예수님니아 성 요한 같은 사람도 평생 독신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참 고결한 마음가짐이고 수도사의 모범이다. 11세기 라테란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제들의 결혼금지를 규정짓기도 했다.
개신교에서 마틴루터가 사제였음에도 결혼을 한 것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뿐 이라는 기본 사상과 모든이에게 신의 말씀은 평등하며 모두가 신의 사제 노릇을 해야 한다는 만민제사장론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상구보리 하화중생하지 않고 어찌 도를 얻겠느냐는 의미다. 루터는 아기를 키우고 양육하고 생명을 가꾸는 가정의 삶이 신의 축복일진대 그것을 경험해 보지 않고 구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가 라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신부님과 수녀님들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고 목사들은 결혼을 한다. 그런데 요즘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째 영 폐단이 많이 보이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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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2/20 10:30 | 생각 | 트랙백(2)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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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가지 위에 신학생과 상대 여자분의 아이의 부인에 대해 개인적으로 맘아파 하는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학생은 신부가 되기 위해서 순결을 서약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신학생 가운데 40~50%만이 신부가 됩니다. 보통 수도자의 경우(성직자는 잘모르겠지만)는 "청빈, 순결. 순명"을 서약합니다. 그 신학생 분이 순결을 위반했다고 해서 신을 저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직자의 길을 포기한 것이겠죠. 그게 비록 한순간의 유혹이었던지 아니면, 진정한 사랑이었던지 간에 말입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 아이를 부인했다는 것 자체가 전 그 분의 인격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부인했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뭔가가 가슴에 외닿는 것같습니다.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히13:4
(고전 7:39)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6)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헬, 잠들면 롬7:2, 고후6:14
(고전 7: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결혼하는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고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구절은 '그러니 더욱 열심히 주를 섬기라'는 표현이 아닐지 창세기에도 1장27-29절까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신부님들이 결혼하지 않는 것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초대교회당시(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다시올실-재림-것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곧 오시리라는 말씀이 자신들이 살아 있을때 오실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에서 결혼하여 주를 기다림에 있어 걸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겠죠. 그러한 것이 전통으로 이어졌겠죠.
천주교 신부님들이 결혼하지 않는 것은 나름대로 타당하구요. 개신교 목사님들이 결혼하시는 것도 나름대로 타당합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말할 만한 성격이 아닌것 같습니다.
오늘날 미국 천주교의 유아 추행등 독신의 폐해가 많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편 당연히 가정을 가지는 개신교에서는 세습문제가 골칫거리입니다. 결론적으로 종교에 특권을 주지 말고 다른 분야와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게 상식적이 아닌가 합니다.
재산의 소유와 상속의 문제 땜이죠.
중세에 이런 규칙이 생긴것도
현대 한국 교회상속 문제와 같은 맥락의 사건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고민은 중세유럽 기독교의 고민의 수준에도 못미치고 있는거죠.
다시말해 못된것만 열심히 배운거죠.
아님 그 못된것이 원래 목적이었을 수도 있고.
개신교는 개신교 나름의 종교적 신념으로 스스로의 방법론을 만들어 갈테니... 여기에 타 종교인 카톨릭이 뭐라 할 필요도 없는 거고
그런데 왜 개신교는 틈만나면 카톨릭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얘기를 많이 할까?
솔직히 참 궁금하다
그냥 자기 종교가 옳다고 믿으면 그 믿음대로 열심히 살면되지 왜 타 종교를 비교하고 어쩌니 저쩌니
얘기를 하지?
왜 자기 관점에서 모든 것에 대해 이건 어떻다 저건 어떻다 평가하거나 비판하려 드나?
개신교 종교가 올바르다고 믿고 또 믿은 대로 열심히 살면 타 종교 비판하든 어떻든 사람들이 개신교를
좋아하지 않을까? 그리고 세상도 좋아질거고...
개신교 신자분들 그렇지 않을까요?
자신보다 못하다 생각되었던 동료사제가 대사령 설교가 자리에 오르는 것을 보고 눈이 뒤집힌거죠. 결국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작업이 종교개혁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것들을 날려버린거죠.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자료 찾아보시면 다 아실 것입니다.
태생이 그러다보니 개신교에선 틈만나면 천주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습니다. 천주교도 아주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개선의 여지를 보이며 공식적으로 참회문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자정의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헌데 개신교는 날이 갈수록 그 세력이 커짐과 비례하여 부정부패가 심해지는듯합니다. 게다가 있지도 않은 사실을 신도들에게 전파하여 천주교와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습니다. 혹세무민이죠.
요즘들어 젊은 개신교층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입니다.
결혼의 문제는 이제 가톨릭에서도 풀어주어야할 단계에 오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해봅니다만은 또 신부님들이 개신교 목사들 보다 그래도 아직은 더 순수한 면을 유지하시는 이유중 하나 이지 않나 싶어 선뜻 찬성하기도 그런 기분입니다..
저도 종교와 기독교에 대해서 나름 많은 고민을 했었고 공부도 했었는데..
그럴수록 현대 개신교나 지금의 가톨릭은 너무 성경적으로 허점이 많다고 할까요?
차라리 불교처럼 많은 선택의 여지를 주는 교리라면 모를까..
유일신,, 단일 메시아 사상이 아니었던 것을 유일신과 단일 메시아로 묶다보니 억지를 부리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좀 그렇습니다..의과대학생들이 이런 이야기를 학교에서 하면 이상한 놈 취급받아서 그동안 혼자 생각하고 공부하던 건데.. ㅋ 왠지 반갑군요
영국에서 나온 개신교 교파죠..
여기는 신부, 수녀 등 신교의 그 것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교리는 개신교고요..
성공회 신부님들은 결혼을 하시죠?
음;; 결혼이라는 건.. 기독교적 윤리관으로 봤을 때 어떤 이에 대해 욕정을 품는 것 조차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라 표현합니다. 간음이 되지 않으려면 그 사람과 결혼을 해서 정식적인 가정을 가지는 방법 밖에 없죠.
교리적 차원의 문제라서 어떻게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금욕이라는 건 너무 어려운 것 입니다.
개신교든 신교든.. 종파를 떠나서 구원은 우리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냥 그렇다고요..